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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테의 꽃 Jun 16. 2024

할 수만 있다면 버티는 게 답

사랑할 수 있는한 사랑하라 _F. Liszt

주변을 보면 인간관계 때문에 전혀 고민할 것 같지 않은 무던한 사람들도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다들 한두 가지 이상의 부침과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업무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소통과 배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지만, 내 성향이 간섭받는 걸 싫어하는 매우 독립적인 스타일이다 보니 무례하게 선을 넘나 들며 경계가 없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무엇보다 제일 힘들었다.


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H. Gardner) 박사는 인간의 지능은 서로 독립적이며 7~9가지 유형의 여러 능력으로 구성되는 '다중지능이론'을 제시하였는데 그중 여섯 번째인 '대인관계지능'은 인간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타고난 감수성이 굉장히 풍부했고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에 쉽게 이입되는 정서를 갖고 있지만 직장생활 속에서의 '대인관계지능'이라 함은 조금 다른 방식에서의 스킬과 센스를 말하는 것 같다. 다수에 자연스레 융화되면서도 적당히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영악함과 때로는 의도적인 이기심. 견제 대상에 있어서는 정확하고 계산적인 타이밍에 수용과 배척을 번갈아 하면서 관계의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전략을 쓰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세상살이에 도움이 될만한 이런 재주에 그다지 능하지가 못하다.


그런 와중에 좋든 싫든 매일 봐야만 되는 누군가와 시시콜콜 자꾸만 어긋나는 일들이 발생했다. 나는 주로 선을 넘는다고 여겨지는 그 사람의 무례한 태도가 큰 불만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자신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한테 거는 태클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더 화가 나고 불편했다. 그곳을 떠나지 않는 한 안 볼 수도 없는 사이라서 상황을 무마하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조금 더 마음을 열고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친절도 호의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베풀라고 하던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 사람의 무례함이 선을 넘어 도를 넘는 느낌이었고 그 강도와 빈도가 점점 더 아무렇지 않게 증폭되는 것 같았다. 아침이면 출근하는 게 너무 싫었다. 학교에 있는 것 자체가 곤욕이라 교육청 산하 교원치유센터에 가서 전문상담사에게 상황을 토로하고 몇 차례 상담도 받아보았다. 그래도 참 희한한 것은 매일 아침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출근할 채비를 마친 후 거울을 마주할 때면 가슴속 어딘가에서 스스로를 향한 작은 응원의 속삭임 같은 게 들려왔다는 거다.


이런 상황의 결과가 결코 너의 잘못만은 아냐
너는 그저 네 할 일들에 충실하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기운 내.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From. 네 안의 나


그 당시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돌아보면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을 만큼 간단한 방법이 있기는 했다. 내신을 쓰고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버리면 그 모든 불편한 상황들을 무마하고 껄끄럽고 보기 싫은 사람들을 더 이상 안 봐도 되었다. 하지만 내가 도망을 가야 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스스로에게 그런 조치를 내려야 할 만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잘못한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게는 나의 책임을 다해야 할 학생들이 있었고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학부모님들이 계셨다.




그렇게 묵묵히 상황을 견디면서 내 할 일들을 해나갔는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자그마치 2년 동안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평범했던 어느 날 조퇴를 해야 될 것 같다며 연기처럼,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그 사람은 이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못했다. 한 달쯤 후에 그의 가족들이 찾아와 내내 "면목이 없습니다"라는 말만 조아리며 직접 그의 짐들을 박스에 담아 가져 갔다. 몰입과 중독은 한 끗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좋지 않은 무언가에 자아를 잃을 정도로 중독된다는 건 정상적이지 않은 사고와 정신에 대한 반증이 아니겠나? 괜히 쓸데없이 상처를 받으면서 내가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 했다. 그럴 필요도 가치도 없었는데 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1965~ ) 박사는 SBS에서 방송되는 모 프로그램에서 '직장생활로 힘들어하는 MZ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로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생계와 직결된 문제이기에 쉽게 결정하기 힘들지만 스스로가 너무 힘들다면 '나를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이자 일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회사를 그만둘 줄도 알아야 된다고 조언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기에 '나'를 더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사례는 매우 다양하므로 무슨 이야기인지는 잘 알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심해에 들어가 수 분 내로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가능한 버티는 게 답이라고 말하고 싶다. 직장을 그만두면 일단 새 일을 찾을 때까지 아르바이트든 뭐든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되는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그곳에 또 있지 않으리란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경쟁 만연의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그런 사람들은 계속 차고 넘칠 거다.

내가 숨 쉬는 게 있나?


대한민국 대표강사이자 내 모교의 자랑스런 동문이기도 한 김창옥(1973~ )은 '세상은 잘 참는 사람이 깊은 곳에 가서 깊은 전복을 따는 원리'와 같다고 말한다. 사회생활에서 어떤 부침이 올 때 그런 상황과는 반대로 내가 숨을 참기 위해 무얼 하면 시간이 빨리 가는지 아니면 그런 장소 또는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나는 학교에서도 일에 집중하다가 눈이 피로하고 몸이 힘들면 컴퓨터를 끄고 구석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편다. 주말엔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낄낄거리거나 김미경, 김창옥 등 좋은 이야기를 가진 강사들의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면서 긍정의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했다. 힘들 때 두서없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같이 고민해 주고 공감해 주는 동생들과 친구들도 내가 심해에서 숨을 잘 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들이다. 무엇보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숨 참기는 데스 노트가 아닐까? 나는 인간이 내뱉는 말과 꾹꾹 눌러 담은 글씨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가 작용한다고 믿는다. 사람 때문에 정말로 열받은 날 마땅히 해소할 대상이 없다면 마음에만 쌓아두지 말고 일기장에 온갖 육두문자를 섞어 실컷 욕이라도 해주자. 집에 식구가 있어 누가 몰래 읽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면 숨겨둘 장소만 잘 찾아 관리만 잘해두면 된다. 어차피 우리 억울함과 진실은 일기장이 아니라 하늘에 가 닿는 것이니 내 경우처럼 문제가 해결되면 파쇄해 버리면 끝.

https://youtu.be/zzvzod4ukzo

Yunchan Lim _Liebestraum No.3 'Love Dream', F. Liszt

우리 마음이 지칠 때 좋은 음악 한 곡이 선사하는 내면의 풍요로움은 무엇과도 비할 바가 없다.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곡집 「사랑의 꿈 Liebestraum」에 담긴 3번곡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세 곡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으로 난이도도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하늘을 우러러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때로는 특정한 상황이나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을 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몇 시간씩 내 삶과 에너지를 소모할 만큼 가치 있고 존경할만한 대상이던가. 타인을 괴롭히고 소멸시킴으로써 자아의 만족을 얻는 사람들의 내면에 무엇이 들어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당신은 지금 명백히 속고 있는 거다. 가장 교활하고 영악한 가면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교묘하게 감춘 이들의 겉사람에! 또 그런 사람들의 고질적인 특징 중 하나가 자기와 꼭 비슷한 사람들을 무리로 형성해 끌고다닌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 나약한 인간이기에 무리에서 외떨어지면 위축되거나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조금도 개의치 말자. 인생은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도 짧고 벅차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되 나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반드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에게 당신의 소중한 생각과 에너지를 쏟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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