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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자루 Nov 04. 2024

#24. 걷다 보면,
길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올가 토카르추크 -  방랑자 




나이가 들수록 산책이 좋아진다. 

예전엔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던 내가, 이제는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는 이 시간이 점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길가에 핀 작은 들꽃,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까지도 나의 산책길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오늘도 발걸음을 옮기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길을 생각한다.


문득 올가 토카르추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올가는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우리에게 "삶은 긴 여정이자, 하나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모험"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마치 연속적인 이야기처럼 묘사하며, 그 속에 담긴 작고 큰 사건들, 마주치는 사람들, 그리고 느닷없이 다가오는 깨달음들을 소중히 여기라고 한다. 

그 말이 참 마음에 든다. 

인생이란 정해진 목적지로 가는 게 아니라,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모험을 하나씩 걸어가는 과정이라는 그녀의 관점이 지금의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뭐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지면 더 젊었던 시절, 길이란 늘 성취와 성공을 위한 경로였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단 거리로, 가능한 한 빨리 가야 하는 길이었다. 

옳고 그름을 나누는 잣대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나는 늘 그 옳은 길을 찾아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할 때마다 두렵고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길이란 단순히 도달해야 할 목적지로 가는 수단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내가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고, 즐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때론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고, 가끔은 옆길로 새는 것도 괜찮겠다는 호로운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어쩌면 인생의 진짜 의미는, 우리가 각자의 속도로 한 발 한 발 걸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숨 가쁘게 달리던 시간은 지나고, 이제는 점점 걸음이 느려짐을 느낀다. 

100세 수명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더 오래, 더 멀리 달려야만 한다. 

그래서 천천히 걷기엔 이르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나는 지금이야말로 천천히 걷는 법을 미리 연습할 적기라고 생각한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삶이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이야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치 긴 여정을 준비하듯 지금부터 걸음걸이를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나이가 더 들면 천천히 걷는다는 행위마저, 쇠잔한 몸뚱이가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 힘이 있을 때 현재를 즐기며, 천천히 걷는 법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정작 삶의 여유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당황할지도 모른다.


중년의 길은 단순히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페이스로 여유롭게 걸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음미할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다. 

아직은 발걸음에 힘이 있을 때, 그 힘을 서두르기 위해만 쓰지 않고 천천히 걷는 법을 익히는 것. 

중년의 길은 그런 여유와 준비의 시간으로 채워져야 한다. 


젊은 시절 나의 길은 한마디로 두근두근, 아슬아슬한 경주였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길 위에서 뒤처질까 두려워, 한 발짝도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급해하고, 숨 가쁘게 뛰었다. 그렇다고 현재의 나를 보면 엄청난 성취를 이룬것도 아닌듯 싶다. 무탈하게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취라고 주장한다면 그 또한 성취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모든 길은 가능성이자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길이 내 앞에 펼쳐져 있고, 그중 하나만이 진짜 정답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멀리, 더 빨리 가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성공해야 한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 속도로 걷기보다는 남들과의 속도 차이에 더 신경을 썼고, 뒤처지는 게 두려워 앞서 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남들이 "이 길이 좋아"라고 말하면 그 길을 따라가고 싶었고, "그건 아니야" 하면 그 길이 왜 아닐까 고민하기보다 겁부터 집어 먹었다. 

나만의 길을 찾기보다는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길에 귀를 기울였던 시절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청년때의 길은 어쩌면 불안과 가능성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어느 길을 선택해야 성공할지 고민했고, 실패하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젊은 시절의 나에게 가서 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어느 길을 선택해도 괜찮아. 너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 너의 길이 될 테니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가고 싶은 길로 가라"라고.


길을 걷는 지금,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있다. 더 이상 무언가를 쟁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이미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며 가볍게 걸어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제는 어떤 길을 선택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 길 위에서 내가 어떻게 걷고, 무엇을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젊은 시절에는 더 높이, 더 멀리 가는 것이 목표였다면, 지금의 나는 천천히 걸어도 괜찮은 길을 찾고 있다.

어쩌면 나의 길도 올가 토카르추크가 말한 것처럼, 모든 순간들이 작은 이야기 조각들로 쌓여 하나의 여정이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삶의 사건과 만남들이 하나씩 쌓여 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곧 나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 

이제는 그 이야기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그 길을 걸으며 만들어진 나의 이야기를 사랑하며 걸어가고 싶다.


집 앞에서 다시 한번 길을 되돌아본다. 젊은 시절, 길은 마치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앞서 가야만 했고, 남들과 비교하며 더 좋은 길, 더 빠른 길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지금, 길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동행의 대상이다. 

내가 지나온 발자국 하나하나가 그 길 위에 남아 나만의 흔적을 만들고 있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이야기한다. "걷다 보면, 길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라고. 

어쩌면 인생의 길이라는 건 완벽한 길이어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남긴 발자국들로 인해 특별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비틀거린 적도 있고, 가끔은 한참 돌아가기도 했지만, 그 모든 발자국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 

길은 더 이상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길이란 내가 선택한 모든 순간이 쌓여 오롯이 나만의 이야기가 되는 과정일 뿐이다.


이제는 완벽한 길을 찾기보다는, 내 발걸음이 닿는 곳이 나만의 길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의 산책이 끝나면 또다시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나는 이것을 기억하려 한다. 

길이 꼭 정해져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걸어가는 그 순간부터 길이 시작된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묻고 싶다. 

"걷다 보면, 길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미지의 길이 가져다줄 이야기에 기대를 품고 내 걸음을 내딛는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는 길도 결국엔 내 것이 될 테니까.


이제, 길은 더 이상 나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내가 걷는 그 길 자체가 내 삶이고, 내 인생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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