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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Sep 15. 2023

영어공부를 어디까지 해야하나요?

어려운 영어에게 묻는다

  

민서 : 선생님, 선생님은 미드나 영화 다 이해하세요?

나 : 음... 어떤 영화냐 어떤 미드냐에 따라 다르지만, 잘 못 알아들어.

민서 : 정말요? 선생님도 못 알아들어요?

나 : 그렇지만 TED 강연이나 영어 교육에 관련된 강의는 잘 들려.     


듣기가 안 되는 우리 영어 교육

수능 영어에는 듣기 영역이 있어서 중학교 1학년부터 1주일에 영어 듣기 교재 한 단원씩 문제를 푼다. 20문제를 풀면 뒤에 이어 대화 내용의 대본이 나온다. 대본에는 빈칸이 숭숭 뚫려서 아이들은 듣고 그 빈칸을 채우는 숙제를 하는데, 신기하게 글로 보면 이해가 되는 문장들이 듣기로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현상이 있다. 아이들은 이 받아쓰기 과제가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답을 보면 내가 아는 단어인데 왜 귀로는 이해가 안 되는지 정말 영어는 어렵다고 구시렁거린다. 학생들은 내가 무슨 영어 원어민인 줄 아는지 미국 영국 드라마와 영화를 자막 없이 다 이해하는 줄 안다. 내가 가장 약한 부분은 아마도 듣기 영역이 아닐까 싶다.      


영어는 정말 듣기가 잘 안된다. 우선 한 단어의 강세 때문이다. 우리말이나 프랑스어 일본어 등에는 단어에 강세가 없어서 그냥 첫음절을 강하게 발음하면 되는데 이놈의 영어는 강세가 두 번째 음절에 있으면 첫음절을 거의 날려 버린다. admire 존경하다는 단어는 ‘어드마이어’가 아니라 그냥 ‘마이어’처럼 들려서 전혀 다른 단어로 들린다. 예전에 토익 듣기 문제를 풀다가 a lot of olive oil (많은 올리브 오일) 문구가 ‘얼라더발리보일’ 이라고 들려서 어리둥절 했었다. 발리보일이 뭐지? ‘얼 랏 오브 올리브 오일’이라고 절대 발음하지 않는다.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앞에 있는 자음과 연결되는 연음 현상 때문에 전혀 다른 소리로 들렸다. 어느 나라 말에나 이런 연음현상이 있지만, 외국어로 들을 때 참 어렵다.     


듣기가 안되는 이유는 우리가 학교에서 너무나 아카데믹한 영어만 배우고 일상적인 대화는 거의 접하지 못해서 그렇다. 독해 내용이 중학교 때까지는 일상적 이야기라 재미있지만. 고등학교 모의고사 정도 되면 같은 말을 왜 이렇게 어렵게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생기도록 정말 학술적인 딱딱한 표현과 장황한 만연체 문장들이 나온다. 이 말들은 어디에 속한 것인가?


일단 언어의 층위를 4개 정도로 나눠 보자. 4단계는 학문에 접근하기 위한 인문 사회 과학을 설명하는 언어. 3단계는 뉴스, 잡지, 교과서에 나오는 표준 영어. 2단계는 친구나 가족끼리 하는 대화형 영어. 마지막 1단계는 비속어 정도로 구별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우리는 3단계 4단계에서 영어를 익히는, 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1단계 2단계 영어를 쓴다. 전혀 다른 어휘와 문법을 사용하고 있으니 영화나 드라마 이해는 수능 영어만 공부한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또 다른 고난도 영어 학습 코스를 요구한다.      


영어 듣기 시험은 스튜디오에서 성우가 좋은 목소리로 발음으로 녹음한 거라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속도보다 엄청나게 느리고 발음도 정확하다. 이 인공적인 듣기 상황에서 대화의 맥락 파악하는 정도의 학습만을 중고등학교 6년 동안 하는 상황이다 보니, 2단계의 일상 영어는 거의 접하지 못하고 10대를 보낸다. 젊었을 때 싱가포르와 뉴질랜드에서 영어를 쓰면서 몇 년을 보냈지만, 미국 영국 사람들과 생활 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드라마와 영화는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사전을 찾거나 연필로 밑줄을 긋지 않고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영어적 자유는 있지만, 듣기는 여전히 어렵다. 싱가포르에서 느꼈던 것은 싱가포르 사람들이 발음과 문법이 원어민과 달라서 ‘싱글리쉬’를 쓰긴 하지만, 그들의 듣기실력은 100점에 가깝다. 영어가 교육언어이고 공식언어, 즉 영어가 제2국어라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게 영어는 외국어이고 어려서부터 배우지만 읽기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 다시 2단계에 해당하는 일상 영어의 듣기와 말하기 학습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추가 영어 학습은 어디까지?

