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면적인 영어에 생명력이 생기기까지
한국에서 나는 영어를 잘 하는 축에 속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영어였다. 수능에서 외국어영역은 딱 1개 틀렸고 공부 안 하고 봤던 첫 토익점수는 820점이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영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영어권 나라라면 다 똑같은 영어를 쓰는 줄 알았다. 영국 악센트가 명확하게 들리는 영화 ‘해리포터’를 볼 때도 한글 자막만 봤지 실제 배우들이 하는 영어는 듣지 않았다. 엉터리 입시 교육의 수혜자였다는 걸 알게 된 건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영국 워킹홀리데이에 합격한 이후 영국영어가 미국영어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황스러웠다. 20년 가까이 미국 영어를 배웠는데 다시 영국 영어를 배워야 하다니 억울했다. 마음을 추스리며 어떻게 준비할지 생각했다. 조사해보니 IELTS라는 영어시험이 있었다. 영국버전 토익같은 영어시험으로, 듣기・읽기・ 쓰기・말하기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단기간에 영국영어를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IELTS 학원을 다니며 영어공부를 하고 시험까지 봤다. 집에서는 영국 드라마 ‘My Mad Fat Diary’를 보면서 배우들 말을 받아쓰고 따라 말했다.
영국에 처음 도착해서는 2개월동안 옥스포드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영어학원을 다녔다. 내가 만난 홈스테이 가족은 영국 백인 ‘캐롤라인’ 아주머니와 그녀의 90대 어머니였다. 홈스테이를 오래 하셔서 그런지 아주머니는 내게 정확한 발음으로 천천히 말해주셨다. 학원에는 활발하고 친절한 외국친구들이 많았지만,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만들겠다고 학원 친구들을 멀리했다. 그저 집에 돌아와서 숙제 열심히 하고 학원에서는 수업에 집중했다. 오기 전에 준비할 때도, 와서 학원을 다닐 때도 이렇게 한국 입시 스타일로 공부하고 있었다.
홈스테이가 끝나갈 무렵, 런던으로 가는 내게 캐롤라인 아주머니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던져주셨다.
“‘옥스팜(Oxfam)’에서 봉사하면서 영어를 익히는 건 어떻겠니?”
영국엔 옥스팜을 포함해 자선 가게(Charity shop)가 많다. 이런 가게는 기증받은 중고품들을 팔아 자선기금을 모은다. 가게는 매니저를 제외하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된다. 자원봉사인 만큼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외국인이어도 괜찮았다. 다행히 내가 이사 온 동네에 옥스팜이 있었다. 용기 내서 지원서를 냈고 친절한 매니저가 날 받아주었다. 처음엔 창고에서 기증받은 물품을 분류하고 가격표를 붙이는 일을 했다. 나중에는 계산대에서 직접 손님들을 상대하기도 했다. 8개월 동안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봉사자들은 주로 동네 노인분들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 런던 내에서도 동네별로 악센트가 다르구나!’ 내가 살았던 동네엔 이스트런던 악센트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노동자층(working class)이 많이 쓰는 억양으로 ‘T’ 발음을 생략하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면 water는 ‘워터’가 아니라 ‘워.어.’로 발음을 한다.
이를 시작으로 7년동안 정기적으로 ‘발음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발음은 무수히 많은 영국발음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것도 귀족계층이 쓰는 발음이었다. 드라마 ‘셜록’으로 유명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상류층 발음을 구사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상류층이 거의 없었다. 이곳에 갓 발을 들인 외국인 노동자로서 마주한 건 노동자층, 중산층 그리고 타지역과 전세계에서 온 이들의 각양각색 악센트였다. BBC나 팟캐스트로 들은 영어로는 바다같이 넓은 범위의 악센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했다.
2014년 초, 나의 첫 데이트 상대였던 영국인 톰과 통화할 때 일이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줄임표를 끝없이 늘어뜨리게 되었다.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를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혀 있었다. 나중에 톰은 ‘너 진짜 영어공부 좀 해야겠다.’라고 핀잔을 주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 입시에서는 영어성적이 최고였는데 ‘영어의 나라’ 영국에서 열등생 취급을 당하다니...
