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ra <Le nozze di Figaro> _W. A. Mozart
7월의 런던은 조금 쌀쌀했다.
아침 일찍 국회의사당 쪽에 가서 헨델(Geroge Fridrich Handel, 1685-1759)이 안치되어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둘러보려고 했으나 당일 예약이 다 끝났으니 월요일에 다시 오라는 안내원의 이야기를 듣고 실망스런 마음을 추스린채 아침이나 먹을겸 근처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CoLicci라는 카페에서 간단히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신 후 런던에서 가장 오랜 왕립 공원이라는 세인트 제임스 공원으로 향했다. 서울에 있는 여의도 공원과 비교하더라도 스케일에서부터 차원이 다른 그곳은 사람도 많고 평화로웠다. 덕분에 낯선 여행지에서 내내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지면서 피로한 눈도 정화되는 것 같았다. 거기서 버킹엄 궁전까지 이어지는 더몰 The Mall이라는 도로는 왕실 행렬 의식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영국 왕실의 위용을 상상하면서 천천히 걷기에 좋았으나 날씨가 갑자기 짓궂게 장난을 치는 바람에 내셔널 뮤지엄 National Gallery으로 급 행선지를 바꿨다. 여행지에서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다니는 편이라 아침에 숙소를 나서며 우산을 챙겨온 걸 종일 다행으로 여겼다. 날씨가 흐린 덕분에 더 운치 있는 트라팔가 광장 Trafalgar Square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예매해 둔 오페라를 보기 위해 코벤트 가든으로 가는 길에는 요리Yori 라는 한인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한국인 직원이 같은 동포인 걸 알아보고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쌀쌀하고 변덕스런 런던 날씨에 살짝 뾰루퉁해졌던 마음이 금세 녹아내렸다. 얼큰한 김치찌개와 반찬으로 밥 한 공기를 뚝닥 비웠더니 느끼했던 뱃속이 한결 든든하다. 런던 한인식당에 가면 한국인 동지들을 많이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죄다 외국 사람들 뿐이어서 새삼 '한류'의 위력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런던 공연 예술의 중심지인 로열 오페라 하우스The Royal Opera House는 1732년 런던 중심가에 있는 코벤트 가든 Covent Garden 지구에 건립된 영국을 대표하는 극장이자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 중 하나로 2,000여석 규모의 대극장이다. 역사적으로는 독일 출신으로 영국으로 귀화했던 작곡가 헨델Georg Fridrich händel의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1743년 국왕 조지2세가 참관한 가운데 초연된 곳이다. 곡 중 '할렐루야' 합창이 연주될 때 국왕이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일어서서 박수를 친 것이 이후 '할렐루야'가 연주될 때마다 기립 박수를 치는 관행이 생겨났다는 일화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화려한 돔 모양의 건물 상단을 특징으로 하는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디자인 되었으며 외관은 화려한 화강암과 코르단 돌을 사용하여 아름답게 마감되었다.
아치형의 크리스탈 천장이 굉장히 아름다운 폴 햄린 홀 Paul Hamlyn Hall은 1860년 개장한 곳으로 원래 플라워 홀 The Floral Hall이라고 알려졌는데 오페라 하우스가 과일과 채소도 판매하는 꽃 시장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860년 화재가 발생하여 황폐해졌고 1977년 오페라하우스에 인수되어 창고로 사용되다가 1990년대 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재건되어 현재는 오페라 공연 막간의 리셉션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관람한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91)의 <피가로의 결혼>은 성악가들의 기량이나 공연 수준도 훌륭했고, 무엇보다 기품있고 우아한 건축물과 로비 서비스가 영국의 상징인 왕실의 위상과 자존심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연주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내 자리를 찾아 겨우 숨을 돌리고 막이 오르기 전 사진이나 한 장 찍으려는데 바로 옆에 앉은 중년 여성이 "사진 찍어 줄까요"하고 묻는다. 그저 별 생각 없이 "No, Thank you"라고 대답했는데 순간 그녀와 나 사이에 흘러버린 어색한 공기.. 그러고 보니 그녀가 내게 던진 말은 단순히 "사진 찍어 줄까요"가 아니라 "내가 당신과 같이 사진 찍어 줄까요"라는 의미였다. 속은 어떨지 몰라도 대개 표면적으로는 다소 쌀쌀맞아 보이는 영국인들이다. 그럼에도 언뜻 여행객으로 보이는 낯선 이방인에게 그녀가 건넨 호의는 상당히 센스 있는 제스처였는데 '으이구, 이노무 귀'.. 핑계를 좀 대자면 영국식 발음은 일반적인 영어에 비해 귀에 착 달라붙지 않는 그런 느낌이 좀 있다. 어디까지나 영어를 잘 못하는 변명에 불과할 뿐이지만서도..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내가 성악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니 내겐 좀 더 특별한 오페라이기도 하다. 