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레슨 받기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었다. 작년 8월 17일에 시작해서 1년 동안 48회 레슨을 받으면서 스즈키 첼로 교본 1권과 2권을 마쳤다. 2권의 마지막 곡은 헨델의 부레 Bourrée 라는 곡이다. 1권은 4개월 2권은 8개월이 걸렸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부레는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에서 시작된 빠른 춤곡이라고 한다. 빠른 춤곡이라 저음에서 고음으로 음을 쌓아가듯 진행하면서 동시에 점점 커지는 크리센도로 갔다가 작아지는 디크리센도로 마무리되는 주제의 반복이 있는 곡이다. 크리센도와 디크리센도의 변화를 오른손으로 활을 통해 그야말로 춤추듯 느끼면서 연주하다 보니 매우 감성적인 곡이다.
처음으로 나는 곡을 몸으로 느끼고 반주에 맞추어 ‘몰입’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첼로를 품고 있으니 누군가와 함께 춤을 추는 듯한 감미롭고 행복한 느낌이 현의 진동과 함께 온몸에 퍼지는 듯하다. 이 맛에 첼로를 배우는 것 같다. 이런 몰입감은 연습을 많이 하게 했고, 잘했다는 칭찬도 들었다. 곡을 익히고 암기하고 내 몸과 하나가 될 때까지 연습했다.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해냈다는 성취감과 감사한 마음을 선물로 받았다. 그래서 산은 공들여 오르는 자에게만 자리를 내어준다는 말이 생각났다.
내일 8원 17일을 챌로 기념일로 정하고 작은 케익이라도 사서 남편과 축하라도 하고 싶다. 그래야 2주년 3년을 기대하며 감동과 몰입이 아니라 괴로움과 지겨움이 몰려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12월 22일 결혼기념일에서 시작해 3월 말 남편의 생일까지 3개월 안에 우리 가족의 생일과 기념일이 몰려 있어서 8월 즈음에 기념일 하나를 정해 더운 여름을 보내고 1년 후반부를 잘 보내자는 의미의 이벤트를 해도 좋을 거 같다. 프랑스 춤곡으로 1년을 마쳤으니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치즈케익을 사서 먹자!
1년이 쉽지는 않았다. 16개 기본음만 알면 첼로는 웬만큼 연주할 수 있다는 학생의 말을 듣고 덜컥 악기를 사서 그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연락해 레슨을 시작했다. 악기를 처음 개방현으로 부웅~ 연주하면서 소리에 일단 감탄을 했다. 1권의 곡들을 연주할 때는 내가 꽤 잘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2권의 마지막 부분으로 향하던 지난 5월에는 어깨 통증이 가시지 않아 첼로라는 악기를 포기해야 할까 하고 고민과 우울감에 빠졌었다.
자주 가는 가정의학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매우 극심히 아픈 주사 맞겠냐고 했을 때, 낫기만 한다면야 하고 웃옷을 벗고 6대나 주사를 맞았다. 아이도 낳았는데 못할 게 무엇이랴? 주사쯤이야. 근육이 뭉쳐서 생긴 통증이라 주사로 해결이 되어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왼손 관절, 어깨와 목 뒤의 근육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스트레칭하고 10~15분 연습하면 반드시 스트레칭을 또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또다시 통증이 극심히 아픈 주사를 불러올 수 있다.
