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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Oct 25. 2023

첼로를 시작하고 말았으니(feat. 첼로 초보)

극강 까탈 악기 첼로


첼로 선생님 : 선생님, 혹시 목표곡이 있으세요?
 나 : 글쎄요...

첼로 선생님 :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프렐류드로 하실래요?

나 : 아 그걸 하려면 몇 년이나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첼로를 배운지 두 달 반이 지났다. 10회의 레슨을 받았다. 레슨이 끝나고 첼로를 챙기고 있는데 선생님이 목표곡이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보통 성인들은 어떤 곡에 꽂혀서 그 곡만 연습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연주해 보려고 악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베토벤 월광소나타 1악장만 주야장천 연주한다던가 좀 더 쉬운 ‘엘리제를 위하여’를 이용해서라도 퍼포먼스를 하고 싶어 한다. 아마 선생님도 내가 그런 야망을 가진 줄 아셨나 보다.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자주 듣는다고 하니 그 유명한 1번의 프렐류드가 내 목표 곡이라 상상하셨나 보다. 10회 레슨을 받고 난 느낌으로는 프렐류드 연주는 한 5년 후쯤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 난 어떤 곡을 목표곡으로 정해야할까 고민에 빠졌다.     


피아노와 달리 첼로는 엄청나게 예민한 악기다. 기타처럼 지판에 줄이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음을 알아서 찾아야 한다. 정확한 음을 찾는 예민한 음감이 필요하다. 배우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줄을 관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이리도 까다로운 악기와 겨우 두 달 반 정도 지냈는데 아직 친해진 거 같지 않다. 줄이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서 줄이 풀리기도 하고 조여지기도 한다. 그냥 세워 두었는데 저 혼자서. 내가 만진 것도 아닌데 음정이 며칠 지나면 바뀌어 있다. 그래서 줄을 조이려고 줄감개를 돌렸는데 빡빡해서 잘 돌아가지 않았다. 조심조심 신중하게 돌리고 있는데 띵하는 소리와 함께 줄이 끊어졌다. 아니 악기를 산 지 두 달 만에 줄이 끊어지다니!


피아노는 1년에 한 번 조율사님이 조율해주시면 끝이고, 기타도 조율하다가 줄이 끊어지는 일은 없다. 줄을 사려면 천안 악기사까지 가야 하고 주말에 가려면 연습도 못 하는데 아득해지는 내 마음이었다. 선생님 악기로 연습하고 주말에 악기사에서 줄을 무상으로 갈기는 했지만 첼로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선생님도 악기사 사장님도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내 악기가 싼 녀석이라 그런 건 아니라고. 비싼 악기로 살 걸 그랬나 후회도 되었지만 중급자가 될 때까지 버티기로 했다.   

  

  첫 레슨 때 개방현으로 그냥 4개현을 그어보았다. 활을 잡는 법도 쉽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우렁차고 아름다운 소리에 마음이 현의 진동만큼 흔들렸다. 눈앞에서 파르르 부옇게 현의 진동이 보였다. 망치 잡은 사람의 눈에는 세상에 못만 보인다고 첼로를 배우고 나니 악기에 대한 문장이 눈에 뜨인다. 이번 9월 고1 수능모의고사 37번에 보니 현을 울리면 1초에 수백 번의 진동이 있다고 한다. 현 자체 진동은 공기를 많이 움직일 수 없어 소리가 작지만, 크고 속이 빈 나무 상자를 현에 붙이면 음이 증폭되어 큰 소리가 난다고 한다. 1초에 수 백번이나 되는 이 진동이 나무판을 같은 횟수로 울리게 하고, 또 그것이 나의 고막에 닿았을 때 또 그만큼의 많은 흔들림을 만들어 나는 음을 인식한다. 이렇게 미세하고 정교한 진동으로 들리는 소리라니! 소리가 나는 것도 소리가 들리는 것도 다 기적 같았다.     


  가장 저음 C선은 깊은 겨울의 슬픔 같고, G선의 소리는 가을의 불타는 단풍같고 D선은 여름의 맑은 하늘의 구름 같고, 마지막 내 눈앞에서 어이없이 끊어진 A선은 따뜻한 봄바람에 싱숭생숭한 마음 같았다. 이렇게 4계절이 포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선생님의 <반짝 반짝 작은 별> 악보를 보여주셨다.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찾아서>를 쓴 에릭 시블린 작가도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고 처음 연주한 것이 <반짝반짝 작은 별>이었다고 했다. 모차르트가 알고 있다면 기뻐할 것 같다. 첼로를 연주한다는 것은 첼로를 껴안고 춤을 추는 것 같다. 사랑하는 여인의 허리에 왼손을 얹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는 것처럼 조심조심. 작은 별을 연주하면서 나는 행복에 빠졌다. 이거 할만한데 하고 기쁨에 달떠 있었다.    

