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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 Jan 16. 2024

빨래에 대한 고찰

제일 싫어하는 집안일: 빨래


우리 집 큰 남자가 또!!! '썼던 휴지 뭉쳐서 주머니에 넣기'를 시전 했다. 덕분에 나의 검은 빨래 (검은 빨래는 아닌데 나는 밝은 색 옷을 거의 안 입어서 검은 빨래로 분류한다)가 허연 휴지 조각들로 엉망이 되었다. 넣을까 말까 하다 마지막에 넣은 그의 잠옷 바지 주머니 속 티슈 한 장 때문이다. 내가 싫어해 마지않는 그의 두 가지 습관 중 하나인데 10년째 고쳐지지 않고 있으니 이쯤 되면 그냥 우리 가족의 평화를 위해 내가 포기하는 것이 빠를 지도 모른다.


세탁물을 하나씩 꺼낼 때 마다 눈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휴지 조각들을 보며 '아으, 진짜!!' 육성으로 입에서 불을 뿜으며 씩씩대고 있는데 마침 친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길래 휴지 폭탄 사태를 고발했다. 빨래가 제일 싫어. 나를 잘 아는 언니마저 의외라고 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뭐가 힘들어?



빨래가 왜 싫어? 세탁기가 하잖아. 아니, 모든 기본 집안일 -- 청소, 정리정돈, 요리, 설거지, 장보기,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아이 보기, 만들기, 고치기, 밭이랑 꽃에 물 주기 등등 -- 중에 가장 하기 싫은 일을 고르라면 나는 단연코 빨래를 고른다.








흰 빨래, 검은 빨래, 색깔 빨래, 수건, 드라이.. 갖가지 세탁물들의 특성을 살피고, 구분하고, 주머니나 부속품들 중에서 혹시 다른 것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니 한 번씩 뒤져보고 (아아, 이 중요한 단계를 간과했다), 액체 몇 가지 종류가 조그마한 캡슐에 담겨 있어 섬유유연제니 블리치 등을 따로 넣지 않아도 된다는 외국물 먹은 세제를 넣고, 적절한 온도의 물에 맞춘 후 세탁기를 돌린다.


코스나 세탁물의 양에 따라 다르지만 수건은 1시간, 일반 자동 세탁은 한 시간 반이면 끝나니까 늦지 않게 세탁기와 세제통 입구 문을 열어서 공기가 통하게 하고, 다음 단계인 건조를 한다. 건조기를 쓸 수 없는 옷의 경우 젖은 옷가지들을 건져와서 탁탁 털어 건조대에 정성껏 펴서 말리고, 보통의 경우 건조기에 '때려 넣'는다.


요즘은 색상 구분 없이 빠르게 몇 가지만 돌리는 일이 잦아서, 2차 이염 없는 세제를 쓰긴 하지만 혹시나 옷감에서 빠진 물 때문에 다른 옷이 망가질세라 이염을 방지하는 색상 흡착 시트도 한 장 넣어 같이 돌린다. 이 친구는 세탁이 끝난 뒤, 또는 건조가 끝난 뒤 세탁기와 건조기에서 나온 먼지 패브릭 -이라고 부른다, 필터에 걸러져 망에 달라붙은 먼지가 마치 도톰한 부직포, 옷감 같아서 - 을 닦아낼 때 유용하게 쓴다.





여기서 끝나면 참 좋을 텐데 빨래는 그것도 아니다. 다시 2시간 후에 건조기가 울리면 바삭 또는 보송하게 마른 친구들을 꺼내주어야 한다. 꺼내면 그만이냐, 그것도 아니다. 가족 별로, 세탁물의 특성 별로, 보관할 장소 별로 각 맞추어 반듯하게 접고, 옷걸이에 끼워 서랍이든 봉에 걸어야 비로소 끝이다. 정말이지 집안일 중에 제일 골고루, 다양하게, 여러 번 손이 많이 가는 일 아닌가? 이래도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니까 간편하다니.


한동안은 이른바 곤마리 메소드 -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 스타일 - 로 반듯하게, 옷 한 벌 한 벌 정성껏, 마음을 담아 매만져주고 들여다보고, 접고, 각 맞춰 세워서 보관하기도 했다. 저도 한 정리정돈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고요.. 그런데 곤마리 메소드는 결정적으로 나의 집안일 신조인 '후딱후딱'을 할 수 없어 그만두었다. 너무 잘하려고 하니 되려 손도 대기 싫어지는 것이 국룰.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 다용도실 앞 공간에 건조까지 끝냈으나 개켜지기를 기다리는 옷가지들이 산더미같이 쌓인 것을 보고 짜증 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마지막 단계인 빨래 접기가 귀찮은 점도 좋아하지 않는 이유에 크게 한몫한다.





