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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자루 Nov 11. 2024

#26. 산책길에서 생각해 본
차별 없는 세상

공평과 공정의 경계에서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 

공기는 청량하고 하늘은 맑다. 잔디와 함께 한적한 길을 걷고 있으니 요즘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머릿속을 스친다. 

성별, 나이, 인종, 장애,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차별을 방지하자는 법안이라는데, 이런 법이 과연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누군가는 “이 법이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이 공평하게 존중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차별을 무조건적으로 막으면 오히려 개성과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라고 반대한다. 

차별 없는 세상이라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천천히 두발을 교차하며 걷는다. 한쪽 발이 나가면서 '난 차별 없는 세상을 찬성하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다른 쪽 발을 내딛으며 '그게 정말 맞을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이 논의에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개념이 있다. 

바로 공평과 공정의 차이점이다. 

흔히 평등을 이야기할 때 이 두 개념을 같은 뜻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공평은 이해하기 쉽다. 공평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고른 상태로 산술적인 평균을 떠올리면 크게 의미가 다르지 않다.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공정은 공평함에 ‘올바름’이라는 판단이 관여하는 개념이다. 

올바름이란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마이클 샌델 교수가 본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정의와 결을 같이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공평이 산술평균이라면, 공정은 산술평균이 아니라 ‘올바름’을 염두에 두어 가중치를 부여한 일종의 가중평균일 수 있다.


이렇듯 다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공평과 공정은 뒤섞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더욱 헛헛함을 느끼는 것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공정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불공정한 공평을 들이미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분배에 있어 공정은 가진 사람의 입장이 아닌 나눔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른, 학생, 어린아이가 담장 아래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공평한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세 사람에게 동일한 높이의 받침대를 하나씩 준다. 

어른은 문제없이 담 너머를 볼 수 있지만, 학생은 간신히 볼 수 있고, 어린아이는 여전히 볼 수 없다. 

이는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 준 것이므로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한 방식은 다르다. 각자의 필요에 맞추어 어른에게는 받침대를 주지 않고, 학생에게는 낮은 받침대, 어린아이에게는 높은 받침대를 주어 모두가 담 너머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공평은 무조건 동일하게 나누는 것이고, 공정은 그 사람의 상황에 맞춰 배려하는 것이다. 

차별 금지법이 논의될 때 이 두 개념의 차이는 큰 쟁점이 된다. 

찬성 측은 차별 금지법을 통해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법이 적용되면 모든 사람이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반대 측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필요와 상황에 맞춰 대우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차별 금지법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자는 입장을 지지한다. 

이들의 주장은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밀은 모든 개인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유롭게 선택하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자유는 각 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할 가치다.


이를 현대 사회에 적용해 보자. 차별 금지법이 밀의 사상을 반영하여 공평하게 시행된다면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우받으며, 자신의 개성을 지키면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기업에서 채용 과정에서 특정 연령층이나 성별에 유리한 조건을 적용해 왔다고 가정해 보자. 

차별 금지법이 시행된다면, 이런 관행 대신 오로지 성과와 역량만을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다. 이는 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공평의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불합리한 기준에서 벗어나 사회가 더 포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찬성 측은 차별 금지법을 통해 이런 세상이 가능하다고 본다. 밀의 주장에 따르면, 각 개인은 존엄성과 자유를 존중받아야 하며, 차별 금지법은 이 존엄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산책길에서 공평한 사회를 상상하니, 그것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많은 이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정의 관점에서 차별 금지법이 자칫 지나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프랑스 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의 주장이 이 입장을 잘 설명해 준다.

토크빌은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오히려 개인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한때 미국의 한 종교 단체에서 신념에 따라 특정 방식으로 예배를 진행하려 했으나, 차별 금지법을 적용하면서 이런 활동이 제약을 받게 된 적이 있었다. 

단체는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만의 예배 방식을 고수하고 싶었지만, 법적 제재가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토크빌은 바로 이런 경우를 우려했다.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준을 강요할 경우, 오히려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몇 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스포츠 경기 규정 논쟁을 들 수 있다. 여성 선수들이 남성 선수와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받고 싶어 했지만, 기존의 규칙이 남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여성 선수들에게 불리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 체격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여성 선수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일부 반대 측은 이 사례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 항상 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서로 다른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은 오히려 불공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반대 측은 공평을 무리하게 추구하면 오히려 공정을 해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개인의 고유한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공평은 오히려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담장 자체를 없앤다면 어떨까? 모든 사람들이 받침대도 필요 없이 경기장 밖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일지도 모른다. 

차별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해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출발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담장을 없애는 방식에도 위험이 따른다. 먼저, 개별적 필요와 특성을 무시할 위험이 있다. 

담장이 있을 때, 키가 큰 사람에게는 높은 위치에서 경기를 보는 장점이 있지만, 담이 없으면 이 장점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은 같은 시야에서 경기를 보게 된다. 

기존에 높이에서 오는 혜택을 누리던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오히려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한, 모든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 정말로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담을 없애고 모두가 같은 시야를 갖게 되면, 개별적인 특성이나 경쟁력, 창의성이 덜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다. 모든 것이 평평해진 세상에서는 개성과 차별화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의 다양성과 창의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렇게 산책하며 찬반 의견을 곱씹어보니, 공평과 공정은 상호 보완적이지만 때로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개념임을 느낀다. 모두가 차별 없이 대우받는 공평한 사회를 꿈꾸면서도, 개개인의 특성과 상황에 맞춰 공정하게 대우받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차이를 없애고 완벽한 평등을 이룬다는 것은 이상적 일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다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평하게 대우하면서도 공정을 잃지 않는 것이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시행된다면, 그것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법이 아닌, 개별적 특성과 상황을 존중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건, 어쩌면 길가에 자라는 온갖 잡초들을 뽑아내는 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바라는 '평등한 정원'을 만들기 위해 잡초를 다 뽑아버린다면, 정작 그곳엔 다양성이 사라진 회색 잔디밭만 남을지도 모른다.


담장을 없앤 평등한 사회라… 생각만 해도 아름답지만, 담장을 허무는 대신 키에 맞는 받침대를 나눠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키가 작은 사람은 높은 곳에서 경기를 볼 수 있고, 키가 큰 사람은 뒷줄에서 편안히 관람할 수 있는 그런 세상 말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담 너머에서 손 흔들며 같이 경기 관람하는 즐거움도 잊지 말자.


결국 중요한 건, 담을 없애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그 담을 서로 넘을 수 있게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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