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취업 성공기
영국 워킹홀리데이 시절 우여곡절 끝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첫 커리어를 쌓았다. 그때 일한 곳 사장이 취업비자를 지원해주겠다고 해놓고 내 비자 끝날 때가 되서야 비자 못 해주겠다고 내뺐다. 그렇게 워킹비자 기간이 다 된 2015년 9월 1일 한국으로 급하게 돌아와야 했다. 내가 능동적으로 영국과 마무리 지은 게 아니라 영국에게 차인 느낌이었다. 괜히 너무 억울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자니 한국의 근무환경은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부모님께 딱 1년만 영국 취업에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지난 이야기 풀버전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 클릭!)
https://maily.so/ss.in.london/posts/e6fe29fd
나는 런던에서 2년 이상 머물면서 내가 원하는 멋진 직장에서 일할 것이다.
회사는 센트럴이나 이스트 런던에 있고, 내 연봉은 넉넉하다.
나는 2D 모션그래픽 뿐만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 일도 한다.
인하우스(In-house) 디자이너여서 야근이 없고 늘 칼퇴근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멋진 동료들과 내가 즐길 수 있는 작업을 한다.
위 글은 구직활동 1년 동안 내가 공책에 종종 썼던 글이다. 과연 이렇게 묘사한 회사를 찾았을까?
영국은 미국과 함께 비자 받기 가장 어려운 나라로 유명하다. 2016년 당시 취업비자 받는 과정은 4단계였다.
1단계, 회사의 스폰서십 자격증 취득: 취업비자를 약속한 회사는 영국 정부로부터 받은 스폰서십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없으면 일단 이것부터 따야 한다. 그 자격증은 EU가 아닌 외국인을 고용할 때 필요하다.
2단계, 회사는 한 달간 구인광고를 낸다: 고용하고자 하는 외국인이 국내 수요로 대체할 수 없다고 증명하는 과정이다. 피곤~�
3단계, 회사가 정부에 비자를 신청: 회사는 비자지원서를 낼 때 고용 외국인의 비자지원비, 의료보험료, 국민보험료까지 내야한다.
4단계, 비자 결과 기다리기: 프리미엄 서비스에 따라 1일~7일, 스탠다드 서비스면 몇 달 기다려야 결과가 나온다.
생각만 해도 졸라 성가시지 않은가? 이렇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절차를 해줄 회사가 몇 있을까? 나같아도 외국인 안 쓰겠다. 불가능한 이유는 넘쳤다. 유럽연합 자체에도 인재가 넘쳐나고, 내가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디자인 실력이 엄청 뛰어나냐? 그것도 아니었다. 이런 생각으로 하루에도 수십번씩 기가 죽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싫은 건 한국에서 일하는 거였다. 일 외적으로 신경 쓸 게 많은 수직 구조와 회식문화가 너무 싫었다... 한국이냐, 영국이냐 고른다면 압도감이 들어도 역시나 영국 근무환경이 나았다. 영국에 미련이 많이 남아있기도 했으니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해보기로 했다. 머릿속에 ‘Just do it’ 모드를 켰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항상 Just do it 모드였냐? 절대 아니다. '난 할 수 있어!'와 '난 안 될 거야'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왔다갔다했다. 거의 자아 분열모드였다. 압도감에 엉엉 울다가 다시 힘을 냈다가 또 기죽었다가~��
감정기복이 정말 심했어도 매일 조금이라도 취업 준비를 했다. 일단 9월 한 달동안은 기존에 있던 포트폴리오로 구인광고에 나온 디자인 job이면 닥치는 대로 지원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영국에 한 스포츠 데이터 회사와 인연이 닿았다. 그쪽에서 내가 했던 인포그래픽을 좋게 봐줬다. 일단 면접 단계에서 과제를 줬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팀 리버풀 vs 에버튼의 경기 골 확률 데이터를 던져주고는 시각화를 해보라고 했다. 근데 엑셀로 이뤄진 데이터 용어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갔다. 예를 들면 Attempts, Good chance, Great chance 등등... 새벽이 될 때까지 엄청 헤매다가 영국 축구광팬 친구가 용어를 설명해줘서 겨우 이해했다. 막판에 벼락치기로 디자인이 생각보다 잘 나왔고 합격하게 되었다. 그렇게 풀타임 계약직으로 2개월동안 한국에서 원격으로 영국 시차에 맞춰 오후 4시~밤 12시까지 일했다. 12월 말에 내가 마음에 들면 취업비자를 해준다고 했다. 친구 덕에 합격은 했지만 그때까지 프리미어 리그 축구팀 이름을 하나도 몰랐다. 교보문고에서 프리미어 축구팀책을 주문해서 공부했다. 다행히 일의 본질은 이전직장에서 했던 인포그래픽 디자인과 비슷했다. 받은 정보를 막대그래프나 파이차트로 멋진 스타일로 알기 쉽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12월말 취업비자를 지원해주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코딩도 좀 하는 사람을 원했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눈물콧물을 쏟았다.
