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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Feb 10. 2023

나는 왜 열심히 살고 싶을까

내 삶의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원동력

어느 날의 수업 모임에서 한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다들 왜 그렇게 열심히 사세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다. 잠자코 듣고 있던 나에게도 순서가 돌아왔다. 처음 질문을 들었을 때부터 나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왠지 나의 치부를 보이는 것 같아서 말할지 말지를 망설였다. 그리고 마침내 솔직하게 대답했다.

"책임감, 그리고 열등감 때문에요."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나의 장점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유일하게 망설이지 않고 책임감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나는 교사로서 내가 맡은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느낀다. 나의 수업 50분, 나의 상담 10분은 나의 시간이자 학생들의 시간이다. 물론 나의 수업과 상담이 매번 거창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오만함은 없다. 다만 그 순간의 수업과 상담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므로,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로서 학생들의 시간을 의미 있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더 나은 교사가 되고 싶다.


나는 열등감이 강한 사람이다. 나는 나보다 더 나은 교사를 보고 자극을 받는다. 수업 참관이라도 하고 온 날이면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으로 잠도 설칠 정도이다. 나도 저렇게 물 흐르듯 수업을 해야 하는데. 나도 저렇게 학생들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수업을 하고 싶은데. 나는 왜 이렇게 아직 부족할까. 부끄럽지만 이런 열등감이 모이고 모여서 나를 더 노력하게 만든다. 나보다 나은 교사, 나보다 잘하는 교사는 늘 어디에나 차고 넘치기 때문에 열등감은 강하면 더 강해지지, 절대 약해지는 법이 없다.


이렇게 책임감에 열등감까지 더해져서, 나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책임감과 열등감은 '교사인 나' 뿐만 아니라 '교사가 아닌 나'로서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교사라는 직업 외에도 삶에서 다양한 역할이 있다. 딸, 동생, 친구, 아내, 며느리, 엄마 등등. 나는 나의 모든 역할에 책임을 다하고 싶고, 나의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믿음직스러운 딸, 자랑스러운 동생, 편안한 친구, 좋은 아내, 착한 며느리, 훌륭한 엄마. 그리고 이 역할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열등감에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한다.




물론 이런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삶과 누군가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사는 삶, 그 속에서 '나'를 위한 삶은 어디 있는 거지?


특히 아기를 낳은 직후에 그랬다. 내가 없으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아주 사소한 일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작은 생명. 이 아기가 나의 실수로 잘못되지는 않을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긴 한지, 하루종일 종종거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났고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와 천천히 걷다 보면 눈물이 나기도 했다. 엄마로서 가지게 된 책임감과 열등감은 이전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거대해서, 이렇게 살면 도무지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기가 100일을 넘기면서 아기도 나도 안정을 찾았고, 일상 속에서 나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


매년 부모님의 생신에는 케이크와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가족끼리 축하 파티를 한다. 그런데 올해는 아빠의 디스크 수술과 엄마의 생신이 겹쳐 가족이 모이기 어려웠다.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한 아빠와 생신을 아빠의 병실에서 맞는 엄마, 두 분이 모두 안쓰러워 나는 아기가 잠든 밤 지친 몸을 일으켰다. 소고기를 사서 핏물을 빼고 불린 미역을 박박 빨아서 미역국을 끓였다. 퇴원하시면 바로 드실 수 있도록 불고기를 사고, 과일 가게에서 가장 크고 비싼 딸기를 샀다. 별 것 아닌데도 최근 육아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안 했어서 그런지 다 하자마자 지쳐 쓰러져 잤다.


다음날 아침, 미리 식혀둔 미역국을 듬뿍 담고 불고기에 딸기, 용돈과 간식으로 드실 견과류까지 챙기니 짐이 무거웠다. 늘 엄마한테서 잔뜩 받아오기만 했던 큰 반찬 가방에 처음으로 내가 준비한 것들을 채워 넣으니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했다. 좋아하실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 그렇구나. 나는 단순히 '책임'을 다하려고, 남들보다 잘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 소중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그들이 잘됐으면 좋겠으니까. 그게 나의 행복이기도 하니까.




책임감과 열등감으로 움직인 모든 날들은 나를 위한 시간은 아니었던 것일까? 렇지 않다. 처음 시작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 끝에는 결국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나의 책임감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의 열등감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이런 책임감과 열등감을 나의 자랑으로 소개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더 열심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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