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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평범함을 향한 긴 산책

토드 로즈 - 평균의 종

by 한자루


아침 공기가 유난히 맑은 날이다.

오늘도 잔디와 함께 한적한 길을 따라 산책을 시작한다.

발밑에서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머릿속에서 지난 하루의 일들을 하나둘 떠올려본다.

커피를 마신 일, 퇴근 후 상쾌한 샤워, 매일 끼니 때 마다 먹는 식사, 뒤돌아서면 잊어버릴 가벼운 농담들.

조금만 지나면 흐릿해지고, 기억 속에서 사라질 법한 평범한 일상들이다.


문득,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평범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궁금해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평범하게 졸업해서 대학에도 가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직장을 얻고, 연애인을 닮은 멋진 배우자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맘에 드는 사람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그렇게 남들과 비슷하게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굴곡없이 흔한 것, 튀지 말라는 말과 같은 것이 그저 남들처럼 사는 것일까?

특별함을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일까?

그런데, 그 평범함이라는 게 정말로 그렇게 쉬운 일일까?

어쩌면 가장 어려운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우리는 흔히 ‘평범한 삶’이라 하면 별다른 성취도, 눈에 띄는 특징도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래서일까, 평범함은 쉽게 하찮게 보일 수 있다.

마치 성취나 특별함을 이루지 못할 때 어쩔 수 없이 택하는 대안처럼 여겨지곤 한다.

부모들은 자녀가 특출나길 바란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성공하며, 남들과 다른 성취를 이루길 기대한다.

하지만 그 기대가 현실의 한계에 부딪힐 때쯤이면, 부모님들은 말한다.

“그냥 평범하게라도 살아라.” 평범이란 단어는 어쩌면 마지막 남은 안전한 선택지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많은 결단과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 그 평탄함을 지켜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범하다는 것은 그저 눈에 띄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그 속에는 묵직한 책임이 깃들어 있다. 우리가 평범함이라고 부르는 삶 속에는 삶에 대한 겸손이 담겨 있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상태는 각자의 견해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누군가는 평범하게 사는 것을 두고 “단조롭다”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병을 앓게 되면 평범함의 위대함을 절실하게 느끼기도 한다.

평범한 일상에 대한 기억이, 우리의 마음을 더 겸손하게 만든다.


평균의 종말에서 저자 토드 로즈는 평범함을 재정의한다. 우리는 사회에서 정해놓은 평균을 통해 자신의 삶을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평균에 맞추어 살아라"라는 보편적 기대 속에서 누구나 자신을 평균과 비교하게 된다. 그러나 평균의 종말에서는 "평균"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의 개성과 잠재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통찰을 제공한다.

토드 로즈는 "평균이라는 기준에 스스로를 끼워 넣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개성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평균과 평범함을 혼동하고 있지만, 사실 각자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범함이라고 할 수 있다.

평균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단일한 목표가 될 수 없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함 또한 단일한 틀로 정의될 수 없을 것이다. 토드의 주장대로라면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오히려 각자의 개성과 필요에 맞춘 ‘고유한 평범함’을 찾는 일일 수 있다.

삶의 평균을 추구하느라 개성이나 욕구를 희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우리 각자가 가지는 ‘평균’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

자신만의 삶의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충실한 일상에서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

평범함이야말로 평범하지 않으며,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사회는 평범함과 거리가 멀다. SNS 속에서 보이는 남들의 삶은 늘 특별해 보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는 남다른 성취와 행복을 과시하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만의 특별한 일상을 자랑한다. 이런 모습을 보며 문득, 나의 평범한 하루가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남들과 같은 평범함 속에 안도감을 느끼지만, 그 평범함이 결코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기란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비범함을 꿈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범함을 이루기도 어렵지만 이루고 나서도 고독함을 느끼고, 남들과 같은 평범함 속에서 위안을 얻고 싶어 한다.

결국 우리는 특별함과 평범함 사이에서 갈등하며 길을 잃기도 한다.

평범하지도 비범하지도 않은 어디쯤에서 방황하며, 어중간한 자리에서 자아를 놓아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어중간한 자리에서 방황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가 삶의 방향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평범함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는 길, 특별한 것이 아닌 그저 나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우리의 노력이 있다.

그저 평범해 보일지라도,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발견하려는 작은 갈망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평범한 삶이란, 그것을 이루려는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조지 오웰은 “모든 평범한 행복은 누군가로부터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범함 속에서도 삶의 중요한 의미가 존재하며, 때론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큰 행복일 수 있다고 보았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에는 사실 내면의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산책을 하며 걷다 보면 바닥에 깔린 낙엽들이 눈에 띈다. 낙엽들은 특별히 주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른 아침 차가운 이슬을 머금은 채, 낙엽들은 그 자리에서 그저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다.

낙엽 하나하나는 모두 한때 눈부신 햇살 아래 푸르게 반짝였던 잎들이었다. 우리도 그러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주목받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길에서 매일의 의미를 쌓아가며 살아가는 존재들 말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좋다. 남들과 다르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스스로 느끼는 작은 기쁨과 만족이다.

평범함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소소한 기쁨을 찾으며 살아간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가치가 될 수 있다.

남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평온과 기쁨을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 그것이야말로, 비범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다.


평범한 삶은 어쩌면 가장 특별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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