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 by 김민기> _러시아국립교향악단
코로나 시국이었던 몇 해 전 우리반 학생이었던 아이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사십 살이 되면 자살하려고요
- 헐, 너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왜 그런 생각을 하는데?
"뭐랄까.. 인생이 너무 빤하잖아요? 죽도록 공부하다가 대학 가고, 취업하고, 결혼해서 애 낳고, 키우다가 늙어서 죽는 거.. 그게 뭐예요?"
부모의 사랑과 지원 속에서 멀쩡히 학교 잘 다니며 잘 살고 있는 듯 보이던 그 아이가 왜 그런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지 의아했지만, 코시국에 학교 다니는 것도 힘들고 정서적으로 좀 지쳐서 그런 말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요 며칠 내가 꼭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니.. 명도 못 채우고 일찍 죽을 생각은 없지만, 삶이라는 끝도 없는 무게를 떠올리면 아이들의 통찰력에 박수라도 쳐줘야 되나 싶다.
나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느 아이들처럼 태어나서 만 14년을 유아원, 유치원, 초중고를 떠돌며 책가방을 짊어지고 십 대를 보냈다. 바라는 대학에 합격하면 인생이 마냥 행복해질 거라 믿었지. 어른들은 모두 행복해지고 잘 살기 위해선 대학을 가야 한다고 말했거든. 대학에 합격했지만 그건 삶의 시작도 아니었다. 이후 취업이라는 문은 더욱 비좁았다. 졸업도 전에 모두가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취업 전쟁에서 나와 같이 중도에 진로가 변경되는 경우는 데미지가 더욱 컸다. 음악교사의 꿈을 이루면 정말 죽을 때까지 행복할 줄로만 알았다. 실로 참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이 60%라면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과 무게, 여러 가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40% 정도는 늘 함께 따라왔다.
행복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
어느 정도 사회에서 안정되고 경제적 기반도 다져지면 남은 인생은 죽을 때까지 행복할 줄 알았다. 근데 이젠 장거리 여행에서 너무 오래 걸으면 무릎이 살짝 쑤시는 때가 되어버렸고,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라고 부모가 병들고 아프니 마음조차 편치가 않다. 나는 효를 행한 적이 없으니 감히 子欲養而親不待란 말을 논할 자격이 없으나 인생이라는 게 참..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인생의 바람이 늘 그치지를 않는다.
연로한 아빠가 많이 편찮으시다. 지난 설에 올라갔을 때 보니 많이 쇠약해져 계셨다. 나는 아빠가 누구 앞에서도 기가 죽거나 비굴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당당했던 아빠의 뒷모습이 처음으로 너무 가늘고 약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와 맏이로서 아빠를 모시지 못하고 불효한다는 죄책감 속에서 많이 힘들다. 어제도 야근을 하다가 아빠가 걱정이 돼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를 마친 후 나는 불행했다. 전화한 것조차 후회가 되었다.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A. Ketelbey(1875-1959)의 'Bells Across The Meadows'가 지친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었는데 퇴근 후 즐겨 듣는 「당신의 밤과 음악」에서 김민기의 <상록수>가 편곡 버전으로 '러시아 국립교향악단'의 연주로 흘러나왔다. 앞부분만 듣고는 몰랐는데 상록수 멜로디인 걸 알고 잠시 동안 음악에 마음을 전부 내주었다. 가슴에 맺힌 멍자욱이 눈물에 얹혀 주르륵 흘러내린다.
JW아, 대학 생활은 재밌니? 뭐랄까..
지금 보니 네 말대로 인생이 좀 너무 빤한 것 같다. 그치?
그래도 너는 마흔 살보다 훨씬 더 많이 행복하거라!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면
곧 내려올 거라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왜들 그렇게 꾸역꾸역 산에 오르는지를 생각해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