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한 날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풍자 소설입니다. 이름 없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인간 사회를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저는 특히 이 문장을 좋아하는데, 사실 우리도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밝게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깊은 슬픔을 감추고 살아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꾹꾹 눌러둔 슬픔은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불쑥 찾아옵니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바라본 앙상한 나뭇가지가 내 모습 같고, 늦은 밤 아무도 없는 텅 빈 골목길을 걷다가 공허감을 느꼈다면, 지금 당신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불쑥 슬픔이 찾아올 때, 제겐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더 외로워지는 겁니다.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이야기나 문장을 찾는 거죠. 그러다 뭔가 쿵 마음에 와닿을 때면, 나도 모르게 펑펑 눈물이 납니다. 그럴 땐 마음이 풀릴 때까지 맘껏 울면 됩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요. 홀로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그 안에 있는 것과 솔직하게 마주하는 거지요. 정호승 시인은 그 기분을 「바닥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은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_정호승, 「바닥에 대하여」,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 2004
우리 마음의 바닥, 그 깊숙한 곳에 있는 슬픔까지 찾아와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 자신이죠. 우리에겐 다른 사람의 위로가 간절한 순간도 있지만, 때로는 그 슬픔을 직면하고 위로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때 책 속 문장이 다가와 손을 건네며 말을 거는 겁니다. 자기 감정과 마음에 온전히 집중해보라고, 내가 곁에 있어주겠다고 말이지요.
가끔은 이 세상에 수많은 슬픔이 있고 모두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점이 어쩌면 삶의 가장 멋진 부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우리에게 슬픔이 없어서 위로도 필요 없다면, 자신의 깊은 내면을 마주하려거나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없었을 테니까요.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로 유명한 정재찬 교수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때가 있고, 절망도 없을 만큼 절망적인 세상이 있는 법이다. 절망도 없는 것이야말로 절망이다. 슬픔도 없는 것은 정말 큰 슬픔이다. 이렇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렇다면 자신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시인은 말한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것이 이 시인의 낙관이요, 희망이다. 이런 세상에서 그래도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은 사랑뿐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이 희망이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을 서로 사랑하는 것만이 희망이다.
-정재찬, 『시를 잊은 그대에게』, 휴머니스트, 2015
괜찮아. 좋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조금 뻔해 보이는 말들이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면 커다란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위로는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는 자기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세상 모두에겐 위로가 필요하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말이죠.
위로가 필요한 날
무엇으로 이 슬프고 쓸쓸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날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정말 위로가 필요한 날,
자신에게 꼭 와닿는 따스한 온기를 말입니다.
책『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에 담긴 글입니다.
제가 공감하고 큰 위로를 받았던 인생의 문장들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분이 공감해주신 문장들이기도 하죠. 부디 이 책이 당신의 지치고 외로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고, 언제든지 편하게 기대 쉴 수 있는 쉼터가 되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처음 걸어가기에 헤맬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당신이 나아갈 길을 밝혀줄 작은 반딧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