내 영어 실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건 2017년 ‘러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세계적인 대기업이지만 본사는 런던이 아니라 작은 바닷가 마을에 있었다. 직원들과 마을 사람들까지 전부 영국 백인이었다. 수많은 외국인이 공존했던 런던과 달리, 나만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다. 매일 영어에 둘러싸여 있다가 집에 오면 기가 쭉 빠진 채 바로 쓰러졌다. 가장 곤혹스러웠던 건 전화영어였다. 영어가 서툰 내게 전화로 대화하는 영어는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무서운 일이었다. 의사소통에서 언어의 비중은 30%에 불과하고 비언어가 70%라고 한다. 바디 랭귀지 없이 목소리로만 소통해야 하니까 매번 진땀이 뻘뻘 났다. 지방이라 저렴한 집세로 혼자 살게 된 대신, 공과금을 직접 다루어야 했다. 수도세, 전기세, 가스비 등 해당 회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주거 등록을 해야 했다. 한번은 수도세 회사 직원이 스코틀랜드 억양이라 알아듣기 힘들어서 1시간 넘게 통화한 적도 있다. 그 직원은 친절하게 몇 번이나 반복해서 얘기해줬다. 이렇게 당황하고 자학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사이 어느덧 나도 모르게 귀가 뚫려있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제대로 실감했다.
영국살이 7년이 지난 지금, 영어를 할 때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더 이상 전화영어가 두렵지 않다. 잘 못 알아들으면 다시 말해달라고 자신 있게 부탁한다. 여러 명과 회의해도 70%는 따라갈 수 있고 질문할 용기도 있다. 스타벅스에 가면 “아이스 카페모카, 톨 사이즈로 휘핑크림 빼고, 두유로 주세요.”를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알아듣는 연기’도 능숙해졌다. 주로 ‘Cool!’, ‘Ok!’라고 웃으며 대답하면 대화를 능구렁이처럼 넘어갈 수 있다. 중요한 게 아니면 그냥 넘긴다. 100% 꼼꼼히 소통하려고 하면 육체적으로 피곤해지니까 생존본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영어는 쉽지 않다. 지방이나 외국 억양이 강한 영어는 잘 못 알아듣는다. 내가 말할 때 가장 어려운 건 장단음을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다. 내 귀에는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영국인들은 내가 얼마나 음을 길게 말하느냐에 따라 이해도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맥주 종류 중 하나인 라거(Lager)는 ‘라-’를 한국인치고 정말 길게 빼줘야 한다. 버터(Butter)는 의외로 단음이라서 한국식으로 싱겁게 ‘버터’라고 하면 쉽게 알아듣는다. 나는 이상하게 장음을 할 때마다 너무 부끄럽다. 한국어에선 신경 쓰지 않던 것이라 나답지 않고 영 어색하게 들린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태도라는 걸 깨달았다. 영국까지 왔으니 영어를 써야 하는 건 당연했지만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영어로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영국인이 얄미웠다. 역사적으로 영어권 나라가 강성했고 전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 것 뿐이었다.우리나라에서는 학교에서 모국어 외 영어를 필수로 배우지만 영국인들은 평생 영어 외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내가 외국인으로서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건 당연해.
오히려 영어권 사람들은 내가 영어로 소통해주는 것에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데?
라고 생각을 하니까 영어를 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보다는 눈 동그랗게 뜨고 ‘내가 친히 너희를 위해 영어를 해줄게!’라는 마음으로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어차피 외국인이야. 영어가 모국어인 너희가 알아서 잘 이해하거라.’라는 입장으로 변했다. 이후 영어 쓰는 게 훨씬 편해졌다. 내 목소리는 전보다 또렷하고 커졌다.
영어를 배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특히 많은 한국인들의 문법과 어휘 수준이 여느 외국인보다 훨씬 높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부족한 건 그 수준보다 훨씬 낮은 자신감이었다. 영어로 말을 해야 우리가 배운 이론이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그 입체감을 두려워하지 말고 뻔뻔하게 영어로 말을 해보자. 여유롭게 틀린 영어를 내뱉을 줄 알아야 우리가 배운 영어에 생명감이 생긴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실전은 기세’라고 하지 않았나!
혹시 런던에 살 예정이신가요?
<런던 생생정보통>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