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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Feb 12. 2023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읽고

엄마가 된 나에게 건네는 위로와 격려

긴 기다림 끝에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스스로 믿기지 않아 임신 테스트기를 아주 많이 했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매일 노심초사하며 테스트를 하고 또 했고, 다 쓴 테스트기를 모두 모아 만삭 촬영 때 가져갔더니 사진 작가가 놀랄 정도였다.


그렇게 간절히 기다렸던 임신과 출산. 내 눈을 쏙 빼닮은 아기가 초롱초롱하게 나와 눈을 맞추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행복한 만큼 불행했다. 나는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너무 힘든데 이 모든 게 엄마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니까 힘들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런 나에게 보니 가머스의 소설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들어해도 된다고, 엄마가 힘든 것 아당연하다고, 엄마도 스스로를 위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여기에 오는 동안 쾅쾅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내가 연구실을 짓고 있습니다."
"농담이죠?"
"난 농담 같은 거 안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곧 엄마가 될 거잖아요."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 책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는 화학자이다. 임신을 이유로 연구소에서 너무나 쉽게 해고당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집 주방을 직접 부수고 연구실로 개조하여 연구를 이어간다. 그녀의 동료가 말한 "하지만 당신은 곧 엄마가 될 거잖아요."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임신을 준비할 때와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의 나는 "곧 엄마가 될 것"이라며 지레 포기한 것들이 참 많았다. 꼭 해보고 싶지만 시작하기는 두렵고 어찌 보면 귀찮은 일들을 힘든 몸을 핑계로 미뤘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순간에는 육아를 핑계로 미루고 있었다. 지금은 1950년대도 아니고, 그 누구도 나에게 "넌 곧 엄마가 될 테니 그건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왜 나는 스스로 엄마가 되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처음부터 포기했을까? 엄마가 된다는 것도 내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인데.


"말인즉슨, 사람들은 임신을 무슨 세상에서 가장 흔한 질병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거예요. 발가락에 가시가 박힌 정도로 별 것 아니라는 듯 말이죠. 하지만 알고 보면 임신은 트럭에 치이는 것과 동급입니다. 아니, 트럭에 치이는 편이 더 가벼울 지경이죠."

엘리자베스의 산부인과 주치의인 메이슨 박사가 그녀를 진료하면서 해주는 말이다. 임신에 대해 이렇게까지 솔직한 표현은 본 적이 없. 나는 물론 트럭에 치여본 적은 없지만, 임신에 출산과 육아까지 합치면 트럭에 치이는 것 이상의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고통을 대체로 아름답고 숭고한 일 포장하는 데 그친다. 그래서였을까? 너무 힘든데 힘들다고 말하면 어쩐지 나만 유난을 떠는 것 같이 보였다. 그래서 최대한 힘들다는 말을 숨기고 임신이든 출산이든 의연하게 해내려고 노력했고, 잘 해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억울함과 답답함이 남았다. 그래서  '트럭에 치이는 것과 동급으로 힘든 일을 해내고 있다'라는 말이 참 고마웠다.


"저기, 아기를 갖다 버리고픈 마음이 몇 번 들었다고요? 두 번?"
그러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웃었다. 그 소리에 엘리자베스는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웃자고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 정말 두 번 밖에 안 들었어요? 그런 마음이 스무 번 든다 해도 절대 많은 게 아니에요."
엘리자베스는 눈길을 떨구었다. 슬로운 부인은 동정하는 기색으로 씨근거렸다.
"이런 제길.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을 하는 중이라고요. 당신 어머니가 아무 말도 안 해줬어요?"

신생아 육아에 지친 엘리자베스를 걱정하며 집에 들른 이웃 슬로운 부인이 해주는 말이다. 메이슨 박사가 임신이 트럭에 치이는 것과 동급이라고 말했다면, 슬로운 부인은 육아는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고 말해준다. 육아가 힘들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내가 실제로 직접 해보니 힘들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밤마다 나의 능력 부족을 탓하며 울 때가 많았고, 출산 후 회복되지 않은 몸과 마음, 부모가 되었다는 압박감에 고된 육아가 겹쳐져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대체로 "엄마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 " 또는 "그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다." 등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힘든 일인 게 맞는지, 나 혼자 유난 떠는 건 아닌지, 임신했을 때와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을 하는 중이라고요."라 슬로운 부인의 말 정말 필요한 것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봐요. 매일."
"시간이라고요?"
"자신이 최우선이 되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오롯이 나만의 시간요. 아기도, 일도, 죽은 에번스 씨도, 더러운 집도 다 제쳐두고요. 딱 나를 위한, 엘리자베스 조트를 위한 시간을 가져봐요. 뭘 필요로 하든, 뭘 원하든, 뭘 찾든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욕구를 충실하게 추구해 봐요."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에게 슬로운 부인이 해주는 조이다. 처음 혼자서 아기를 돌보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시간이 없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온 힘을 다 해 내 모든 을 아기에게 쏟아부었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보다 내 일을 사랑하고 일에 대한 배움을 즐거워했었는데, 육아를 시작한 뒤로는 초췌한 몰골로 집에 틀어박혀 배움은커녕 하루종일 사람과 대화조차 하지 못했다.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시간에 갇혀버린 것 같다는 느낌으로 반쯤 미쳐버릴 때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봐요."라는 문장을 읽고 머리에 불이 켜진 것 같았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아기가 잠든 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했다. 출산 후 처음으로 가진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다. '엄마'만 있고 '나'는 없어진 것 같았는데, 다시 나를 찾은 것 같.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엘리자베스는 세상의 주부와 엄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시작했다. 하루의 목표를 아이패드에 적고, 묵혀두었던 영어 원서를 다시 꺼내 읽고, 육아책을 읽으면서 공부한다. 물론 아기를 돌보다 보면 연속적으로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한 손엔 아기를 안은 채 짬짬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이북을 읽거나, 일기를 쓰다 말고 우는 아기를 달래는 식이다. 그래도 이렇게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큰 위안이 된다. 나는 나 자신을 잊지 않았으며,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 생애 가장 리적으로 불안하고 위태로웠던 신생아 육아 시기에 읽은 이 책은 그 어떤 육아책보다도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생아 시기를 거쳐 본격적인 육아 휴직을 앞둔 지금, 엘리자베스가 보내는 격려의 문장들을 다시 읽으면서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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