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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림 Nov 02. 2022

연서

10월의 끝자락에서

 때로는 한 줄의 글도 이해하기 어려운 요즘. 편지를 쓴다는 것은 너무 무거운 일이 아닌가 싶다가도, 사실은 그만큼의 무게를 전할 상대가 없어서 써 내려가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펜을 잡을 수 있도록, 나를 만져주고, 안아줄 형체 없는 이를 기다렸다. 찰나를 영원으로 담고,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어쩌면 사랑일.

 정류장에 앉아 잠시 멈췄다 떠나가는 수백의 감각을 더듬다, 스쳐 지나가는 다정과 달리 슬픔에게는 종점인 이곳에서 마음은 자살했다. 감정에 무너지기보다는 무뎌지는 게 나아 보였다. 그게 설사 아무런 감동이 없는 세계일지라도.


 버려진 감각들을 달래주듯 소설 속 나는 헤프게 사랑하고, 자주 앓았다. 너와 만난 시간들을 다 합치면 600살쯤 됐을까. 수많은 생의 감각들을 훔쳐보며, 마음을 쏟은 것들이 나를 더 슬프게 하는, 낭만이라는 그 비효율성이 탐나기 시작했다.

 혼자일 수 없어 해가 저무는 바다로 걸어 들어가면서 들을 쉼 없는 파도소리, 뜨끈한 두부를 떼어주는 네 손에서 번지는 옅은 물감 냄새, 맞닿은 살결을 타고 전해지는 심장박동, 숨 막힐 때까지 몰아세워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다 싶을쯤 떨어져 결국은 나를 살리는 입술의 감촉. 살아 있다는 건 이런 것들을 느끼는 것이더라.


 결국 지금 느끼는 것 외에는 모두 중요하지 않던 거야. 온통 너로 향한 신경들을 보고 나서야 감각하는 일이란 얼마나 찬란하게 슬프고도 아름다운지 깨달았어. 그리고 감정이란 액체 같아서 한 번 젖어들면 한없이 밀려들어와 흠뻑 빠지게 만든다는 것을, 부표하는 나를 건져내기엔 너무 늦었다는 사실도.


 민아. 함께 낙엽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서 서로의 숨 섞인 미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진실로 느끼는 생의 감각이란 어떨지 알고 싶어.

 

 가을 담고, 겨울 묻혀 보낸다.

 사랑한다. 아낌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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