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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하 Sanha Oct 06. 2022

터닝포인트

누군가의 편지






인생에 있어 터닝포인트처럼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그 순간을 물어본다면 아주 빠르게, 학창 시절 친구에게 편지를 받은 순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나에게 생일은 기분 좋은 물물교환식 같은 거였다. 서로 비슷한 가격대의 선물을 주고받는 날.


속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난 편지보다는 선물을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미리 말해두었던 선물들을 받고, 원 플러스  같은 편지들을 읽고 있었다.


대부분 카드 형식의 짧은, "생일 축하해~" "우리 계속 친하게 지내자" 등의 메시지가 적혀있는 편지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한 편지가 있었는데


 직접 포장지를 만든 듯 어설프게 마감되어있는 꽤나 긴 편지였다.




난 그 편지를 읽고 그 아이를 가장 좋아하게 됐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로 시작한 편지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이 적혀있었다.



'너는 평소에 난 그 정도는 못해라고 말하는데 내가 본 너는 성실하고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야'



 편지는 평소 나도 모르게 나를 깎아내리던 나에게 [너는 지금도 잘하고 있다, 대단하다,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더불어 내가 알지 못했던 내 장점들까지 적혀있었는데 그 순간 뭔가 벅차오르면서 나를 이렇게 좋게 봐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이 으레 그렇듯 집안에서 사랑한다, 고맙다, 잘했다 등 따뜻한 말이 오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더욱 그런 오글거리는 말들은 상상도 못 했고.


긍정적인 말을 거의 들어본 적 없던 나에게 그 편지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만들었다.




'맞아, 나는 공부도 나쁘지 않게 하지.


맞아, 성격도 많이 좋아졌어.


맞아, 나름 성실하게 사는 것 같아.


맞아, 내가 해낸 게 있었구나.'





 1년 동안 바로 옆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였기에 정말 나를 알고 나를 좋게 생각해준다는 게 와닿았다.


편지를 써준 친구는 시험 기간이면 타이머를 맞춰놓고 하루 10시간을 채워 공부하는 아이였다.


매사 열정적으로 꼼꼼히 하는 사람이라서 '쟤는 정말 대단해'라고 생각했던


그 애가 보기에 내 노력들이 인정받을만한 거였다니.



편지를 다 읽자마자 그 애에게 달려가 내 인생에 가장 좋은 편지였다고, 너무 감동받았다고, 앞으로 생일마다 선물 말고 편지만 줘도 된다고 말했다.  


그 아이에게는 별거 아닌, 친구들 생일마다 써주는 편지 중 하나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첫 시작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멀리하며 관계는 끝났지만 난 여전히 그 애를 좋아한다.


그 애가 어떤 길을 선택하던 항상 응원할 거고 잘 되길 바랄 거다.


그게 내가 그 애를 추억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인생의 첫 터닝포인트 지나고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좋은 말은 낯간지럽고 부끄럽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어렵지만 주변에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잘 안되고 서툴지만 내 한 마디, 내 한 줄이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자신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칭찬을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나도 기쁘고 행복하다.


 언제나 좋은 것만 주고받으며 살 수는 없겠지만 우리들 인생의 대부분이 좋은 순간이기를,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좋은 순간이 더 많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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