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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승환 Dec 29. 2019

돌아보면 언제나 혼자였지만

인생에서 계절을 하나 통째로 잃어버리겠다는 기분

기운이 없을 만큼 힘들 때, 

내 마음을 꼭 알아주는 이야기나 

문장을 만나면 조금이나마 힘이 납니다. 


우리는 다른 시대나 다른 사람의 삶을 결코 살아볼 수 없지만, 책을 통해서는 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죠. 아마도 이런 것이 독서의 가장 큰 힘일 겁니다. 어려운 일에 부딪혀 희망과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마치 주문처럼 되뇌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바로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인 개츠비입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출처 : Granta)
그는 인생에서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 적 재능이었다. 


‘잃어버린 세대(Lost Gernera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수한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에 불어 닥친 허무하고 쾌락적인 사회 분위기를 주도한 청년 세대를 말하죠. 미국의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이 그 말을 처음 사용했고, 헤밍웨이가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서 “당신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라는 문장을 써서 널리 쓰이게 됐죠. 전쟁 이후 절망과 허무 속에서 인생의 의미와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포크너, 에즈라 파운드 같은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바로 그 시대를 살았습니다. 

Lost Gerneration (출처 : voice map)


그중에서도 피츠제럴드와 그가 창조해낸 개츠비는 단연코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모두가 허무한 쾌락만 탐닉하는 세상에서 비록 환상이나 집착에 불과할지라도 희망과 사랑의 가능성을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인물이죠. 한없이 외롭고 허무한 감정에 사로잡힐 때에 어떤 현실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개츠비를 떠올리면 왠지 위로가 됩니다. 만약 그가 눈앞에 있다면 술 한잔 함께 기울이고 싶을 정도로 팬입니다. 


책은 아니지만, 이런 상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준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바로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입니다. 영화는 파리에 가게 된 주인공 길이 밤 12시에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며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외에도 피카소, 모네, 드가, 고갱, 달리 등 위대한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바로 그 시간이죠. 영화를 보는 내내 1920년대 파리의 아름다운 거리를 산책하고,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주인공이 몹시도 부러웠습니다. 

"Midnight in Paris" (2011)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술가들 중에서 저는 피츠제럴 드의 친구였다가 훗날 앙숙이 된 헤밍웨이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강해 보이는 말투와 행동 속에 어딘가 여린 마음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특히 좋았던 대사가 있었습니다. 


"Midnight in Paris" (2011)


세상에 나쁜 소재는 없소.
내용이 진실되고
문장이 간결하고 꾸밈없다면,
그리고 어떤 압력 아래에서도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는다면


소란스럽지 않은 진심을 전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제 태도에 깊은 영감을 주었죠. 영화를 보고 난 뒤 그의 소설과 에세이를 찾아보게 됐습니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1920년대 파리에서의 생활을 그린 에세이 『호주머니 속의 축제』입니다. 

강변을 거닐 때면 조금도 외로운 줄을 몰랐다. 나무가 그토록 많은 도시에서 다가오는 봄을 눈으로 날마다 확인할 수가 있으며, 어느 날 밤 따스한 바람이 불고 아침이 오면 완연한 봄날을 맞게 된다. 때로는 차가운 비가 심하게 내려 봄을 쫓아버린 탓에 새 계절이 절대로 오지 않을 듯하고, 그러면 내 인생에서 계절을 하나 통째로 잃어버리겠다는 기분조차 든다.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작가 헤밍웨이도 “인생에서 계절을 하나 통째로 잃어버리겠다는 기분”을 느낄 만큼 큰 외로움과 상실감을 느꼈던 것이죠. 당연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니까요. 우리 모두는 개별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으면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니까요. 


그렇게 외로울 때에도 혼자 외롭지 않기를. 마음에 닿는 문장을 읽거나 혹은 영화든 음악이든 다른 어떤 예술이든, 당신의 그 마음이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기를. 당신이 외로울 때, 어딘가엔 함께 외로워할 누군가는 반드시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그 외로움을 견뎌내고 나면, 어느 때 인가 작은 온기들이 다시금 당신 곁에 찾아올 테니까요. 더없이 추운 겨울이 지나가면, 그 뒤엔 거짓말처럼 봄이 찾아오듯이 말이지요.  



책『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에 담긴 글입니다.


책 살펴보기


제가 공감하고 큰 위로를 받았던 인생의 문장들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분이 공감해주신 문장들이기도 하죠. 부디 이 책이 당신의 지치고 외로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고, 언제든지 편하게 기대 쉴 수 있는 쉼터가 되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처음 걸어가기에 헤맬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당신이 나아갈 길을 밝혀줄 작은 반딧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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