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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Feb 26. 2023

슬픔의 몫

장례식을 보고 든 생각

나의 친할머니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학교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부모님은 이미 장례식장에 계셨기 때문에, 나는 엄마 말대로 이모들과 장례식장에 가기로 했다. 할머니와 유별난 정이 있던 건 아니었다. 나이가 많고 무뚝뚝한 옛날 분이셨고, 어린 나는 그런 모습이 어려워 아주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처음 겪는 '죽음'과 '장례식'이라는 것에 놀랐는지 울음이 터졌다. 조용한 집에서 혼자 이모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눈물이 쏙 들어간 건 다 같이 차를 타고 이동할 때였다. 나는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이니 당연히 모두가 침울하고 말도 한마디 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모들과 이모부들은 오랜만에 모이게 됐다며 서로 안부를 묻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 모습 이상해서 차 안에서 내내 조용히 앉아있기만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는 더욱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영정 사진 에서는 엄마와 고모들이 울고 있었고,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그런데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테이블 자리는 마치 잔칫날이라도 된 듯 떠들썩했다. 아빠는 장례식장을 가득 채운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엄청 바빠 보였고, 사촌 오빠들은 계속해서 음식을 날랐다. 절을 다하고 이모들과 소고기국밥을 먹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운 것 같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얼마 전 남편의 외할머님이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남편은 장례를 치르러 타지로 가고, 나는 혼자 어린 아기를 돌보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 시절 왕래가 잦았던 할머님을 보내드리며 울컥했다는 남편은 그 뒤 친척들과 안부를 묻고,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농담하고, 시동생과 모처럼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장례식장을 가득 채운 손님들로 정신없이 바빴다고 한다.


그다음 날, 나는 어머님과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 어머님의 목소리는 걱정했던 것보다 차분했다.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정을 듬뿍 주고 계신 어머님은 할머님을 보내며 기분이 이상했다고 하셨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첫 손자와 나이 드신 부모님의 임종을 함께 보면서 인생이 쭉 지나가는 것 같았다고. 그리고는 아기를 위해 떡을 맞춰오시겠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할머님의 장례식은, 우리 아기의 백일잔치를 딱 일주일 앞둔 때였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울고 나서 소고기국밥을 먹을 때. 외할머님의 장례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기랑 백일상을 차려놓고 사진을 찍을 때. 깨끗한 물 한 모금 마시기 어려운 나라도 많다는데 편하게 샤워를 하고 있을 때.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 행복한 것 같을 때. 나는 너무 슬픈데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 같을 때.


모든 사람의 슬픔을 나누어 각자가 아주 조금씩만 슬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참으로 당연하게도 내 삶의 중심은 '나'이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기꺼이 공감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어려울 때 곁을 지켜주는 가족, 친구, 동료는 너무나 큰 힘이 되지만, 그 힘을 발판 삼아 슬픔을 이겨내고 일상을 되찾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몫으로 남는다.




각자의 삶 속에서 나름대로의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왁자지껄한 주변의 위로가 힘이 되어 갑작스러운 슬픔 잘 다스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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