다음해(2016년) 1월, 일과 사랑을 위해 영국취업에 계속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잠깐, 사랑...? 영국이 그리운 나머지 데이팅앱 국가 설정을 영국으로 하고 활동한 결과 영국인 남자와 미친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아예 영국으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계속 발전시키면서 구직을 했다. 인터뷰가 들어오면 바로 회사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이와 동시에 영국인 남자친구와는 물리적으로 가까워졌는데 오히려 계속 싸우게 되었다.
결국 해가 짧아 늘 어둑했던 그 겨울, 날씨보다 더 쌀쌀하고 차가운 경험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영국에서 1-2월동안은 사람을 별로 뽑지 않는다고 하더라... 정말 단 한 곳에서도 연락받지 못하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진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2개월간 번 돈은 에어비앤비로 홀랑 나가고, 드디어 시작했다고 기뻐했던 국제연애는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꺼져버렸으니... 내 마음은 엉망진창이었다. 얼굴엔 눈물자국이 마르지 않았다. 어느덧 3월, 따스한 봄이 오고 있었지만 내 앞길은 여전히 흐린 겨울이었어. ‘나 이제 어떡하지?’
‘나는 왜 이렇게 영국에 집착할까? 나는 왜 영국에서 일을 하고 싶은가?’
런던 물가는 정말 비싼 데 말이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지만 답이 잘 안 떠올랐다. 여전히 변치 않았던 건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는 점이었다. 반드시 영국이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쌓은 2년의 경험을 제대로 활용하고도 싶었고...그때 문득 런던 쇼디치(Shoreditch)에서 퀵보드를 타고 지나가던 힙스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음, 맞아! 나는 그런 런던의 자유로운 여피족이 되고 싶었던 거야! 괜찮은 직장에서 괜찮게 돈을 벌며 퀵보드를 타고 커피 한 잔 마시러 가는 여유. 평일 저녁엔 파티를 가고 주말엔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그런 삶. 일만으로 뒤덮인 시간이 아닌, 일 말고도 재미있게 즐기는 생활을 하고 싶었던 거다�
다시 한 번 마음을 잡았다. ‘그래. 1년동안 하기로 했으니 계속 도전해보는 거얏!!!'
이제는 비자 받기 유리한 직업군인 모션그래픽(애니메이션)쪽으로 아예 방향을 틀기로 마음 먹었다. 모션그래픽은 정적인 그래픽 디자인보다 더 높은 기술이 필요해서 영국비자지원 목록에서 부족직업군에 속했다. 목록에 있는 직업은 비자 절차가 훨씬 간단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노동 강도가 세고 영상 렌더링하는 것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너무너무 피하고 싶었던 일이다. 진짜 눈 질끈 감고 대학시절 하던 모션그래픽으로 돌아갔다. 한 달 동안 매주 1회 고향에서 3시간 걸리는 서울 홍대 학원까지 모션그래픽 수업을 들으러 갔다. 대학교에서 배우기만 했지 실제 모션 경력이 없었기에 매일 습작해서 포트폴리오를 발전시켜야 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멘토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영국사랑' 커뮤니티를 통해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봐준다는 영국 현지 디자이너 윤**분께도 연락드렸다. 그 분께서 포트폴리오 피드백도 잘 해주시고 격려도 많이 해주셨다. '커버레터에 취업비자가 필요하다는 말은 쓰지 말고 일단 지원해볼 것', '지금 포트폴리오에 과정이 담긴 점이 좋다.' 등등. 구체적으로 피드백을 주신 점에 너무 감사하다.
이력서(CV)는 현지 디자이너로 일하는 친구 두 명의 이력서를 받아 참고했다. 그들에 비해 내 이력서는 너무 길고 한눈에 읽히지 않았다. 그 친구들처럼 간략하게 딱 1페이지로 줄였다. 읽기 쉽고 깔끔하게 디자인하되, 내 이름을 특별한 타이포그래피로 디자인하여 개성도 한 줌 넣었다.
포트폴리오는 훨씬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는 자신이 만든 영상작업을 1분내외로 편집해서 보여주는 '쇼릴'은 필수고, 그외 자세한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홈페이지'도 있으면 플러스였다. 더욱이 내 작업은 그동안 그래픽 디자인 작업이 많았기에 쇼릴만으로는 승부를 낼 수 없었다. 마침 내가 원하는 일도 모션그래픽 약간 + 그래픽 디자인 약간으로 섞인 일이었다.
