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 실행
‘퇴사하고 뭐 하고 싶냐’길래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여행!”이라고 외쳤다.
몸과 마음, 정신까지 아주 많이 지쳐있었고, 그저 하루라도 빨리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다. 물론 될 수 있는 한 멀리.
내가 생각했던 ‘최대한 멀리 떠나기,’는 그간 내가 보류해 두었던 행복의 요소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예술’과 ‘취향’을 골고루 버무린 떠남이길 바랐다.
그리고 두 가지의 교집합에는 유럽이라는 동네와
늘 나의 마음속 그림자처럼 드리운 미술이 존재했다.
하지만 일개 워킹맘은 예술을 마음껏 향유하기에는 힘겹다. 언제나 시간에 쫒기고 체력에 허덕이니까. 평일에는 늘 일을 하고, 아이 하나 키우면서도 동동대며 바쁘게 살다보니 멀리 가야하는 아트 바젤* 은 커녕 일부러라도 해외에서 찾아오는 프리즈 서울** 이나 키아프*** 조차 못 가는 게 현실이었다.
아트 바젤은 1970년부터 매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규모의 아트페어.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40개국, 약 300개의 갤러리들이 참가한다.
명실상부 최고의 아트페어답게 '까다롭게 선별된' 갤러리들만 참가할 수 있다. 아트 바젤 기간 동안 거래되는 작품의 가격만 해도 무려 n조 단위이며, 부스 당 1억 원이 든다.
바젤을 시작으로 3월에는 홍콩, 6월에는 바젤, 10월에는 Paris+ par Art Basel 이라는 이름으로 파리에서, 그리고 12월에는 마이애미에서 열린다.
https://www.frieze.com/fairs/frieze-seoul
아트 바젤의 트래디셔널함에 물린 사람들이 젊은 바이브로 만든 아트페어. 프리즈 (Freeze) 예술 잡지에 뿌리를 두고 영국 런던 템스강변 창고를 빌려 전시를 열었던 것을 시작으로 사치갤러리의 찰스 사치가 후원하면서 새로운 젊은 작가들을 다수 발굴, 21세기 현대 미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로 분위기가 악화된 상황에 아시아 아트페어의 허브처럼 여겨졌던 홍콩 대신 K팝의 물결을 타고 세계적으로 ‘힙해진’ 서울에서 열렸는데, 코로나 이후 때마침 불어온 미술품 재테크 열풍까지 더해져서 수십억 원짜리 작품들이 순식간에 팔리는 등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프리즈는 영국 런던, 뉴욕, LA, 서울에서 네 곳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키아프 서울은 한국화랑협회에서 주관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국제아트페어로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2022년부터 프리즈 서울과 동시 공동개최되었으며, 키아프 역시 전 세계 180여 개의 갤러리들이 다수 참가하고 있다. 키아프 플러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현대미술, NFT 아트, 뉴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 세계 슈퍼 아트 컬렉터들부터 각종 예술 재단, 큐레이터 및 예술 기획자들처럼 예술계에 영향력 있는 전문가들이 모이게 되면서 전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으로 서울이 꼽힌다.
국내에서 여러 미술관이나 전시를 보러 다녔지만 정작 해외, 특히 유럽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뮤지엄은 가보지 못했다. 왠지 퇴사하고 난 직후인 이때가 아니면 영영 실행하지 못할 것 같은 괜한 조급함도 들면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버킷 리스트, 미술관, 박물관을 테마로 한 유럽 여행을 실행하기로 했다. 도시 전체가 뮤지엄이나 다를 바 없는 프랑스나 독일, 또는 이왕 유럽까지 갔으니 최고의 아트페어, 아트 바젤이면 좋겠다.
아직 유치원은 학기 중인데.. 그럼 아이는? 당연히 데려가야지. 당시 친구 때문에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상황이라 거리를 두고 싶기도 했고, 그림 그리기, 만들기를 좋아하고 재능도 있는 아이에게 수많은 명작들을 보여주고 싶은 엄마의 욕심도 있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설령 이 대단한 작품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엄마와 함께 유럽 여행을 갔던 그 자체로 충분히 특별하지 않을까?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겁도 없이 아이와 둘이서 유럽 미술관 여행 갈 거야! 당찬 포부를 밝혔다. 나의 이 나이브한 버킷 리스트가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