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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자루 Nov 15. 2024

#27. 오늘도 거울 앞에서

장 폴 사르트르 -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오늘도 잔디와 산책을 나선다. 

걷다 보니 아침에 거울 앞에서 나를 바라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떤 날은 "오늘 꽤 괜찮은데?"라며 뿌듯해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이게 나라고?"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우리 모두 외모에 관한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산책 중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외모라는 건 대체 뭘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거울 속의 나를 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늘은 산책길에서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외모 지상주의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아, 벌써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든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다 보니,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플라톤은 “아름다움이란 단지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영혼의 미덕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마치 거울 앞에서 눈썹 각도를 고치기보다 내 마음의 각도를 조정하라는 의미 같아 내심 뜨끔해진다. 

그러니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선함과 진정성에 달린 셈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내면'의 아름다움만을 말하기에는 어렵다. 

칸트는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인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자꾸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게 된다. 칸트는 남이 뭐라 하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니 삐딱한 코, 낮은 코, 크고 작은 얼굴의 균형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모습을 존중하는 게 먼저 아닐까?

마지막으로 장 폴 사르트르는 외모란 결국 타인의 시선일 뿐이라며,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고 받아들일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남의 시선에 얽매이기보다 나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라는 말이다. 

산책길에서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니, 마음속에서 남들보다 특별하게 보이려는 갈망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하다.


오래전 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전시실 한쪽에서 큐레이터와 함께 어린이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장면이 보였다. 

‘전시실의 사적인 대화’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한 어린이가 갑자기 물었다. 

“왜 그림 속 사람은 옷을 입지 않았어요?” 이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에 큐레이터는 곧바로 이렇게 답했다. 

“화가가 이 인물을 옷에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도 다른 사람의 옷차림만 보고 판단하기보다 그 사람 자체를 보려고 노력해 보면 어떨까요?”


그 순간, 큐레이터의 답변이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외모라는 것이 단지 '껍데기'일뿐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외모로 타인을 판단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특히 요즘은 외모 지상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외모를 기준으로 자신을 비교하고, 그 기준을 위해 고된 다이어트와 외모 관리에 매달리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 모두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어른들이 “너 참 예쁘다” 혹은 “잘생겼네”라는 말을 던지곤 했다. 

물론 좋은 의도로 던진 말이지만, 그것이 과연 어떤 영향력을 미쳤을까? 

어린아이의 무의식 속에는 ‘예뻐야 칭찬받는다’는 인식이 새겨진다. 

그리고 자라면서 ‘나는 예뻐야만 한다’라는 압박감 속에서 스스로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더 심각한 건, 이 기준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다닌다는 점이다. 

예쁘고 멋져야만 사랑받고 존중받는 사회에서 외모는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치부된다.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유한 모습과 개성을 놓친다. 

이 사회적 기준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의 틀을 만든다. 

우리는 나만의 특별함을 찾는 대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외모 기준에 맞춰져야 한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이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현관 앞 거울 앞에 다시 서본다. 

보이는 모습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다시 나를 바라본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색을 가지고 충분히 빛나고 있어!" 

이 작은 목소리가 외모 지상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자,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거울을 보며 백설공주 동화 속에 나오는 왕비처럼 거울을 향해 웃으며 말해본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은 누구지?”

거울 속 나의 모습이 조용히 답하는 듯하다.


“바로 지금, 있는 그대로의 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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