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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준 Mar 15. 2022

잊는 것, 그 평범함에 대해

<러브레터> - 이와이 슌지

 <러브레터>는 ‘세상을 떠난 애인의 동명이인에게 답장을 받은 히로코와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은 이츠키가 서로의 존재를 알아내고, 세상을 떠난 이츠키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며 서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이야기다. <러브레터>는 왜 고전 명작이고, 한국에 개봉한지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에 개봉한 일본 실사 영화 중 흥행 기록이 1위일까. 아직도 ‘오갱끼데스까’를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말하면 먹먹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독창적인 플롯 구조와 겨울 그 자체의 영상미를 지닌 <러브레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러브레터>는 그 독창적인 플롯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위대해진 이유에 ‘영화의 분위기’가 5할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겨울 그 자체의 분위기. 차갑지만 그래서 포근함이 더욱 눈에 띄는 계절. 스틸 컷만 봐도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는 느낌이다. 영화는 촬영술과 미쟝센, 음악의 사용으로 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만들어진다. 관객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우리의 여주인공,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서 정서적 공감을 할 인물이다. 그리고 이 인물은 고독한, 슬픈, 체념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영화 시작 전 웃고 떠들던 관객도 이곳에서, 첫 번째 컷에서 몰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익스트림 롱 샷의 1분가량의 롱테이크. 관객은 움직이는 요소라고는 개미처럼 보이는 주인공뿐인 정적인 화면에서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펼쳐진 눈 밭은 관객에게 겨울을 느끼게 해준다. 롱 테이크 이후에는 추도식 시퀀스가 이어진다. 추도식 씬에서 인물들은 3주기 추도식이기에 막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주를 한잔하자는 등 슬픔은 떨쳐낸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픈 얼굴 – 눈 밭 – 추도식’ 이 세 요소의 합은 관객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마치 감독이 ‘나 이런 이야기 할 거야. 준비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실제로 관객은 이에 호응해 영화의 진지한 - 분위기에 적응한다.

 

오프닝 시퀀스

 이 영화는 카메라 소프트 필터의 사용으로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소프트 필터를 사용하면 빛 번짐이 생긴다. 뿌옇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화면에 극단적인 콘트라스트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 빛은 살짝씩 번져서 온화한 느낌을 주고, 배우의 얼굴은 더욱 순해 보인다. 빛이 배우를 감싸는 느낌이 들며 결과적으로 낭만적인 화면이 연출된다. 이는 곧 겨울이기에 돋보이는 따스함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가 표방하는 멜로 장르에 걸맞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조명의 사용도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조명에 실크를 씌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빛이 들어오는 모든 창문에는 극단적 콘트라스트를 피하기 위한 장치가 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창문에는 실크 커튼이 달려있다. 이 실크 커튼은 빛을 유하게 들어오게 하는 역할을 하며 소프트 필터와 호응하여 전체적으로 퍼진 빛을 만들어낸다. 커튼이 달려있지 않은 창문엔 김이 서려있거나 색지가 붙여져 있다. 모두 실크 커튼과 같은 역할을 해낸다. 영화 속 모든 실내조명도 퍼진 빛을 만들기 위한 감독의 노력이 들어가 있었다. 인물을 비추는 실내조명은 모두 약간 불투명한 조명 커버에 덮여 있다. 이렇게 만들어낸 퍼진 빛은 소프트 필터와 마찬가지로 관객이 화면을 낭만적이게 느끼도록 하고, 인물을 순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인 ‘A winter story’는 영화를 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은 중요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흘러나오는 ‘his smile’은 중저음 현악기의 사용으로 관객의 마음을 가라앉히며 오프닝 시퀀스에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영화 속 음악은 점프 컷처럼 쓰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히로코가 이츠키 어머니 몰래 손목에 이츠키의 주소를 적다 어머니가 갑자기 들어와 놀라는 장면에서 음악은 흘러나오다가 어머니가 들어온 시점에서 갑자기 끊긴다. 갑작스러운 음악의 끊김은 어떻게 보면 관객의 몰입을 깨는 장면이겠지만 깜짝 놀란 히로코의 마음에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낸다. 이런 의도한 갑작스러운 끊김은 영화에 빈번히 나와 지치지 않도록 관객의 몰입도를 조정하며, 이야기의 절정 부분까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가장 좋은 몰입도를 유지시킨다. 


