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한 줄의 글도 이해하기 어려운 요즘. 편지를 쓴다는 것은 너무 무거운 일이 아닌가 싶다가도, 사실은 그만큼의 무게를 전할 상대가 없어서 써 내려가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펜을 잡을 수 있도록, 나를 만져주고, 안아줄 형체 없는 이를 기다렸다. 찰나를 영원으로 담고,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어쩌면 사랑일.
정류장에 앉아 잠시 멈췄다 떠나가는 수백의 감각을 더듬다, 스쳐 지나가는 다정과 달리 슬픔에게는 종점인 이곳에서 마음은 자살했다. 감정에 무너지기보다는 무뎌지는 게 나아 보였다. 그게 설사 아무런 감동이 없는 세계일지라도.
버려진 감각들을 달래주듯 소설 속 나는 헤프게 사랑하고, 자주 앓았다. 너와 만난 시간들을 다 합치면 600살쯤 됐을까. 수많은 생의 감각들을 훔쳐보며, 마음을 쏟은 것들이 나를 더 슬프게 하는, 낭만이라는 그 비효율성이 탐나기 시작했다.
혼자일 수 없어 해가 저무는 바다로 걸어 들어가면서 들었을 쉼 없는 파도소리, 뜨끈한 두부를 떼어주는 네 손에서 번지는 옅은 물감 냄새, 맞닿은 살결을 타고 전해지는 심장박동, 숨 막힐 때까지 몰아세워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다 싶을쯤 떨어져 결국은 나를 살리는 입술의 감촉. 살아 있다는 건 이런 것들을 느끼는 것이더라.
결국 지금 느끼는 것 외에는 모두 중요하지 않던 거야. 온통 너로 향한 신경들을 보고 나서야 감각하는 일이란 얼마나 찬란하게 슬프고도 아름다운지 깨달았어. 그리고 감정이란 액체 같아서 한 번 젖어들면 한없이 밀려들어와 흠뻑 빠지게 만든다는 것을, 부표하는 나를 건져내기엔 너무 늦었다는 사실도.
민아. 함께 낙엽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서 서로의 숨이 섞인 미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진실로 느끼는 생의 감각이란 어떨지 알고 싶어.
가을 담고, 겨울 묻혀 보낸다.
사랑한다. 아낌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