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3 댓글 4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이판 여행 2

바다의 동굴, 그로토에 몸을 던지다

by 민혜숙 Mar 19. 2025

현지 가이드 : 엄마! 앉지 마요.

나 : 너무 무서워요
현지 가이드 : 일어나요. 점프해요
나 : 오 마이 갓! (바닷속으로 풍덩)     


  사이판에 가면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 있다. 그로토 Grotto 라는 천연 해저 동굴이다. 이탈리아어로 grotta, 프랑스어로 grotte가 동굴이니 동굴이라는 뜻인가 싶었다. 사전을 보니 영어로 grotto는 작은 동굴이나 신비한 동굴이라고 한다. 아무튼 ‘동굴’이라는 일반명사가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바다의 동굴 ‘그로토’는 다이빙과 스노클링으로 유명한 곳인데 지하 동굴과 바다가 연결된 곳이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여행을 떠나기도 전, 남편의 주도면밀함에 의해 나는 유튜브로 다 보았다. 스포가 된 채로 그로토에 갈 때, 나는 해저로 내려간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게다가 스노클링뿐 아니라 프리 다이빙은 도저히 못 할 것 같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프리 다이빙은 그냥 맨몸으로 바닷속을 들어가는 다이빙이다. 산소통이나 마스크도 없이 그냥 들어가니 수중 촬영을 하면 멋지기 그지없다. 시커먼 잠수복을 입지 않고 내 몸이 그대로 바다에 던지어져 물고기인지 사람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프리 다이빙의 모습이 촬영된 사람은 바로 우리의 지미씨. 지미투어 사장님 지미씨는 동영상 환상적으로 만든 다음에 영상 마지막에 이런 코멘트를 했다. ‘60세 이상이신 분께는 추천하지 않는다’고.      


  나는 신체 연령은 50대지만 롤러코스터는 물론 바이킹도 못 타고 심지어 눈썰매도 무서워서 덜덜 떠는 것으로 보아 다이빙 연령은 아마도 80세를 훌쩍 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여행 가기 전부터 영상을 보고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로토 가는 날이 다가와 그곳을 달려가는 차 안에 몸을 실으니 두려움은 더 다가왔다.  

    

  그로토 주차장에 당도하여 지미씨에게 잠시 교육을 받았다. 스노클링 마크 사용법과 프리 다이빙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수칙과 해류가 급한 곳은 절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경고 등 사뭇 긴장되는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우리와 같이 그로토에 뛰어들 20대 처자 3명과 우리 가족 3명 해서 6명의 관광객을 지미씨, 마니라는 사이판 현지 가이드 청년, 유럽 가이드인 지미씨 친구, 이렇게 3명이 가이드를 해주었다. 가이드가 셋이니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그로토를 향해 수백 개의 계단을 내려갔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보니 떡 하니 동굴이 나타났다. 땅 위의 동굴이 아니라 바다 위의 동굴!     


  수면 위에 지붕과 병풍처럼 돌이 둘러쳐 있고 바다의 물빛을 보니 숨이 턱 막혔다. 흔히 열대 바닷가에서 보는 에메랄드빛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짙은 빛이었다. 파랑의 원초적 색이라고 할까 내 무의식의 색감을 보는 것 같아 전율하게 되었다. 여행 후 집에 와서 도대체 이 색깔이 내 팔레트의 무슨 색일까 하고 종이에 색칠해 보았다. 내가 아는 파란색을 다 동원했다. 인디고, 프러시안 블루, 코발트 블루, 세룰리안 블루, 피콕 블루, 울트라 마린 딥, 자 여기서 어떤 색일까? 이래 저래 색칠을 해 봐도 딱히 어떤 색인지 모르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물통의 물을 버리면서 아뿔싸. 바로 이 색이야! 블루 계열을 여러 색이 합쳐진 신비한 색을 나는 종이 위에서 보려 했다니. 안의  푸른색은 바로 그로토의 바닷물 색이었다. 해가 질 무렵 진하고 어둡고 투명한 푸른색이 팽팽하게 펼쳐지는 하늘을 바다에 던져 놓은 것 같았다. 그렇지, 하늘과 바다가 만나서 그렇게 아름다웠던 거야.     


