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의 친구

편지

by 슈리엘 아샬라크

그날 저녁, 젊은 여자가 찾아와 초인종을 눌렀다. 반묶음 머리를 하고, 분홍색 립스틱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도 이 여자를 모르고, 남편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결국 문 너머의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신가요?”

여자가 꽃잎 같은 입술을 열어 청아한 톤으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시아 친구입니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눈을 빠르게 맞췄다. 한 번도 시아 친구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쩐 일로 방문한 거지. 남편이 말했다.

“미안한데 지금 시아는 없어요.”

문 너머의 시아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외의 대답을 했다.

“알고 왔어요.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친구를 거실로 데려와 앉혔다. 나는 주방에서 마침 방금 끓여놓았던 캐모마일 차를 내왔다. 내가 앉자마자 시아 친구는 대뜸 당황스러운 소리를 먼저 꺼냈다.

“시아를 쫓아내신 거 알아요.”

나는 잔을 놓던 손을 멈칫했다. 남편도 순간 움찔했다.

“그걸 어떻게 알죠?”

남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자는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는 시선을 천천히 들었다. 그 눈동자에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기색이 떠 있었다.

“시아가 저한테 메시지를 남겼어요. 집에서 쫓겨났어. 잘 있어. 딱 한 줄이요.”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편은 가볍게 헛기침했다. 무언가 변명을 하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여자는 할 말을 이어갔다.

“시아가 어렸을 적부터 전 친한 친구였어요. 그 애가 말을 할 때에도, 말을 잃었을 때도, 그 애 곁엔 항상 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사실, 언젠가는 시아의 집에서 이야기했으면 했어요.”

그녀는 차분하게,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시아는 겉으론 무표정하지만, 마음이 참 여린 친구예요. 누군가가 조금만 큰 소리로 말해도 움찔하죠. 겁도 많고, 상처도 쉽게 받는 타입이에요. 말이 없어진 뒤에도, 감정이 없어진 건 아니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벽 너머에서 들리던 발소리, 조심스레 문을 열던 손짓, 소리 없이 먹던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건 방해받지 않으려는 몸짓이 아니었다. 그 애는 우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살아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처럼 지내려고 애써왔던 것이다.

여자의 눈빛이 깊어졌다.

“시아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어요. 엄마 집안이 원하니까, 엄마가 공부를 잘하면 칭찬하니까. 엄마에게 그 무엇이든 되고 싶어 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숨을 삼켰다. 시아가 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꿈을 말한 적이 있었던가? 게임 속의 세계가 그 아이의 꿈이 아니었나? 아니, 나는 그 애의 꿈에 관심이 있었던가?

“시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시아는 공부를 일절 하지 않았어요. 전교 일 등이었던 애가 성적은 빵점까지 내려갔고, 시아 외가에서 학교 교무실을 찾았어요.”

남편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그분들이 언제, 왜 학교에….”

여자는 그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는 듯 차를 한 모금 홀짝 마셨다.

“시아 외할아버지가 오셨어요. 성적이 바닥까지 내려갔고, 말도 더 이상 안 한다는 소리에 시아를 불렀죠. 대화를 시도하다가…. 때렸어요. 뺨을.”

나는 그 말을 듣고 숨이 턱 막혔다. 남편이 시아를 쫓아낼 때, 뺨을 때렸었다. 그 모습과 어떻게 이리 똑같이 느껴지는 걸까. 남편은 고개를 돌리며, 한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 역시 충격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었다. 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그리고 그 무렵일 거예요. 시아가 본격적으로 게임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 건. 현실은 너무 괴로우니까, 그 세계로 도망간 거예요. 입을 닫고, 몸을 숨기고, 대신 손가락으로, 눈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 거죠.”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

여자가 눈을 깜빡거렸다.

“모를 수 있죠. 알려고 하지 않으셨겠지만. 아, 시아가 졸업할 때, 편지를 주고 갔어요. 이것조차도 모르시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방문했어요.”

우리 앞에는 노란색 종이봉투가 놓였다. 남편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펼쳤다. 나는 남편의 곁에서 그 편지를 함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