이렇게 취업준비물 세트- 쇼릴, 홈페이지, 이력서, 커버레터 모두 하나의 디자인으로 통일해서 만들었다. 같은 컬러, 폰트, 배경색을 넣었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한다고 생각해보라. 압도감에 숨을 쉴 수가 없겠지? 심호흡하면서 매번 그 과정을 ‘쪼갠다’고 생각했다. 매일 준비물을 완성하기 위해 그날 할 것들을 하나씩 했다. 동시에 예전 준비물 그대로 매일 1~3군데 지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다행히 영국은 준비물만 잘 갖추면 지원하기는 수월한 편이다. 얼굴사진, 자기소개서나 인적성검사 같은 게 필요 없다. 회사 이메일로 이력서와 커버레터, 포트폴리오 링크를 보내면 끝이다. 단, 광고에 적혀있는 인재상에 맞게 회사별로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조금씩 수정해서 보냈다. 예를 들어 '에프터 이펙트를 잘 다루는 사람', '멀티태스킹을 잘 하는 사람'이 들어있다고 하면 지원할 때 그 특징을 꼭 넣어서 제출했다.
어느덧 5월이 되었다. 마침내 완료한 새로운 준비물 세트로 지원했더니 드디어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다섯 군데에서 면접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면접을 바로 보러갈 수 있는 영국내 사람들이 우선시되서 한국에 있는 나는 자꾸 면접 기회에서 밀려났다. 그래도 면접 제안이 오니까 마음 속에 희망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6월초 어느 날 꿈을 꿨다. 날씨 좋은 하늘, 드넓은 바다에 거대한 용가리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수면은 얕았고, 정적으로 굳어 있던 용가리는 갑자기 픽 쓰러졌다. 그때 에메랄드빛 찬란한 물이 차오르면서 바닷물이 풍성해졌다. 대박이 날 것 같은 이 꿈은 뭐지? 가슴이 두근두근. 왠지 모를 설렘과 함께 다시 한 번 인터뷰를 바로 보러 갈 수 있게 영국으로 날아갔다.
런던은 여름이라 해가 쨍쨍했다. 신기하게 마침 팔팔한 기운을 타고 10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주로 1차 면접은 전화로 인적사항에 대해, 2차는 회사에 직접 가서 디자인 팀장과 면접을 봤다. 그 와중에 7월, 글로벌 화장품 기업 ‘러쉬’에 모션그래픽 정규직을 지원했다. 그 회사에 대해 잘 몰랐지만 대기업이니까 일단 지원했다. 한 달 뒤 한창 다른 회사 면접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러쉬에서 이메일이 왔다. 혹시 프리랜서를 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프리랜서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큰 기업에서 풋내기인 내게 제안하다니 그저 황송했다! 그들은 9월에 열 이벤트에 내 쇼릴 타이틀에 있는 스타일을 적용하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2주간 러쉬일하랴, 다른 회사 면접 준비하랴 매일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했다. 노력을 퍼붓는 한편으로 내 꿈이 이루어질지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러쉬일은 그저 프리랜서일인 거고, 아직 풀타임은 잡히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만의 마감기한을 정했다.
‘9월초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 그때까지 취업이 안 되면 이제 영국취업 포기하자.'
러쉬와의 작업은 겁먹었던 것과 달리 환상적이었다. 이벤트 타이틀 애니메이션 1개와 아이콘 작업 40개가 주 미션이었다. 아이콘 작업은 이벤트 부스별로 쓸 귀여운 스타일로 디자인을 하고 거기에 짧은 애니메이션까지 주는 작업이었다. 어쩜 이렇게 내게 딱 맞는 일이 들어온 걸까 ? 아이콘 스타일은 그저 내가 했던 스타일대로 만들면 됐고, 줘야 할 애니메이션은 기술적으로 전혀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러쉬 관계자들이 내 디자인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성공적이었다. 러쉬에서는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 내 작업이 맘에 들면 정규직으로 채용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었다. 작업을 마무리할 때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 다른 곳과도 면접 중이니까 정규직 채용 여부를 최대한 빨리 알려주세요.”
며칠 뒤 아침에 눈을 뜨고 핸드폰을 봤다. 러쉬측에서 문자가 와있었다.
“수수 축하해. 방금 임원들에게 네 작업 보여줬고 너를 고용하기로 결정했어.”
그날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바로 며칠 전이었다. 1년동안 100군데도 넘게 지원했는데 딱 한 곳에서 그렇게 잡오퍼를 받은 거다� 심지어 그곳은 공책에 늘 적곤 했던 꿈의 직장보다도 더 좋은 회사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기업이라니... 꿈인가 생시인가. 풋내기인 내게 일어난 기적에 멍한 상태로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침 흔치 않게 도로에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가 지나갔다. 마차 안에는 관이 놓여 있었다. 귀족의 장례식같았다. 죽음... 이제껏 고생한 시간은 인생 저편으로 넘어간 건가? 인생 2막,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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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취업 성공한 제 이력서, 커버레터 파일 공유하는 서비스도 선택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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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제가 정기적으로 보내고 있는 뉴스레터 <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의 원문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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