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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준 Apr 04. 2022

당신의 소중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원더풀 라이프> - 고레에다 히로카즈

 <원더풀 라이프>는 ‘죽은 후 천국에 가져갈 소중한 기억을 찾는 곳에서, 일주일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 직원들과 같이 인생을 되돌아보며 생기는 일을 담은’ 이야기다. 일단 들어가기 앞서, 영화를 다 본 후에 바로 든 생각은 ‘아직은’ 내가 보기 이른 영화라는 것이다. 어떤 영화들은 성장할수록 그 재미와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내게는 <흐르는 강물처럼>이 그러했는데, 이 영화도 같은 맥락에 위치 해있다. 이 영화를 보고 ‘지루하다’, ‘와닿지 않았다’라고 생각했다면, 10년 뒤에 다시 보길 추천한다. 의미가 달라질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원더풀 라이프> 속 미쟝센은 그 상징성이 유독 더 은유적인 느낌이 있다. 마치 모래사장에 흩뿌려진 조개 속에서 유독 그 햇빛에 비친 빛깔이 심장에 잔상을 남기고 가는 조개껍질을 찾는 느낌이라고 할까. 언젠가 성장해 바쁜 와중, 과거를 회상하다 이 잔상을 발견한다면 그때, 히로카즈의 영화는 우리의 회색 하늘에 무지개를 띄워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장면은 이 저승과 이승 사이에 위치한 사무실의 입구다. 관객은 가장 첫 장면 속 시덥잖은 직장인들의 대화 속에서 이들이 일하는 곳이 사후세계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이라고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이 장면, 유독 형식적인 느낌이 강한 대칭구조를 가진 입구.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에 가득한 포그에 유독 신성함을 느끼고 의아함을 가진다. 그리고, 곧 죽은 사람과 직원의 첫 대면 장면에서 사후세계라는 말을 듣고는 그 의아함이 풀리고 극이 시작된다. 장면 그 자체가 복선이 되었다.

 직원과 죽은 자들의 대면 장면에서 이 상담자들(죽은 사람들)은 바스트 정면샷으로 잡혀있다. 바스트 정면샷은 일반적인 인터뷰에서 사용하는 구도로, 말하는 인물에게 가장 신뢰감을 주는 샷이다. 관객들은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이들의 사연을 들을 수 있다. 즉,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진정성을 느끼며 몰입하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바스트 정면샷이 이런 효과를 낸다고는 하지만, 이 샷은 가장 평면적인 화면으로 관객이 지루함을 느끼기 가장 쉬운 샷이다. 영화 초-중반 거의 모든 샷은 상담자들을 인터뷰하는 이 정면 바스트의 연속이다. 히로카즈 감독은 샷이 주는 효과를 벗어나서, 일단 관객이 지루하지 않도록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감독은 점프 컷과 내용(대사)의 충돌로 문제를 해결했다.

 점프 컷은 컷과 컷이 부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때 화면은 속된 말로 ‘튄다’. 일반적으로 점프컷은 관객에게 예상치 못한 충격을 주거나, 등장인물에게 몰입을 방해하는 용도로 사용하는데, 최소한 이 영화에서 점프컷은 용도가 조금 달랐다. 

이 영화에서 점프컷은 정면 바스트로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을 때  대사 사이에 뜸이 생기면 그 때 시간을 조금 앞당기는 방식으로 점프컷이 사용되었다. 이는 몰입을 방해한다기보다는 조금 더 사실적으로 보이는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현실의 모방이기에 작위적인 편집을 지양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에서 편집을 티내지 않음으로써 현실과 같은 느낌을 내는 것이 영화 발전의 초반부 이야기라면, 영화가 대중에게 많이 노출된 현재에서 이런 자연스러운 편집은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졌다. 지금은 유튜브 컨텐츠나 다큐멘터리의 조잡한 편집이 더욱 현실적이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현상은 현재 대중들의 컨텐츠 소비와도 관련이 있다. 물론 영화가 만들어진 1998년에 히로카즈 감독이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만들었는지는 미지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점프컷은 인터뷰에서 말하는 인물의 말에 더 신빙성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계획된 대사가 아닌 느낌이 든다. 물론 그 시간을 앞당긴다는데에서 피상적으로는 관객의 지루함을 막는 효과를 가져온다.


 내용의 충돌은 즉 대사의 충돌이다. 영화에서 인터뷰하는 대상은 여러명이고, 영화는 이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대상이 여러명인 만큼 그 내용에서 유사성이 있으면 인물이 바뀌어도 관객은 지루함을 느끼기 쉽다. 감독은 이를 인물에서 인물로 넘어갈 때 종결문장과 시작문장을 반대어로 구성하며 충돌을 만들어냈다. 이 충돌은 이런식이다. ‘~잊어버렸습니다.’ ->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 임신과 출산, 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 -> 자살하려던 당시의 이야기. 화면전환 기법중에 ‘스매시 컷’이란 것이 있다. 정적인 화면에서 활동적인 화면으로 전환하는 등의 방식으로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효과를 만들어 내는 화면전환인데, 히로카즈 감독은 화면보다는 그 내용의 충돌로 관객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냈다. 