  수면 위의 저 바다 밑을 뛰어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나는 주저앉아 버렸다. 내가 앉아 버리니까 현지 가이드 마니는 ‘엄마!’라고 나를 부르더니 일어서라 한다. 마니는 아빠, 엄마, 딸이라는 우리말 단어로 우리를 불렀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마니의 이름을 아는데 마니는 우리의 이름을 모른다. 나중에 마니에게 엄마라고 하지 말고 어머니라고 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여하튼, 나는 사이판의 한 청년의 엄마가 되어 버렸다. 엄마라는 말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 심호흡을 하고 ‘에라 모르겠다 죽기야 하겠나’하는 마음으로 몸을 던졌다.      


  몸이 깊이 바닷속으로 내려갔다가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몸이 둥둥 떴다. 머리를 물에 넣고 주변을 보니 귀여운 물고기가 동동거리며 내 곁을 스쳐 헤엄쳐 간다. 손으로 잡으려 하니 당연히 잡히지 않는다. 여전히 몸에 긴장을 풀지 못했지만 나도 물고기가 된 듯 팔다리를 움직이며 바다 밑을 보았다. 울퉁불퉁한 바위가 펼쳐졌다. 바다의 거대함에 몸이 졸아드는 느낌이었다. 물고기가 돌아다닌다는 것을 감지하면서 앞을 바라보니 동굴이 바다와 연결되는 구멍이 보였고 그곳에 햇살이 작열했다. 와아아아! 마음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스노클링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순간 분석 심리학수업 시간에 배운 이상스 jouissance 라는 프랑스어가 떠올랐다. 라캉이 말한 원초적이고 격정적 기쁨.      


  바닷속으로 뛰어들 때보다 더 기막힌 푸른색이었다. 숨이 막혔다. 너무 신비하고 화려한 빛과 푸른색의 결합이었다. 태양이라는 빛과 뜨거움의 세계와 바다라는 어두움과 차가움의 세계가 만나서 발하는 아름다움은 숭고함을 불러일으켰다.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감정은 온몸을 감쌌다. 이 강렬한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의 체험이었다. 육체의 기쁨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만족감이라고 할까. 자연의 예술 작품 앞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칼 융의 정신 분석학 수업에 참여하는 중이라 나는 문득 무의식을 바다에 비유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수면 위에 보이는 세계가 의식의 세계라면 바닷속은 무의식의 세계다. 무의식을 보려면 무섭지만 뛰어드는 용기기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정말 무서워서 계속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면 저 바다와 동굴이 연결되는 그곳의 아름다움을 영영 못 보았을 것이다. 요즘은 내 무의식도 그로토의 바다처럼 측정하기 어렵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에너지와 잠재성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나는 과외 선생이었고 그 일을 마무리하는 것은 인생의 큰 의미를 잃는 것이라 여겼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무료할까, 수입이 줄어서 기운이 없어질까 불안이 있었지만, 그로토에 뛰어들 듯 일단 은퇴의 삶으로 뛰어들고 나니, 과외 선생의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평온함과 시간에 대한 감사를 느낀다.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남에 따라 마음이 안심되면서 그로토의 바닷물 속에서 나는 푸른 빛과 함께 소란한 저 세상 너머로 정적을 응시하는 불상의 감은 듯한 눈이 주는 평온함을 느꼈는데, 나는 요즘 일상에서 그런 평온함의 조각들을 줍고 있다. 주저 않지 말고 뛰어들어야 맛볼 수 있다.


  프리 다이빙은 결국 하지 못했다. 구명조끼를 벗고 해저로 내려져 있는 밧줄을 잡고 내려간 뒤 밧줄을 놓고 다시 수면 쪽을 상승하면서 헤엄치면 되는데 구명조끼를 도저히 무서워서 벗을 수가 없었다. 남편과 딸 아이가 멋지게 프리 다이빙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좋아한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지미씨와 마니가 수중 카메라로 다 찍어서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몽골에 가서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든, 노르웨이나 캐나다에 가서 오로라를 보든, 사이판에서 바닷속의 보든, 우리는 자연이 만든 예술 작품 속에서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예술 작품이 명작이 되는 것은 기법적인 완성도 외에 '초월적인 무언가'를 가리키기 때문이고 그 작품의 힘에 의해 우리도 그 무언가를 체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토는 나에게 거의 종교적인 경건함, 충만함, 장엄함을 체험하게 해주었다.      


  프리 다이빙은 여전히 못 하겠지만 사이판에 꼭 다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이판 여행 (1)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