모차르트는 아버지 레오폴트와 함께 1769년과 1771년, 1772년 세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여행에 나섰는데 모차르트는 이 여행을 통해서 종교음악과 오페라를 깊이 받아들였고, 훗날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같은 걸작 오페라를 쓸 수 있었던 동력을 얻었다. 이후 모차르트가 빈에 진출한 뒤 이탈리아 출신의 오페라 대본 작가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 1749-1838)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한 첫 작품이 바로 <피가로의 결혼>이다.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보마르셰의 동명 희곡이 원작이다. 여성과 하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힘을 합쳐서 바람기 다분한 남성 귀족 알마비바 백작을 혼내주고, 귀족 사회의 위선에 통렬한 야유를 보내는 줄거리는 봉건적 질서에 대한 반항과 도전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훗날 나폴레옹은 보마르셰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을 "이미 일어난 프랑스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많은 상징과 도전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작품이 발표됐을 당시에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실제로 무대에 올리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파리에서는 1784년 연극이 초연됐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 2세는 보마르셰의 희곡이 모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며 연극 상연을 금지했다. 프랑스에서는 공연됐던 연극을 오스트리아에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에도 불똥이 튀었다.
다 폰테는 황제를 알현한 자리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공연 허가를 요청했다. 결국 원작의 정치적 비판을 삭제하고, 모차르트가 황제 앞에서 공연 일부를 연주하는 노력 끝에 1786년 5월 1일 빈 국정 극장에서 초연됐다. 오페라를 관람한 아버지 레오폴트는 난네를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네 동생의 둘째 날 공연에서는 5곡에 앙코르 요청이 쏟아졌단다. 세 번째 공연에서는 7곡을 다시 불렀지. 그중에서 짧은 이중창은 세 번이나 불러야 했단다." 이처럼 앙코르 요청이 쏟아지자 공연 시간이 한없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황실에서는 '독창 외에는 앙코르를 하지 말 것'이라는 독특한 금지령을 내렸다. 그만큼 모차르트와 다 폰테가 협업하여 만든 이 오페라는 발표 당시 큰 인기를 누렸다. *작품 내용 출처: 모차르트(김성현, 아르테 p17, p232-237)
2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권력은 때때로 부당하고 치졸한 간섭과 훼방을 일삼으면서까지 그 야욕을 누리고 싶을 만큼 강렬하고도 달콤한 것인가 보다. 개인적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많이 좋아하진 않았지만 학부 시절 향상음악회 때 불렀던 가곡 'Ridente la Calma'를 떠올리면 모차르트의 영혼이 고스란히 반영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참 순수하다. 음악의 천재나 신동으로 불릴 만큼 타고난 재능이 출중했던 그였지만 모차르트를 떠올릴 때마다 어딘가 짠한 기분이 드는 것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영향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어른들의 보호를 벗어나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이나, 작은 동물들,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한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처럼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사람이 가진 가장 인간다움을 터치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게 정확히 더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모차르트의 음악들이 오히려 더 친근하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친해지도록 노력해봐야겠다. 공연이 끝나고 숙소가 있는 클랩햄 정션Clapham Junction 부근까지 버스로 돌아오는 길은 적잖이 힘들었다. 하루 종일 비가 온데다 밤 11시 무렵 낯선 동네를 우산 하나에 의지한채 걷는 게 무섭고 겁났다. 덕분에 신경도 예민해졌고 모든 마주치는 사람들이 편하지만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한 밤이었다. 아까 공연장에서 같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던 옆자리 중년 여성이 오페라 막이 내린 후 슬며시 나를 돌아보며 건넸던 미소 만큼이나 오페라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웃고 몰입하고 반응하며 즐기는 런던 시민들 모습이 인상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