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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Mar 11. 2023

맛없는 맛집

실장 있는 병원, 행사 많은 학교

요즘, 6선 도시(베이징, 상하이, 시안 등은 1선 도시) 연길이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한 여행지가 된 모양이다. 코로나 시국으로 한국 여행이 쉽지 않은  이때, 중국 내에서도 저렴한 비용으로 한국 문화와 음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잘 나가는 왕홍(网红)이 틱톡(抖音)에 올린 연길 여행 영상 덕분에 연길이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번 겨울 내내 연길 최대 번화가, 연변대 앞에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사진 찍기 바쁜 젊은이들이 바글바글했고, 매일 새벽 열리는 수상시장은 사람에 떠밀려 지나가야 했으며, 춘절에는 택시, 숙소까지 모조리 동났다고 한다.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김밥과 떡볶이, 삼겹살 구이를 맛보고, 한글간판 앞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해 비행기까지 타고 연길에 온다니. 연길에 사는 한국인인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예상치 못한 '연길 여행붐' 한가운데서, 우연히 연길의 한 냉면 맛집 후기를 보았다. 연길에 삼 년이나 산 나도 모르는 '연길 대표 맛집'이라니, 귀가 솔깃했다. 방금 기름에서 건져 올린 뜨거운 꿔바로우에, 새콤달콤 얼음 동동 뜬 냉면을 곁들여 먹는 게 연길 대표 별미인데, 이 집이 그렇게나 맛있단다. 마침 18元(3,400원)하는 냉면 한 그릇을 12元(2,200원)에 먹을 수 있는 할인 쿠폰도 미리 구매했다. 일주일을 기다려 금요일 저녁,  드디어 이 가게를 찾았다.


大众点评 캡쳐


저녁식사 시간임에도, 2층까지 있는 넓은 가게 안은 한 두 좌석 차 있을 뿐 대부분 비어 있었다. 카운터에는 나처럼 맛집 추천앱에서 쿠폰을 사 온 아이 엄마가 쿠폰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광고에는 이런 음식이 나온다고 되어있건만


나는 냉면과 함께 소량의 꿔바로우도 추가로 주문다. 꿔바로우는 모두 7조각이었는데, 그중 두 조각에는 찹쌀반죽만 들어있고 돼지고기가 없었다. 꿔바로우는 튀김 특유의 바싹함 없이 소스에 푹 절어 질겼고 소스는 빙초산을 들부었는지 혀가 얼얼했. 냉면 역시 식초맛과 단맛이 너무 강해 다른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맛집은커녕 돈을 준다 해도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 주인은 조리과정이나 손님접대에 신경 쓰기보다는, 여기저기 뿌려 놓은 광고나 할인혜택 등을 서너 개의 핸드폰으로 관리하느라 바빠 보였다.


아, 낚였다!



그 많은 후기, 그 높은 평점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니! 새로운 맛집 발굴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연길에 오래 산 나와 내 동료들이 회식 때면 가는 집, 이를테면 <만흥가>의 돼지갈비 꽃게무침, <화매>콩국수 같은, 인터넷 검색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그 집이 그냥 연길 맛집인 거였다. 할인쿠폰과 회원권을 남발하는 집, 광고가 많은 집은 절대 맛집일리 없다는 평범한 진리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가게 위치나 규모로 보아, 한 때는 꽤나 장사가 잘 됐을 것 같은 이 집은 어쩌다가 가짜 후기와  할인쿠폰으로 근근이 명을 유지하는 맛없는 집이  됐을까.


손님은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기대한다. 가게 인테리어나 할인 혜택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맛이 우선이다. 그러므로 수익 최대화를 위해 주인은 당연히, 음식맛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메이퇀(美团) 등의 배달앱, 종(大众点评) 등의 맛집 추천앱 등이 음식값의 10% 이상을 떼어가고 비슷한 메뉴의 경쟁 업체 많아 가격을 맘대로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가게 주인은 단기적 매출을 높일 수 있는 광고, 프로모션에 더 집중하게 되고 그 비용 충당을 위해 음식의 질이나  더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맛이 없으니 손님은 점점 더 떨어져나가고 주인은 음식맛이라는 본질 대신, 할인쿠폰이나 블로 같은 얕고 약은 단기 전략에 더욱 매달리 악순환반복된다.


하찮은 것들 때문에 정작 본질에 집중할 수 없는 구조, 당연히 해야 할 것을 잘 해낼 수 없는 구조다.



이번 겨울, 서울 강남에 있는 기업형 치과에 들렀다가 적잖이 놀랐다. 간호사도 의사도 아닌 사람이, 이런 시술이 된다 안 된다, 부작용이 전혀 없다, 얼마에 해 주겠다, 어떤 급 의사를 배정해 주겠다 등의 치료상담을 해주게 아닌가. 그녀는 자신의 말에 책임 질 수 있는 걸까? 가 바로, 요즘 웬만한 피부과, 성형외과에는 다 있다는 '실장'이었다. 또 그 치과에는 리캡슐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아늑한 라운지와 발렛파킹 서비스도 있었다. 하지만 원 홈페이지에도, 병원 어디에서도 십여 명이 넘는 의사들의 학력이나 의료경력은 찾아볼 수 없고, 원장과 연예인이 함께 찍은 사진, 금발백인 모델의 동영상 광고벽면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사실, 지방에 사는 나도 유브와 블로그 후기를 보고 그 병원을 찾아간 거였다. 


우연히 그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의사가운 대신 블링블링한 구찌 신상을 걸친 '인싸' 원장, 매끈한 얼굴의 '실장', 고급인테리어, 세련된 광고 등을 직접보고 나니 그 병원의 의료 서비스에 대해 더욱 의구심이 들었다. 시장통 허름한 상가에서, 발치나 임플란트를 섣불리 권하지 않고, 충치치료 5천 원, 신경치료 1만 2천 원을 받으며 혼자 고군분투하는 동네 치과의사들이 얼마나 정직하고 훌륭한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치료행보다는 호객, SNS홍보, 병원 브랜딩과 인테리어에 더 집중하는 거대자본의 대형치과가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실, 학교도 그렇다. 대부분의 학교가 '인성과 창의력을 겸비'한 '창의융합형 글로벌 리더' '미래를 선도하는 글로벌 인재' 등등을 양성한다고 광고한다. 그래학부모나 교육청, 교장선생님이 좋아하는 보여주기식 행사들을 치러내느라 일 년 내내 몸살을 앓는다. 교사는 행사 업무에 치여, 정작 일상적으로 수업을 연구하고 학생들에게 지식의 구조와 사유방법을 가르치고 학생들과 깊이 소통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학생들은 그런 대회, 행사에 참여하느라 귀한 학습시간을 잘라먹는다.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다. 하지만 잡다한 것들이 마구잡이로 학교에 들어오면서 학교에서 양질의 배움과 가르침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집요하게 방해한다.


이제 블로그 추천 맛집 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실장'이 있는 병원, 원장이 유명 유튜버인 병원도 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찮은 수작 부리지 말고 본질 집중해야겠다고, 좀 못생기고 시대 뒤처지고 가난하게 살더라도, 남이  주지 않아도, 내가 해내야 할 바로 그 일을, 당당하고 정직하게 잘 해내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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