영어 초급 단계에서는 실력이 쑥쑥 는다. 단어를 암기한 만큼 글을 읽을 수 있고 문법도 배운 만큼 이해가 된다. 영어 회화도 가장 기본적인 표현만 하면 되니까 어렵지 않다. 그런데 중급자가 되면 좀 더 복잡해진다. <넌 대체 몇 년째 영어공부를 하고 있니>의 저자 김재우 작가는 초중급 단계를 A1 A2, B1 B2, C1 C2로 나눈다. 중급 B1의 경우 웬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단계라면, B2는 문법에 맞는 차원을 넘어 자연스러운 영어표현이 가능하고, 구어체와 문어체로 자유롭게 구사한다. 섬세한 표현을 구사하는 어휘의 가짓수도 많아야 한다. 그러다가 고급 C1 단계는 전문 통역가나 영어 강사가 추구하는 단계이고 C2는 원어민 수준이다. 영어로 밥을 벌어야 하는 과외 선생님이 되려면 B2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C단계로 갈것인가 말것인가는 각 개인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갑자기 수학문제집 <쎈수학>이 생각난다. 거기서도 C단계가 가장 어려워서 평범한 아이들이 수학을 무섭게 하는 단계다.     


나는 영어가 좀 자유로워 지면서 말하기와 듣기를 할 때 좀 다르게 주의를 기울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말할 때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해서 문법과 어휘에 연연하기보다는 말을 유창하게 하는 데 더 주력한다. 말할 때는 어려운 동사보다는 영어 작문 선생님이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do have get make 등의 쉬운 동사를 쓰려고 한다. 김재우 작가님의 예처럼 ‘저는 석사과정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할 때, I’m pursuing my master’s degree.라고 하지 않고 I’m doing my master’s degree 이렇게 동사를 쓰면서 말이다. 반면 듣기를 할 때는 상대의 메시지를 넘어 그가 쓰는 표현에 집중한다. 어떤 단어를 쓰는지 수동태, 관계대명사, 분사등 문법적인 부분을 주의 깊게 듣는다.     


딸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마트에서 한 잘 생긴 백인 남성이 밀가루와 튀김가루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도와주고 싶다고 하고 밀가루와 튀김가루를 설명해 주었다. 마트에 서서 이런 저런 얘기를 좀 나누다가, 내 딸 아이에게 영어 개인지도 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 원어민 선생님은 우리 동네에 있는 대학에서 강사를 하고 있었는데 I’m not supposed to give private lessons. 라고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면 안된다’를 말하기 위해 be supposed to를 이렇게 쓰는구나 하고 각인되었다. 상황에서 배운 표현은 암기한 표현보다 자연스럽게 쓰게 된다. 수능 영어만 보다가 머리를 식힐 겸, 어린이들이 보는 동화책에서도 좋은 표현들을 본다. 스누피를 사랑하는 나는 스누피를 그린 작가님 챨스 슐츠의 어린이용 위인전을 읽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던 어린 슐츠 선생님은 스포츠를 하면서 승리하려고 애쓰면서 수줍음을 잊었다고 한다. 이 표현을 He forgot his shyness in his desire to win. 이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에서 shyness 수줍음과 desire 욕구라는 단어를 이렇게 잘 썼구나 싶었다. 영어 배우는 재미는 이런 데 있는 것 같다. 이 소소한 재미가 영어를 공부하게 한다.     


영어를 섬세하게 배우려 하다 보면 전치사가 걸린다. 이 쪼그만 단어가 매우 어렵다. 말할 때는 그냥 대충 넘어가도 글을 쓸 때는 in the cafe 인지 at the cafe인지 잘 맞게 써야한다. 재택 근무를 번역하라하면 나는 work at home 이라 자신있게 쓰지만, work from home 이맞다고 김재우 작가님 책에 쓰여있다. 아 이렇게 쪼잔한 것들까지 다 신경 쓰면서 글을 쓰는 것은 힘들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대사를 배우와 같은 속도와 발음으로 따라 하는 shadowing을 하는 건 전혀 엄두가 안 난다. 원어민처럼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원어민과 같은 발음, 말하기 속도와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면, 내가 필요로 하는 영어 즉 내 직업 세계에서 필요한 영어만이라도 완전히 잘하는 것에 머물러도 좋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어학에 쓸 수 없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원어민들은 나의 실수와 어색한 표현을 일일이 고쳐주지 않는다. 우리도 외국인이 틀린 발음과 이상한 문법으로 말해도 고쳐주지 않는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표현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잡지 <번역하다>에 실린 사진을 보고 한참 웃었다. “식사준비가 완성됐습니다”. ‘식사준비가 다 되었습니다’가 맞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약간은 이상한 문장이라도 조금 느린 속도라도 한국인 억양과 발음이라도 내 표현을 다 할 수 있고, 친구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고, 직업에서 필요한 영어가 불편하지 않다면 나는 대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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