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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자루 Nov 01. 2024

#23. 잠깐 멈춰도 괜찮다는 변명

알랭 드 보통 - 성공 강박과 내면의 공허




느긋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늘도 집을 나선다. 

오늘도 산책의 목적은 없다. 그냥 길을 따라 걷고 싶다는 생각에 충실하게 다리를 움직인다. 

아, 굳이 목적을 찾자면 내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에 잠시라도 틈을 주고 싶어서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열심히 산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나를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산책길에 들어서면서 문득 생각해 본다. 

열심히 사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걸까?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질문을 무시할 수가 없다. 

오늘은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일단 천천히 걸어보자. 어쩌면 답은 어디쯤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니까.


길을 걷다 보니 세상이 참 조용하고 평온하다. 나무는 흔들리면서도 제 자리에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서 있다. 길가의 풀도, 작은 꽃도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워 보인다. 

나도 이 나무들처럼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가는 것이 본질이 아닌가. 

우리는 기본적으로 움직이고, 언제나 어디론가 향하고, 뭔가를 이루려 애쓰며 살아간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이 누군가의 명령처럼 들리고, 멈추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따라온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열심히 사는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조금씩 의심스러워진다. 

정말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걸까? 그 ‘열심히’라는 단어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리고 왜 이렇게 무거운 기준이 되어버렸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열심히 사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고, 어쩌면 타고난 재능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열심히 산다’는 기준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그동안 “능력이 부족하면 열심히라도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능력이 없으면 적어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 신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고, 나 자신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부족한 날을 자책해 왔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열심히 산다는 것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능력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는 자신이 세상의 규칙과는 다른 자신만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 길이 반드시 남들이 정해준 목표를 향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나 역시 남들의 기준에 따라 ‘열심히 사는 것’을 강요받고 또 타인에게 은근히 강요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싱클레어는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라고 말했듯이,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닌, 그저 세상이 정해준 열심의 틀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겐 특별한 능력일 수 있다는 걸. 

어쩌면 내가 그동안 사람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조금 가혹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열심'이라는 자로 세상을 재며, 나와 다른 사람들을 단정 지어 버렸는지 모른다. 산책길을 걸으면서, 나는 내가 너무 쉽게 놓쳐버린 것들을 천천히 되돌아본다.


열심히 산다는 건 종종 터널 속을 달리는 기분과 비슷하다. 터널 속에 들어가면 당연히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주변은 너무 어둡고, 오직 보이는 것은 터널 끝에 빛뿐이다. 그 터널의 끝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목표만 바라보며 살아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 목표 지점에 다다른 후에야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자신을 돌보는 여유, 그리고 행복이라고 불리는 것들. 

열심히 달리기만 했던 시간들은 거대한 '성취'라는 이름으로 남았지만, 정작 그 안은 비어 있다. 

나는 오늘 이 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나도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건 아닐까?


'알랭 드 보통'은 현대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사람들을 진정한 행복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성공과 성취에 몰두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나 역시 목표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온 끝에, 중요한 것들이 내 곁에서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깨닫지 못한 건 아닐까? 그제야 산책길에서 내가 놓쳤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흔히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행복이 따라올 거라고 믿고 열심히 달린다. 그러나 열심히 살아온 끝에 도달한 그 목표에서 느끼는 것은 묘한 공허함일 때가 많다. 내가 열심히 바라보며 달려온 그곳에서, 막상 기대했던 만큼의 기쁨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세상이 제시한 성공과 성취라는 상을 향해 달리는 동안, 우리는 자꾸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외면하게 된다. 

나 역시 세상이 제시하는 상을 쫓아온 건 아닐까? 내 안에서 진정으로 나를 살아가고 싶어 하는 목소리는 억눌러 두고, 그저 사람들이 정해준 목표와 기준을 향해 달려온 것 같다.


싱클레어는 세상의 기대와 규칙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 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 보려면, 가까운 가족부터 시작해 전혀 관계없는 모든 사람과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을까.

나 역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기보다는, 세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가며 그 안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국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달성하지 못한 채, 비어 있는 목표들만 쌓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그토록 열심히 살아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성공의 끝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 높은 목표에 도달하면 내 삶이 완벽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요즘 들어 조금씩 깨닫고 있다. 높이 쌓아 올린 성취의 탑이 오히려 공허함을 감싸는 껍데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보통은 이런 현대인의 모습을 "성공이라는 사회적 기준"이 만든 결과라고 설명한다. 

사회가 제시한 성공의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다 보면, 성취의 끝에 도달했을 때 우리를 채워줄 거라 기대했던 것들이 오히려 공허로 남게 된다고 말한다. 내가 이루어낸 모든 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성취는 오히려 내게 부담이 되고, 그 빈 공간을 더욱 크게 느끼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열심히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니면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전부일까? 

산책길을 걸으며 나는 다시금 되새겨본다. 어쩌면 열심히 산다는 것은 내가 진정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 내게 의미 있는 순간들, 그리고 내 마음의 평온을 위해 애쓰는 것. 

그런 열심히라면, 그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다.


보통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진정으로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열심은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내가 목표를 이루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 나 자신과의 약속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일 것이다.


오늘도 산책길의 끝단에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되,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은 놓치지 말자." 

터널 속에서도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지자고. 

가끔은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는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르니까.


"열심히 산다는 것은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 자신에게 잠깐 멈춰도 괜찮다는 변명을 허락해 보기로 한다. 


잠시 멈춘다는 것이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 끝까지 도달해야 할 필요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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