이야기의 절정 부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 ‘오갱끼데스까’를 탄생 시킨 명장면에서의 영화 음악은 정말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이 장면의 사운드트랙인 ‘Gateway To Heaven’은 일단 인간의 감정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악기인 바이올린이 사용되었다. 작정하고 배우의 감정과 동화되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돋보인다. 음악은 처음엔 잔잔하게 시작한다. 히로코 또한 세상을 떠난 애인인 이츠키를 향한 마음이 아직은 잔잔하다. 히로코는 눈밭을 걸으며 점점 억눌렸던 이츠키를 향한 마음이 새어나온다. 억울함, 서글픔, 비통함, 애석함. 발걸음이 빨라진다. 밟고 지나가는 눈이 짓눌린다 음악이 빌드업한다. 점점 음악이 풍성해진다. 히로코의 감정이 폭발한다. ‘오갱끼데스까!!’ 그리고 복합적인 감정의 눈물. 음악은 클라이맥스에 도착해서 바이올린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관객의 귓속을 뛰어다닌다. 관객은 억눌렸던 감정의 해방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인상 깊은 촬영기법도 많았다. 히로코의 현 애인이 커피숍에서 편지가 오는 오타루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하는 장면에서의 촬영술은 그 뒤 장면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들었다. 히로코에게 제안을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기 전에 카메라는 서서히 올라가며 버즈아이뷰로 그들을 화면에 담는다. 그리고 다음 장면엔 비행기가 날아간다. 이 두 장면은 촬영기법으로 이어진다. 일단, 계속해서 바스트 샷으로 인물을 담던 커피숍 씬에서 롱샷으로의 전환은 이 상황에서 벗어난다고 관객에게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앵글의 전환은 ‘카메라가 서서히 올라간다 – 뜬다 – 비행기가 뜬다’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도록 한다. 롱샷 + 하이앵글 = 버즈 아이뷰. 비행기에서 인물을 바라본 듯하다. 비행기! 다음 샷에 비행기가 나오는 것이 납득된다. (여담이지만 비행기가 가는 방향은 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          

 이츠키가 학교를 찾아갔을 때, 선생님을 만나 남자 이츠키의 죽음을 알게되는 장면에서의 트랙 촬영도 의미있었다. 카메라는 이츠키와 선생님이 대화하는 실내에서 왼쪽으로 트랙 이동하며 기둥을 지나 이츠키가 떠나는 것을 볼 수 있는 창문으로 이동한다. 이 이동과정에서 기둥은 관객에게 여운과 생각할 시간을 준다. 남자 ‘이츠키가 죽었다’ 우리의 여주인공 이츠키가 받을 정서적 충격에 대해, 이츠키의 죽음에 대해. 기둥을 지나며 발생하는 3초간의 짧은 암전은 관객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관객은 이 시간 동안 정서적 깊이를 더한다.

스토리 전체로 보면 이 트랙 촬영-짧은 암전은 이야기의 변곡점이다. 이 장면 전, 잔잔했던 이야기 진행은 이 장면 이후로 빠르게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실내-기둥-실외에서 실내와 실외의 차이가 이를 증명하듯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실내는 어둡고 움직임이 없으며 롱샷이다. 실외는 밝고 움직임이 역동적이며(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주인공,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선생님.) 이츠키가 떠나면서 샷 사이즈는 롱샷으로 변화한다. 감독은 이 장면, 이 촬영기법을 통해 육상 경기의 시작 총성을 울렸다.

 영화에서 색의 사용은 감독의 의도를 반영했다. 먼저 색은 그 차별성을 드러냈다. 영화에서 실내 장면은 거의 다 주홍빛이고, 실외 장면은 거의 다 파란빛이다. 색온도로 표현하면 실내는 3000K 정도, 실외는 5700K 정도다. 이 색의 차이는 단순히 실내 – 실외를 구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했던 겨울이기에 강조되는 따뜻함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두 인물이 처음 조우했을 때도 색은 차별성을 지닌다. 히로코는 파란 계열이 옷을 입고 있고, 이츠키는 빨간 계열의 옷을 입고 있다. 둘은 같은 배우가 연기해 얼굴이 같음에도 색이 가지는 차별성에 의해 분리되고, 떨어진다. 이는 앞서 관객이 가졌던 의문을 해결하는 명확한 장치로서 작용한다.

