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중고거래 어플이 한창 유행할 때, 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급한 성격 탓이었다. 물건을 사면서 느꼈던 설렘이 사라지고 마냥 거슬리기만 할 때, 나는 그것을 바로 비워야 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다짐을 하며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싶을 때, 공간을 정리하길 좋아한다. 밤에 갑자기 안방의 가구 배치가 거슬리기 시작하면 그때 당장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일어나서 해야지!' 했다가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미친 사람처럼 새벽이라도 화장대며 침대며, 생각했던 대로 옮기고 청소까지 해야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다. (다행히 지금은 주택에 살고 있고, 1층은 상가라 밤에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없애야겠다고 결정하고 난 뒤, 며칠 동안 기약 없는 거래를 기다린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거래를 할 만한 물건이 없다는 생각도 한 몫했다. 돈이 될만한 명품은 당연히 없었고, 내 기준에서 사람들이 살 만한 물건이다 싶은 게 없었다. 20년 동안 미친 듯이 소비했지만 죄다 싼 옷들, 그리고 먹을 것들을 사느라 날린 돈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게다가 옷은 1년을 주기로 자주 비우니, 정말 내놓을 게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지 몇 년 뒤, 나는 현금이 필요했고 팔만 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00 만 원을 벌었다.
- 구석에 박아둔 자잘한 생활용품들
1, 2만 원이 그렇게 작은 돈이 아닌 상황인걸 깨닫고 나서는 별게 다 거래품목으로 보였다.
붓기에 좋다고 해서 챙겨 먹다가 귀찮아서 구석에 박아둔 붓기차, 언젠가 스타일링에 힘써보겠다며 샀지만 역시나 한두 번 쓰다만 고데기, 예전에 모임 진행할 때 썼지만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펜 뭉치, 페어에서 가림막으로 썼다가 콘셉트를 바꾸게 되면서 쓰지 않게 된 원단, 예뻐서 샀지만 자주 쓰지 않는 작은 파우치, 녹음할 때 좋다고 해서 샀다가 소리가 취향에 맞지 않아서 쓰는 둥 마는 동하는 마이크, 싱크대를 깨끗하게 유지해 준다고 해서 샀지만 귀찮아서 써보지도 않은 클리너, 입맛에 맞지 않는 영양제 등 조금이라도 돈을 받을 수 있겠다 싶은 것들은 모두 거래했다. 몇 천 원에서 만 원까지. 얼마 되지 않지만 모아놓고 보니 쏠쏠했다.
- 쓰지 않는 가방들
한 번씩 소비에 미칠 때가 있고, 그때마다 간과하는 것이 있다. 나는 마음에 드는 물건은 닳고 닳을 때까지, 신기하게도 그것만 잘 쓴다. (한놈만 팬다.) 특히 가방이나 신발 같은 것들. 매일 들고 다니는 검은색 가죽 가방은 8년 동안 함께하면서 많이 해졌지만 아직도 쓸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 다른 색으로 기분 전환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사뒀던 가방들이 구석에 처박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키링을 만들어서 판매를 해보겠다고 난리를 치던 때에, '백참'으로 써도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어 촬영 소품으로 가방을 몇 개 샀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이유다.) 상세페이지를 만들 때 한 번, 세 가지의 가방과 함께 촬영을 했고 고스란히 창고에 박아두었다. 내가 앞으로 쓸 일이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는데, 버리기도 참 아까웠다. 그런 것들을 전부 처분했다. 흠은 없지만 오래된 것들은 2만 원 대, 촬영소품으로 딱 한 번만 쓴 것들은 6-8만 원 대로 전부 잘 팔았다.
- 넘쳐나는 문구들
문구류를 정말 사랑한다. 어릴 때부터 예쁜 색깔의 펜은 다 사모았고, 질감 좋은 노트도 한 권씩은 사고 봤다. 문구류를 필요이상으로 사모으는 이유는 '비싸지 않다'는게 보통일 테지만, 나는 꼭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비싸고 좋은 문구류를 쓰면 더 멋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돈을 벌기 시작한 20대부터는 비싼 것들만 사서 쓰려고 노력했다. 그놈의 지적허영심. 아무튼 가방도 그렇듯 나는 한 놈만 잘 팬다. 가끔 봄바람이 살랑대고 알록달록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에 기분전환이라도 해볼까 싶어서 새로운 것들을 사모으지만, 금세 원래대로 돌아간다. 오래도록 잘 쓰는 펜은 제트스트림, 그리고 사라사클립. 노트는 몰스킨이다. 정리를 해보겠다며 문구류를 잔뜩 모아둔 바구니를 열어보니 한 두 번 쓰다만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필통 서 너 개를 꽉 채우고도 남았다. 평생 혼자 써도 다 못쓸 그런 양. 샤프도 열 자루가 넘어갔다. 고장 내지 않고 잘 쓰는 편이라 사실 손이 갈 일이 없는 것들. 잘 쓸 것들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한 자루에 몇 천 원씩, 당근에 올렸다. 이건 아직도 전쟁 중이다.
- 아끼던 미술용품들
사실 큰돈이 되었던 건 이거였다. 그림을 계속 그릴 생각이어서 팔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계속 디지털 작업을 하게 될 거란 확신이 들어서 팔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솔직히 큰돈이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비싼 것들만 골라서 쓰긴 했는데, 팔겠다고 결심하고서 원래 가격을 알아보니 생각보다 더 비쌌던 거다. 첫 신용카드를 만들게 된 계기가 여기 있다. 비싼 미술용품들을 한 방에 살 능력이 없어서 할부를 쓰고 샀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색연필이며 고체물감이며 팔 것들이 넘쳐났다. 팔아도 팔아도 끝없이 나오는 색연필 세트를 보며 남자친구가 아연실색했을 정도. 색연필 중에서는 120색 유성 색연필 세트를 가장 비싸게 팔았던 것 같다. 12만 원. 판매가는 30만 원. 색연필을 다 팔아서 30만 원 대를 벌었다. 그리고 고체물감은 비싸다고 소문난 수입 팔레트가 2개나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50만 원에 주고 샀다. 그걸 20만 원에 팔았다. 남자친구의 눈빛이 이해가 간다. 아무튼 팔레트를 다 팔아서 50만 원을 벌었다. 비싸게 주고 산 붓, 그것보다 더 비싼 수채화 종이, 액자 등 가진 것들은 전부 팔았다.
생각을 바꾸고 보니 돈이 될 만한 것들이 있었고, 그 덕에 살림에 잘 보태 썼다.
빚을 갚기로 마음먹고 소비를 줄이겠다고 다짐은 했지만, 그동안 저질러 놓은 할부며 나중결제들 탓에 나는 당장 써야 할 현금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당근으로 번 100만 원은 숨 쉴 틈이 되어줬다.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산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