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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Apr 23. 2022

국내 웹소설에서 이혼물의 유행에 관하여

남/여성향 모두에서

이혼물이란, 말 그대로 이혼을 다룬 작품을 말한다. 이혼이라는 소재는 특성상 막장 드라마, 그 중에서도 특히 아침과 저녁 드라마에서만 주로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비교적 소비 연령층이 어리고, 로맨스에 대한 환상과 로망이 강하게 투영되는 밤10시 드라마나 웹소설에서, 결혼은 영원한 사랑의 결실 그 자체를 의미했기에 오랜 기간동안 주요 소재로 다루어 지지 못했다.


그러나 앞서 출생률에 관해 다루면서 이야기 했듯, 지금 서사의 주 고객층은 10대나 20대가 아니다. 드라마나 문학의 주 고객층은 이미 40대 이상으로 돌아선 지 오래이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말 부터 팬픽과 인소등을 접해온 3,40대는 현재 웹소설의 작가 및  주요 독자층에 해당한다. 이런 연유로 2010년대에 들어 로망띠끄, 문피아등 주 사용 연령층이 높은 플랫폼에서 30대 이상 주인공인 소설들이 대두되기 시작 했는데 이 전까지 판타지는 대체로 10대, 로맨스는 대체로 20대가 주인공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와 같이 주인공과 독자들의 평균 연령이 올라가며 이혼이라는 현실적인 소재와 사랑의 영속성에 대한 불신 역시 주요 소재로 자리 매김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아직 2,30대라 할 지라도 결혼과 연애에 대한 시각이 이전세대에 비해 부정적이고, 인터넷을 통해 그들이 한 때 나마 영원하리라 믿었던 사랑이 배신 당하는 이야기들에 대해 수 없이 들어오며 사랑의 영원성과 절대성에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이혼물은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 웹소설에서도 자주 차용되고 있다.




여성향 웹소설에서 이혼물은 2010년대 중후반부터 이목을 끌어왔다. 그 대표작으로 네이버의 <재혼황후>(2018)가 있었다. <재혼황후>의 플롯은 악역영애물들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초반 남주인공이 다른 여성 인물을 데려오고, 여 주인공은 전통적인 악역의 포지션에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흔하게 있어온 내용이었다. 일부다처제가 오랜 기간 답습되어 온 동양, 특히 한중일 할 것 없이 궁중 암투물에서 본처와 첩의 갈등은 오랫동안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전통적인 궁중 암투물과 이혼물의 차이점은, 남편을 첩에게 빼앗기고 수모를 당하더라도 여주인공이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며, 이혼을 한다 하더라도 대체로 아이를 다 키운 이후 중년기에 이혼을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러나 여성향 웹소설에서 말하는 이혼물의 주체는 30대 전후의 젊은 남녀이며, 자발적으로 이혼하기 보다 집에서 쫒겨나거나 했던 이전세대의 여성 인물들과 달리 여성이 주체적으로 이혼을 선언하고 이후의 삶과 사랑 역시 선택한다는 지점이다.


로맨스의 요소에서도 이혼물은 독특한 지점이 있다. 앞서 이혼물의 여주인공이 대체로 악역에 해당된다고 말했는데, 악역 영애물과 이혼물의 차이점은 남주인공이 정신적으로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지점이다. 이전까지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을 만남으로 인해 변화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이전까지의 로맨스의 장르적 골자였다. 그러나 이미 부부사이로 시작했고 친숙하기에 서로에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는 사이인 이혼물의 주인공들은 상대를 더 이상 변화시키지 못하고, 관계는 종식되어 버린다. 이 지점이 변화시키지 않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봄직 한데, 사랑의 영속성과 절대성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고 관계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이전 세대에 비해 심화된 근래의 젊은 층에서는 '내 마음 상해가며 상대를 고쳐까지 쓸 바에는 손절하겠다' 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으로 보아 상대를 변화 시키지 않는다에 보다 초점이 맞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여성향 이혼물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이 들어온 남자와 이전 남자의후회이다. 작품에 따라 이혼 후 노력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이끌어내는 여주인공들도 있으나, 대부분의 여성향의 장르가 로맨스인 만큼, 전 남편 보다 능력있고 더 젊은 다른 남성과 재혼함으로서 그것을 과시하는 것이 보다 중점에 맞는다. 그렇기에 로맨스에서 전 남편을 응징하는 방법은 대체로 현 남편의 재력이나 권력인 경우가 많고, 그러한 파멸을 통해 전 남편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작품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버림받은 황비>(2014)와 같이 이 전까지의 로맨스에서는 작품 초반에 비중이 높았던 전 남편 혹은 남자친구가 붙잡으면 다시 돌아가는 경우들이 있었던 것에 비해 이혼물에서는 그런 경우가 전무하다는 것은 눈여겨볼만한 점이다.




그에 반해 남성향에서 이혼물은 2020년대에 들어 유행하고 있다. 이 유행과 유사한 시기에 유행한 말이 "퐁퐁남"이다. 퐁퐁남은 주로 주식갤러리와 같은 중년 남성들이 상주하는 커뮤니티에서 돈만 보고 결혼한 아내에게 핍박받으며, 더 나아가 아내가 바람을 피우거나 자식이 자신의 친자가 아닌 상태의 유부남을 일컫는 말이다. 


이 때문에 여성향에서 이혼물이 로맨스판타지 위주로 발달해 온 것에 반해, 남성향에서 이혼물은 현대 판타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이혼 사유는 대체로 상대의 외도 혹은 혼외자이며, 응징하는 방법 역시 퐁퐁남의 단어의 원산지가 주식갤러리인 탓인지, 비트코인, 주식과 같은 현실적이면서 단순에 경제적 성공을 벌어 들일 수 있는것들이 많다. 여성향의 이혼물이 로맨스 장르인 만큼 이 전 남편보다 능력있는 다른 남성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쌓는데 시간이 걸려 온 것에 반해, 남성향에서 이혼물은 남성의 능력 혹은 운 하나만으로 성공하기에 복수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한국의 현대 판타지물이 으레그렇듯, 이혼물에서도 주인공은 단독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경우에 따라 부와 권력을 얻어 다른 여성을 취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다 우월한 지위의 남성을 통해 복수하는 여성향의 이혼물과 달리 남성향 소설에서 이혼물에서는 경제적으로 몰락한, 혹은 성공한 후의 자신보다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낮은 남성과 재혼한 상대와 마주하는 것이 복수의 방식이며, 전아내의 비중 자체가 여성향 이혼물에서의 전남편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름이나 이혼 이후의 행보 자체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혼물의 흥미로운 점은 현실적인 수위의 보복이 아닌가 싶다. 상대를 죽이거나 절대적 파멸로 끌어넣는 경우는 없다. 그저 주인공보다 불행한 상태에 빠지도록 할 뿐이다. 아마 이는 앞서 말한대로 이 장르를 향유하는 연령대가 높고, 작가도 독자도 모두 현실적인 면이 그보다 어린 세대에 비해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기혼자인 독자들의 입장에서 그럼에도 함께 살았던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는 것이 거부감이 드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성 싶다.


이혼물의 유행에 관하여, 실제 결혼 생활 중이거나 이혼을 경험한 사람만이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혼이거나 심지어는 미성년자들 사이에서도 위와 같은 장르들이 유행한다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 어린 세대에서조차 상대 성별과 결혼에 대한 불신과 연관되며, 위와 같은 장르의 확산으로 인해 에코챔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어느정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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