내가 왜 빨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더니 나의 계획했던 바나 시간 계획, 의도와는 상관없이


1. 시간에 맞춰야 하고: 세탁기에 젖은 채로 오래 놔두면 참을 수 없을 만큼 꿉꿉하고 쿰쿰한 걸레 썩는 냄새가 난다. 처음부터 죄다 다시 돌려야 된다고. 아니, 옷은 그렇다 치고 기계에서 저런 냄새가 나다니.....

2. 시간에 맞춰야 하고: 세탁기든 건조기든 일을 마치면 그때그때 빠른 관리의 손길을 원한다. 접고 걸고 눈앞에서 치워야 집안 질서 유지가 가능해진다. Again, 나의 스케줄과는 상관없다.........

3. 시간에 맞춰야 한다: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주변 이웃들에게 소음 피해를 끼치니 너무 일찍 기계를 돌려도, 너무 늦게 돌려도 안된다는 점. 문화시민은 공동수칙을 잘 지킵니다..


캐나다에 있으면서 좋았던 건 단독주택이라 새벽에도 한밤중에도 시간에 관계없이 세탁기를 돌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캐나다는 전기료가 비싸기로 유명한데, TOU (Time Of Use)라고 해서 Off-peak / On-peak 사용시간대 별로 차등요율을 적용한다. 식기세척기고 세탁기고 모두 자기 전에 돌려놓고 자는 이유..


빨래 해야겠다 싶은 날은 무조건 일어나자마자 세탁기부터 돌려놓고 돌아가는 사이에 그밖의 집안일, 주로 청소와 정리정돈을 한다. 휴대폰에 세탁 끝 알람이 뜨자마자, 종료되었다는 멜로디가 들리자마자 - 이 노래가 제일 좋다 - 하던 일 제끼고 다음 단계를 하러 간다. 어쨌든 집안일은 스마트한 시간 배분이 중요한데, 빨래라는 집안일은 기계 도는 시간에 얽매인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그뿐인가. 날씨 영향도 많이 받는다. 건조기가 있지만 아무래도 이불이나 러그 같은 건 날씨 좋은 날 쨍한 햇빛에 바짝 말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렇게 못한 지는 오래됐다. 날씨가 너무 추우면 수도관 동파 때문에 아무리 아파트에 산다고 하더라도 가급적 자제해 주길 당부하는 알림 방송을 한다. 집안일 중에서 가장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또 세탁인 것이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을까 떠올려보니 깔끔하기로 세상 최고인 시터 이모님을 모셨을 때였던 것 같다. 아기를 잘 돌봐주셨던 것은 물론, 화장실 두 개부터 아기가 주로 누워 노는 거실, 부엌, 산모인 내가 먹을 반찬, 그리고 수많은 우리의 빨래까지 모든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 주셨다. 깨끗하게 세탁해서, 반듯하게 개켜 옷장이든 서랍이든 차곡차곡 넣어주셨는데, 그 바지런한 손길의 수고로움을 알기에 마음 깊이 감사했다. 옷정리, 집 관리 잘해주는 사람이 제일 좋아.



한 번씩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야 되는 특별한 세탁물들은 런드리고, 세탁특공대 같은 전문 외주 인력의 도움을 받는다. 나처럼 세탁을 귀찮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런드리고의 빠른 서비스와 세심한 케어, 편리함에 반한 내가 인스타와 블로그에 쓴 실사용 후기가 터져서 추천 포인트와 후기 혜택도 쏠쏠하게 받았다. 역시, 잘 되는 비지니스를 하려면 이런 불편함과 귀찮음을 해소해줘야 한다..






점심때쯤 그가 안부 전화를 했다. "오전 잘 보내고 있어? 점심 먹었어? 뭐 먹었어?" 묻는 그에게 "오빠, 또 주머니에 휴지 꿍쳤어..... 검은 빨래 망했어.." 투덜댔더니 T형 남자답게 "아 그래? 건조기에 돌려! 다 걸러질 텐데?"라고 즉각적인 솔루션을 내놨다. 이미 했어. 이미 했다구.. (부글부글)


남편은 빨래라는 집안일이 주는 번거로움이 별로 그렇게 큰 귀찮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절친 언니처럼 남편 역시 빨래는 세탁기가 하잖아, 타입의 사람이었군. 시간에 맞추는 것 역시 세탁기 돌려놓고 딴 거 하면 된다면서 (나도 그렇게 한다고!). 그래, 원래도 세탁기를 돌리는 일은 7:3의 비율로 주로 그가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전적으로 그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것이 우리 집의 평화와 행복을 유지하는 비결일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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