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리본이 남긴 마지막 흔적
“대화 먼저 해야 한다니까! 아직 모르는 일이잖아, 시아 대답을 우린 듣지 못했어!”
그러나 남편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시아를 향한 분노와 이제껏 외면해 왔던 의문과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했다. 그의 손이 내 손을 뿌리치고 다시 시아에게 향했다. 그러고는 시아의 머리채를 잡고 일으켜서 다른 쪽 뺨을 내려쳤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이미 쓰러진 시아는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서지도 못한 채 몸을 떨었다. 눈물이 방울 방울이 되어 바닥으로 낙하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자신을 믿어주지 못하는 어른에게. 시아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다시 자기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 모습에 잠시 멈칫했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를 밀어냈다.
“그만하라고 했잖아!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남편은 여전히 씩씩대면서, 시아가 하고 있던 게임을 바라보았다. 책상 위에는 온갖 종류의 게임기가 쌓여 있었다. 남편이 그것들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심상치 않았다.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네 정신 상태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게 틀림없어. 바로 이깟 게임들 때문에, 내가 진작 알았어야만 했는데.”
혼자 중얼거리는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런 그를 불렀다.
“여보?”
그때 남편의 이성이 다시 한번 끊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남편의 양손이 책상 위의 모든 게임기를 쓸고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고작 이깟, 게임기가! 사람을 망치고, 좀 먹는다니! 이딴 것들은 싹 다 없애야 해! 이따위 것들은 싹 다 버려야 해!”
남편의 손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처참하게 부서진 컴퓨터와, 망가진 게임기들만 남아 있었다. 시아에게서 게임기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그의 분노는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이토록 폭력적인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의 얼굴엔 오래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아 너, 집에서 당장 나가라.”
“여보, 그렇게 몰아세우지 말고……”
“아니.”
남편은 내 말을 뚝 잘랐다. 그는 시아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이대로는 같이 못 살아. 나가.”
시아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현관 쪽으로 몸을 끌었다. 나는 본능처럼 그런 시아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남편의 손이 내 팔을 붙들었다.
“쫓지 마. 그 애가 사라지는걸, 당신도 바란 거 아니었어?”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단순히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시아와 나 사이의 마지막 끈이 끊기는 것처럼, 그 소리는 내 귓속을 오래도록 울렸다. 나는 조용히, 마치 죄인처럼 시아의 침대 위에 무너져 앉았다. 집 안은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바닥에는 부서진 키보드 조각과 액정이 깨진 모니터, 전선이 끊긴 게임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시아가 살아있던 자국들이다. 그 애가 존재를 증명하던 도구들이다.
“이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남편은 말없이 이 방을 떠나버렸다. 방 안에는 아직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었다. 이불은 구겨져 있었고, 베개 옆엔 시아가 즐겨 쓰던 헤드셋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 놓인 작은 게임기 화면에는, [게임을 종료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벤치에 걸린 무언가가 나풀거리는 것이 보였다. 시아가 항상 머리에 묶고 다니던 천으로 된 리본이었다. 저것이 왜 저기 걸려 있을까, 내 걸음은 그곳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바람이 불었다. 어딘가 쓸쓸하고, 낯선 냄새가 섞인 바람이었다. 시아의 리본은 벤치 끝자락에 걸려 천천히 손짓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건 시아의 것이었다. 몇 번이고 손으로 만지고 묶느라 실밥이 해져 있는, 그 아이만의 것.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리본은 차가웠고, 젖어 있는 것 같았다. 비라도 내렸던 걸까. 아니면, 이슬이었을까. 아니면, 눈물? 나는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듯 그 리본을 들고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