 영화에서 조명의 사용도 알음직 모름직하게 분위기를 구성했다. 먼저 그 ‘햇빛’에 주안점이 있다. 영화의 낮 장면은 항상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햇빛이 주광으로 사용되어 인물이 비춰진다. 직원들이 걷는 복도에도 창문에서 들어온 빛이 복도 바닥에 따뜻한 빛 자국을 남긴다. 이 햇빛은 장소에 신성함을 더해주고, 따뜻한 느낌으로 평화로운 공간임을 보여준다. 만약 상담하는 장소에 형광등이 켜졌다고 생각해보면, 이 햇빛을 사용한 의도를 생각하기 쉽다. 더해서, 햇빛은 그 시간의 경과를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 인물이 말하다 고민하며 뜸을 들일 때 여타 다른 장면이 그렇듯 점프컷으로 넘어가지만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의 위치가 달라지며 시간의 경과를 나타낸다. 티가 나진 않지만 초-중반 사람들의 인터뷰 장면에서 의도적인 조명의 변화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에서 자살을 계획했던 일을 말하는 장면. 먼저 이 시퀀스의 시작부터 그저 인물-인물로 넘어갔던 전 부분과는 다르게 인물의 신상을 종이에 쓰는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자살 이야기가 시작되어 점점 심화됨에 따라 조명은 어두워진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내용의 정서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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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영토공간에서 주는 상징성도 찾을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 기억을 돌아보는 장소에서 일하는 직원 남자와 그 조수처럼 보이는 여자의 관계는 화면의 영토공간을 통해 나타난다. 극중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큰 관심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두 인물이 같은 장소 같은 프레임 안에 있을 때 차지하는 영역을 통해 나타내어진다. 남자는 화면 구석에서 일에 빠져있는 반면, 여자는 화면의 2/3이상을 차지하며 감상에 빠져있다.

 영화는 월-화-수-목-금-토-일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는 뚜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중 월-화-수는 죽은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찾기 위해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 때 이들은 원샷으로 잡히며, 자신의 소중한 기억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들은 목요일을 기점으로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찾기 시작하는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직원과의 유대다.

 월-화-수 동안 직원과의 라포(Rapport)를 쌓은 상담자들(죽은 사람들)은 목요일을 기점으로 직원에게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가치 있는 기억을 떠올린다. 이때 이들은 비로소 투샷으로 잡히며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영화에선 요일을 화면에 자막으로 띄우며 장을 구분하는데, 이때 자막과 함께 나오는 인서트는 마치 그 장의 제목과 같은 역할을 한다. 월요일의 사무적인 장면은 상담자들과 직원들이 사무적으로 만난다는 것을, 금요일의 단정히 머리정리를 하는 아저씨는 이들이 떠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유대관계의 기점이 되는 목요일에는 이 사무실의 깃발이 펄럭이는 인서트가 나온다. 이 깃발에는 원 두 개가 연결되어 있는 로고가 그려져있는데, 언뜻 보면 구름의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곳이 이승이 아닌 저 너머의 공간 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미로서의 구름 로고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 로고가 ‘연결’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직원들과 상담자들 사이의 연결, 나아가서는 저승과 이승의 연결을 나타낸다. 이 인서트 샷 이후로 직원들과 상담자들은 서로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동등한 관계로서 연결된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발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봤을 것이다. ‘내가 저곳에 간다면 나는 어떤 기억을 선택할까’. 이게 바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관객이 가진 이 질문에 힌트를 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들은 나이도 다양하고 각자의 사연도 다양하다. 그러나 어떤 하나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풋풋한 여름, 버스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건 어때?, 이런 건? 감독은 관객에게 계속해서 힌트를 전한다. 

 깊은 생각을 하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영화 등장하는 여학생은 처음에 단순히 디즈니랜드에서의 추억을 꼽았다. 이에 여자 직원은 자신이 이곳에서 일하며 디즈니랜드를 꼽은 사람만 몇 십명을 봤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여학생은 자신만의 추억을 가지고 와서 여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자신만의 소중한 추억을 깊게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대단한 일을 하고 싶었지만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노신사는 자신의 삶을 테이프로 돌려보며 대단한 일을 찾는다. 그러나 곧 인생 황혼기 아내와의 공원 데이트를 자신의 소중한 추억으로 꼽는다.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좋으니 정말  좋은 순간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인 ‘연결’은 어떤 뜻일까. 상담자들과 직원은 한 컷 안에 들어가며 두 역할은 연결된다. 그리고 서로의 공통점을 찾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중한 추억을 찾아낸다. 이 관계속에서 둘의 역할은 역전 되기도 한다. 이 것을 나타낸 장면이 항상 화면 밖에서 질문을 던지던 직원이, 상담자와 이야기하다 질문을 받던 바스트 원샷으로 들어간 장면이다.

 사람은 결국 사회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추억을 만들어 나간다. 자신의 소중한 추억을 찾지 못해 사무실에 남은 직원 또한 자신의 소중한 추억을 발견한 곳이 내담자의 기억 속이다. ‘순간’이 어렵다면 ‘관계’에서 찾아보는 건 어떤가.


 소중한 기억은 영화 속 달과 같다. 영화에선 달이 ‘실제 모양은 변하지 않지만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보인다’고 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소중한 기억은 ‘햇살 좋은 날 벤치에 앉아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는’기억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저 평화로운 일상의 한 날이겠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평생에 걸쳐 잊을 수 없는, 삶의 원동력이 되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우리도 우리만의 소중한 기억을 찾아보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제 우리 차례라고 등을 떠민다.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직원들. 돌아가고 있는 카메라. 어쩌면 영화를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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