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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영 Nov 25. 2022

다 부질없는 것이여

 딸아이가 고3 때였다.

 한 시간이 소중하다고 마음 졸이던 때에 아이가 귓병이 났다.

 그때는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시절이라서 병원에 갈 시간도 없었다.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부리나케 병원을 갔는데 환자가 많아 애가 닳았다.

 “선생님 얘가 고3이거든요. 그래서 다시 학교에 빨리 데려다주어야 합니다.”

 나는 무슨 큰일이나 되는 듯이 의사에게 말했다.

 그런데 사십대로 보이는 의사는 느긋하게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게 대단한 일 같지만 지나고 나면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나는 속으로 '아니, 대학을 가느냐 못 가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뭔 말씀이래요?'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거의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말이 잊혀 지질 않았다.

 얼마 전 내가 귓병이 나서 그 의사를 보게 되어 그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지금쯤이면 그것을 깨달을 수 있으시겠지만 그때는 젊으셨는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내 말에 의사는 빙긋이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그때 그 딸아이의 딸이 고1이 되었다. 그런데 병이 나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보러 갔다.

 “왜 병이 났지? 혹시 스트레스받을 일이 있었던 것 아니야?” 하고 물었다. 요즈음 아이들은 어른 이상으로 힘들다고 하니 말이다.

 “스트레스? 뭐 별로. 친구하고 좀 다투기는 했지만.”

 “왜?”

 “내 친구가 요즈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데 좀 이상해진 것 같아.”

 “어떻게?”

 “뭐, 연애경험을 쌓아야 한다나. 그런데 할머니, 연애 경험이 뭐가 필요해. 그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야. 시간낭비지. 연애는 한 스무 살쯤에 멋진 남자 만나서 해야지. 안 그래?”

 열여섯 살 아이가 ' 부질없다.'라는 말을 하다니 좀 놀라웠다.

 

 옛날에 대장간에서 연장이나 기구를 만들 때 쇠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 쇠를 불에 달구었다가 물에 담그기를 여러 번 하는 것을 불질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불질을 하지 않은 쇠는 물렁거려 쓸모가 없었다. 여기에서 '불질 없다'라는 말이 '부질없다'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나고 나면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실행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은 끝없는 욕망의 꿈틀거림을 억제하지 못하고 죄악을 범하는 경우가 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는 그들의 최후가 그렇게 빨리 , 또 그렇게 비참하게 끝날 것이라는 것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혹여 했다면 '이렇게 부질없는 짓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려나? 또한 푸틴도 지금의 위력과 생이 끝남을 염두에 두지 않으니 많은 생명을 빼앗는 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널려 있는 악행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이들은 거울에 자기의 내면을 비춰보고 '거울아, 거울아 내 얼굴이 왜 이리도 찌그러졌니?' 하고 알아차렸으면 좋으련만.

 사람의 얼굴은 마음가짐에 따라 변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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