통증이 지나고 나타난 난관은 2권의 11번째 곡. 고세크라는 작곡가의 <가보트 Gavotte >라는 곡이었다. 헨델의 <부레> 바로 앞 곡인데 이 곡이 마지막 곡보다 훨씬 어려웠다. TV광고 배경음악인 듯 어딘가에서 들어본 멜로디는 ‘와 나도 곡다운 곡을 연주하는구나!’ 했는데 후반부에 나오는 네잇단 음표가 정말 죽음이었다. 여러 네잇단 음표 중 피아노로 치면 3살짜리도 할 수 있는 ‘라솔파미’가 너무 어려웠다. 라에서 솔로 넘어올 때 현이 바뀌는데 네잇단 음표니까 음이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연결이 되어야 한다. 활도 한 방향으로 미끄러지듯 넘어가야 하는데 정말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선생님은 되는데 나는 안되는 상황이 한 달 이상 지속하였다. 5월에 시작한 가보트는 7월이 되어도 끝이 나질 않았다. 중간에 어깨까지 아파 2주 쉬고 다시 시작하자니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선생님은 네잇단 음표 연주가 완전하지 않아도 진도를 나가셨다. 다른 연주로 또 연습을 해 나가다 보면 정복이 되는 날도 올 거로 생각하신 거 같다. 다음 곡으로 넘어가 헨델의 <부레>를 만나게 하고 그 곡과 사랑에 빠지게 해서 다시 사기를 충전해 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다. 나도 아이들이 너무 어려워하는 문법이 나오면 100% 완전하지 않아도 넘어갈 때가 있다. 영어 문법에 가정법과 분사를 아이들이 정말 싫어하는데 90% 이해하고 문제 푸는 능력이 생기면 넘어간다. 가정법 다음에 대명사나 조동사 같은 쉬운 부분이 나오면 좀 쉬어가다가 다시 다음 단계에서 가정법을 배운다. 그렇게 가정법이 완성되는 것처럼 나의 <가보트>도 새로 시작한 교본 3권이 끝나면 저절로 완성될 것으로 예상한다. 1권에서 <즐거운 농부>를 하면서도 어려우니까 즐거운 농부 아니고 괴로운 농부야 하며 구시렁거렸지만 2권을 마치고 나니 다시 즐거운 농부가 되었다.
악기든 외국어든 매일 매일 연습하고 익히면서 시간을 두고 나를 돌아보면 내가 성장한 것을 느끼게 된다. 계단식으로 훌쩍훌쩍 도약함을 느끼게 하는 외국어와 악기 연주는 나 자신에게 칭찬할 만한 것을 제공한다. 내가 외롭고 힘들 때 내가 나 자신을 안아 주듯, 6개월 1년 전 나보다 발전한 나의 기술이나 지식을 보면서 나 자신을 안아 준다. 그리고 그 기술과 지식이 정교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더 섬세한 악기의 감상자 연주자가 되고 넓고 깊은 이해를 더 하는 독서가가 되는 일도 가능해진다.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배울 때 선생님이 일기를 쓰라고 했다. 그리고 1년 뒤에 그 일기를 다시 보라고 했을 때 나는 확실한 나의 발전을 느꼈는데, 그때도 지금도 이 발전을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미소, 선생님의 칭찬, 선생님의 기절할 것 같은 아름다운 연주로 보여주는 역량이 없이는 학생은 발전하려고 노력할 수 없는 것 같다. 나의 첼로 선생님도 그러하시다. 언제나 웃으시고, 못해도 처음 하는 설명인 듯 또 설명해 주고, 칭찬을 해주시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연주하시면 아무리 작은 곡이어도 아름답게 들린다. 학교 종이 땡땡땡을 연주해도 나는 감동을 받을 것이다.
남편이 알게 된 노교수님은 현재 70세이신데 65세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년의 취미생활을 쳇GPT 지선생에게 물어보았다. 독서와 악기 연주와 산책이 맨 위에 나왔다. 신체적 힘이 약해질수록 등산 구기 종목 같은 운동보다 정적인 활동이 추천되었다. 산책은 큰 근육을, 악기 연주는 작은 근육을 쓰게 한다. 악기를 연주하면 독서만큼이나 뇌가 활성화되고 일을 한다고 한다. 음악을 단지 듣는 것보다 훨씬 많은 뇌의 부분에 불이 켜진다. 첼로 연주는 정신, 정서, 신체 모두에 좋은 영향을 준다. 행복 호르몬이라는 세로토닌도 많이 분비될 것 같다. 1년 동안 지도해 주신 나의 첼로 선생님과 첼로라는 악기를 <첼로 무반주 모음곡>으로 재발견한 바흐 선생님과 교본을 만든 스즈키 선생님 세 분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나저나 이번 성탄절에는 성당에서 한 두곡 연주를 할 참이다. 선생님이 무슨 곡을 선정해 연습하라 할까, 마음이 설렌다. 크리스마스는 벌써 내 마음에 와 있다. 기상청이 35도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도 35도라고 발표하는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씨가 덥다. 말복이 지나도 밤에 집안 온도가 30도. 에어콘 없이 잠을 이룰 수 없는 8월. 어린애처럼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