색은 동일성을 가지기도 했다. 두 여주인공이 조우할 뻔한 날. 둘의 흔적이 남은 곳은 빨간색 우체통과 빨간색 택시였다. ‘빨간’ 택시와 우체통은 항상 달랐던 여 주인공 둘이 처음으로 공통점을 가지는 메타포다. 이 공통점이 빗나갔다니. 두 여주인공이 만나지 못해 생기는 관객의 아쉬움은 색의 사용으로 더욱 커진다.



 내러티브와 메세지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그 구조 자체가 전례 없었던 것이라 독창적이고 신선하다. 여기 두 인물이 있다. ‘후즈이 이츠키’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와타나베 히로코’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이 두 인물은 서로의 공통점으로 엮인다. 그 공통점은 히로코의 연인인 ‘후즈이 이츠키’, 그리고 똑같이 생긴 얼굴이다. 한 장의 편지로 맺어진 인연은 그 전에 이미 쌓아져 있던 인과관계를 따라 필연적으로 흘러간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두 인물이 다른 시간대에 벌이는 일들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선상에 놓아둔다. 사실은 그 이름만 보면 구분이 가능하지만, 두 인물의 같은 얼굴에 모호함을 의도한 샷의 연결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 혼란스러움을 의도해서 반전을 이끌어 낸 것이 독창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기도 하지만, 진짜 반전은 주인공의 욕망에 있었다. ‘러브레터’가 이츠키에게 도착하고 그 답장이 히로코에게 전달된다. 이것이 이야기의 촉발사건이다. 두 주인공은 ‘누가 편지를 보냈나’ 알아내는 것이 욕망이 되고 표면적으로도 이렇게 보인다. 그러나, 두 주인공이 서로를 마주보고 알아챘을 때 이것이 두 인물의 진정한 욕망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애초부터 히로코가 편지를 보낸 것은 죽은 이츠키를 떠나보내기 위해서다. 이츠키는 처음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는 것이 필연적인 욕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둘이 마주해서 ‘편지를 보낸 인물을 알아낸다’의 목표 달성 순간보다 이츠키의 가족이 이츠키를 병원에 무사히 데려갔을 때, 히로코가 오갱끼데스까를 외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야기 초반 혼란스러움에서 일어나는 반전, 표면적 욕망에서 내면의 욕망으로의 전황에서 일어나는 반전. 아마 영화 포스터에는 ‘21세기 최고의 반전 영화!’라는 타이틀이 들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 떠나 보내는 것, 잊는 것은 필연적이고 평범한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두 인물은 모두 죽은 사람을 잊는 것, 떠나 보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히로코는 오타루에 찾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이츠키와 이츠키의 가족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아버지를 잃은 것에 트라우마, 죄책감을 안고 있다. 만약 러브레터가 서로에게 가지 않았다면 둘은 이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 했을까? 내 생각은 ‘아니’다. 내 생각에 이 영화에서 개연적인 사건은 러브레터 하나 뿐이다. 나머지 사건은 모두 필연성이 있다. 히로코는 편지와 관련 없이 어쨌든 오타루에 갔을 것이다. 가서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자신의 삶을 찾아왔을 것이다. 이츠키도 편지완 무관하게 틀림없이 폐렴에 걸렸을 것이고 그 가족은 이겨냈을 것이다. 잊는 것. 트라우마를 완전히 잊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내가 말하는 건 그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삶을 방해하는 아픔의 잊음이다.

 잊는 것은 어렵다. 각자에겐 특별한 사연이다. 그렇다고 잊는 것이 나쁜가? 아니. 필연적이다. 평범하다.


히로코는 애인 이츠키에게 말한다. ‘잘 지내세요?’ 

이츠키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전 잘 지내요.’

영화는 말한다. ‘잘 지내세요?’

우리는 말한다. ‘전 잘 지내요.’

잊어보자. 삶을 정당하게 영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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