  

  그런데 레슨이 계속 진행되면서 극강 예민한 악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선생님이 젊은 날에 못사는 나라 한국에서 왔다고 인종차별의 모욕을 받았을 때,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고 절치부심했다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것은 ‘일만 시간의 법칙’이 말하는 매일 매일의 부단한 연습으로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 않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활을 켜는 순간과 왼손으로 현을 잡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아주 약간의 시차가 있어야 한다. 일단 왼손 현을 잡고 그  다음에 활이 줄을 마찰시켜야 하는데 나는 왼손으로 완벽히 현을 잡기 전에 활을 켜는 바람에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또 새끼손가락의 살이 미묘하게 옆의 줄에 닿으면 쇳소리가 났다. 현에 마찰의 압력이 조금이라도 낮으면 붕붕 뜨는 소리가 나고 너무 높으면 끽끽 소리가 난다. 아 정말 어렵다.     

그래도 이 고난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전율을 느꼈다. 스즈키 첼로 교본 1권의 14번 연주곡을 연습하면서 느낀 바흐 첼로모음곡의 느낌이 또 나를 달 뜨게 만들었다. 모음곡 1번의 프렐류드의 어디메쯤에도 이런 음이 있는 것 같다. 작은 별에서 우쭐 했다가 소리에 절망했다가 다시 연습곡에서 희망을 보았다. Etude 에뛰드. 연습곡이라는 이 단어는 연습을 많이 하라는 신의 계시다. 뭔가 에뛰드를 한다고 하니 이제야 내가 첼로에 입문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전에 했던 동요들은 악보를 외워서 쳤다면 이제 보면대에 있는 악보와 활을 보면서 연주를 한다. 기분이 막 좋아진다. 그리고 나의 뇌는 100% 풀가동이다. 신체와 뇌를 동시에 쓰면서 첼로를 껴안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고 집중 상태. 내가 언제 이런 초집중을 해 보았던가 기억이 가물거린다.     


또다시 목표곡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한다. 배울수록 목표곡을 고르기가 어렵다. 그것도 단기 목표로. 느린 곡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게 어렵다. 마치 휘트니 휴스턴의 발라드곡 I will always love you 같이 유장한 느낌의 생상스의 <백조>나 바흐의 <아리오소> 같은 곡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고 바흐 첼로모음곡은 너무 고난도. 스즈키 선생님의 첼로 연습 교본 2권에서 고르거나 선생님의 진단에 따라 정해야 할 것 같다. 알면 알수록 겸손해진다. 지금도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판을 누룰 때마다 조금 아프다. 20분 연습에도 지치는데 레슨 전에 급 연습한다고 1시간, 선생님과 레슨시간 1시간 총 2시간 동안 첼로를 부둥켜 안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첼로를 배우고 말았으니 나는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계속 가야 한다. 지친 손가락을 위로하며 요 며칠 동안 바흐 첼로모음곡 3번을 많이 들었다. 첼로 소리 자체가 구슬프고 저음이라 실제로 장례식에서 연주가 많이 된다고 한다. 이 슬픈 소리도 C장조의 힘을 얻으면 힘차고 춤을 추고 싶은 구간도 나온다. 모음곡 3번의 마지막 곡인 지그를 들으면 집시들의 춤이나 아라비아 술탄 앞에서 춤추는 여인들이 떠오른다. 나도 춤을 추면서 듣는다. 바흐 첼로모음곡은 영어 못하는 내가 그냥 틀어 놓았던 BBC 방송과 비슷하다. 이렇게 바흐 선생을 들으면서 연습을 하다 보면 프렐류드에 도달하는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한다. 스즈키 선생의 지도를 받아 바흐 선생의 면전에 닿기를 기다리며 매일 20분 연습을 한다.     

 

그리고 Self + Achievement = Authenticity   

자아가 있고 성취가 있다면 진정성이라는 <그냥 하지 말라>의 송길영 선생의 말도 믿어 보련다. 첼로가 나에게 진정성을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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