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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승환 Jan 02. 2020

우리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요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랑이 우리가 본받을 만한 좋은 사랑일까요?아니, 사랑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사랑을 하는 걸까요?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양극성이라는 관점으로 분석합니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처럼 본래 인간은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고 있었지만 신에 의해 둘로 나뉘었고, 따라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나머지 반쪽을 찾아 다시 하나가 되려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프롬은 셰익스피어나 바이런에 비견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랑의 시인’ 루미의 시를 인용해 이런 개념을 설명하는데, 여기서 그 일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를 원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그를 원할 때뿐이다. 
사랑의 불꽃이 ‘이’ 가슴에서 타오를 때 
‘저’ 가슴에도 사랑이 깃든 줄을 알게 된다. 
(… …) 
한 손이 없으면 한 손으로는 손뼉을 칠 수 없다. 


사랑하는 마음이 싹틀 때부터 연인은 많은 것을 공유하려 합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함께하려 하지요. 서로의 관심사나 취향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보통 접점이 많을수록 관계는 더 좋아집니다. 어쩌면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짓으로 공통점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맞추기만 한다면 그사랑에는 분명 한계가 있겠지요. 


물론 사랑은 일정 부분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그 게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죠. 희생하는 쪽이 삶의 주체성을 잃고 점점 지쳐갈 테니까요. 이렇게 상대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은 보통 사랑에 강자와 약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예전에는 이런 생각에 일부분 동의했었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덜 사랑하는 쪽보다 손해고, 관계에서 더 약자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잘 압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거친 끝에, 마침내 저는 사랑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랑한다고 서로 완전히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무리 한몸 같이 가까운 연인이라 하더라도, 정말 한 사람 처럼 매 순간 모든 감정을 공유할 순 없죠. 연인에게도 서로 적절하게 빈 공간이 있어야 아픔이나 분노, 상처가 빠져나갈 수 있고, 또 기쁨과 애정이 채워질 수도 있습니다. 


서로 배려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때에야 한 사람의 인 간으로 보다 성장할 수 있죠. 이처럼 사랑은 관계의 수평을 찾는 일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랑은 서로 손을 맞잡는 일,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 요. 연인이라고 온종일 서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평소 묵묵히 각자 일을 하다가도, 함께할 땐 손을 꼭 잡고 같은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가는 거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의 감정과 일상과 체온을 공유하면서 말입니다. 바로 생텍 쥐페리가 다음과 같이 남긴 말처럼 말이죠.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책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에 담긴 글입니다.


책 살펴보기


제가 공감하고 큰 위로를 받았던 인생의 문장들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분이 공감해주신 문장들이기도 하죠. 부디 이 책이 당신의 지치고 외로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고, 언제든지 편하게 기대 쉴 수 있는 쉼터가 되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처음 걸어가기에 헤맬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당신이 나아갈 길을 밝혀줄 작은 반딧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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