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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킴 Oct 22. 2023

영국에서 길을 걷다 날계란을 맞았다

영국살이 중 대놓고 당한 인종차별

2017년 1월, 시골로 이사 온 지 겨우 보름이 지난 날이었다. 흐린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출구로 걸어가다 고개를 돌렸는데 교복 입은 백인 남자애들이 기차 안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히죽히죽 웃더니 나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도 덩달아 입꼬리를 올리고 양손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아이들은 더욱더 크게 웃으며 동양인 눈을 비하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고개를 홱 돌리고 출구를 나왔다. 난데 없는 뻐큐에 여유롭게 잘 맞섰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걸어갔다.


두 번째 직장인 러쉬의 본사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있었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매장이 있는 글로벌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런던이 아니라, 회사를 시작했던 마을에 여전히 뿌리를 두고 있는 게 놀라웠다.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이 마을에 온통 백인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2년 동안 다인종이 사는 런던에 있다가 이곳으로 오니 갑자기 외계인이 된 기분이었다. 심지어 본사의 직원들조차 이 지역 출신 백인들이 많았다. 직원 100명 중 5명만이 유색인종이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가 팍 죽었다. 내가 여기서 너무 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 


그로부터 정확히 두 달 뒤, 퇴근길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친해진 동료와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겨우 몇 초가 지난 뒤였다. 동료에게 손을 흔들 때 동료의 손 너머로 10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 세 명이 웃고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한 명은 씽씽카를 타고, 한 명은 자전거를 타고, 한 명은 그냥 서 있었다. 동료와 인사를 마치고는 고개를 돌렸다. 헤드폰을 끼고 평온한 마음으로 음악을 틀었다. 골목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철퍼덕!

걸음을 멈췄다. 동공이 커졌다. 옆을 돌아보니 아까 봤던 그 꼬마들이 꺄르르 웃으면서 이미 나를 뒤로 한 채 달아나고 있었다. 조각난 달걀 껍데기가 내 머리에 붙어 있었다. 날계란은 주르륵 흘러 이미 내 목도리와 외투를 적시고 있었다.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거친 일을 당할 때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들 한다. 이때의 나도 그랬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였고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지금...날계란 맞은 거야?’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어느 정도 강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아무 잘못 없이 새파랗게 어린 애들에게 날계란을 맞았다. 한국 꼬마 애들이 치는 장난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피해 주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 한국에서 온 내게는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터벅터벅 걷다가 큰길에 다다랐다. 회사 동료 루카가 보였다. 그는 벤치에 앉아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갔다.


“루카... 나 방금 계란 맞았어...”


루카는 깜짝 놀라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내 매니저 애러시에게 연락했다. 급하게 달려온 애러시는 내게 괜찮냐고 묻고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리고는 눈이 동그래진 채 울고 있는 나를 집까지 태워다주었다. 그는 나처럼 본사에 몇 안 되는 소수인종이었다. 애러시는 인도계지만 엄연한 영국인이었다. 그런 그도 학창 시절 백인이 아닌 브라운계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많이 당했고 날계란을 맞은 적이 있다고 했다. 알고보니 여기서 날계란 던지기는 괴롭힐 때 흔한 모양이었다. 애러시는 나를 달래며 말했다.


"너는 안전한 곳에서 일할 권리가 있어.
네가 원하면 어디서라도 일하게 해 줄게.
당분간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그는 내게 날계란으로 눅눅해진 옷을 세탁하라며 세탁비까지 챙겨주었다. 일단 그 주 내내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회사에서는 우리집으로 커다란 꽃다발을 보내주었다. 함께 온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 모두 널 생각하고 있어. 사랑을 가득 담아, 러쉬 가족으로부터”


백인 꼬마애들에게 화가 났고, 백인 동료들에게 감동했다. 영국백인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섣부른 일반화를 할 뻔했는데 회사에서 이렇게 대처를 잘해주니 분노의 씨앗이 사라졌다. 몇 달 뒤 나는 런던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5년 뒤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런 일은 다시 겪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흔치 않게 과격했던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을 낯설게 느끼면서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내 주변에도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인종에 대해 어깨를 들썩이며 싫다고 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국에서 평생 살아서 외국인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외국인 친구가 생긴다면 그들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어릴 때부터 인종의 다양성과 평등함에 대해 가르치는 게 사회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교육 중 하나로 미디어가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 되고 있다. 2020년 흑인 및 동양인들의 인권 운동이 연달아 일어난 이후 영미권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물들의 피부색이 훨씬 다양해졌다. 나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산다는 것 그리고 유색인종이 백인보다 직급이 높을 수도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노출이 앞으로 자라날 어린 친구들에게 차별 없는 시선을 갖도록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도 한류문화로 세계의 시선을 끌고 있는 만큼 미디어를 포함해 여러 방법으로 인종의 다양성을 가르치면 좋겠다. 혹여나 흑인 친구가 한국 지방에 일하러 왔다가 나처럼 날계란 맞는 일이 없도록! 





혹시 런던에 살 예정이신가요?

<런던 생생정보통> 한 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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