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되면서 어디나 분위기가 뜨겁다. 집으로 투표안내 용지가 배달되었다. 그런데 용지에 우리 내외와 사위만 등재가 되어 있었다.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10월 사위가 독일 지사로 발령을 받아 딸네 4 식구가 해외로 이사를 했다. 떠나면서 살던 집을 세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딸네집인 용인과 우리 집이 있는 수원을 오가며 월세 계약을 하고 딸네 식구 주민등록을 우리 집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인터넷 사이트 ‘정부 24’에서 하면 된다기에 해외거주증명을 하고 세대주 승낙을 했다. 다음날 행정복지센터에 직접 가서 주민등록 주소지 신고를 완결하였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칠십이 넘어서면서부터 행정 일에 부쩍 자신감이 떨어지던 차인지라 더더욱 곤혹스러웠는데 옆에서 남편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기에 식구가 없어지느냐며, 일을 맨 날 투미하게 하니까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힐난하는 목소리에 더욱 당황스러워지면서 어떻게 처리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벌건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정부 24에 들어가 가족관계증명서를 인쇄하고, 떼어놓았던 해외거주증명서를 찾아 서류를 준비했다.
다음날 서류를 들고 집을 나서려는데 남편이 말을 건넨다.
“같이 걸어가 줄까?”
“혼자 걸어가기 심심하잖아,”
나는 샐쭉한 표정으로 문을 나서는데 남편이 따라나섰다.
“왼쪽 길로 가야 햇볕 있는 양지 길이야, 햇볕을 쏘여야 비타민 D가 작용을 해서 밤에 잠을 잘 잔다고” 또 잔소리를 끓여 부으며 행정복지센터까지 따라왔다.
번호 대로 창구에 앉으니 앳된 직원이 “무슨 일을 도와드릴까요?” 한다.
“예, 해외거주자 주민등록 이전신고를 했는데 한 사람만 올라오고 나머지 식구 등재가 안 된 것 같아요.”
어려 보이는 직원의 모습에 속으로 일을 잘 모를 것 같다는 의구심을 품은 채 투표안내용지를 내밀었다. 직원은 컴퓨터를 체크하더니 “작년 10월에 하셨네요.” 하고는 그때 낸 신청서를 보아야 한다고 컴퓨터를 두들겨대다가 쪼르르 다른 직원에게 달려가서 십 여분이나 지나 돌아왔다.
“신청은 있는데요, 나머지 식구는 용인에 그대로 놓아두었네요.” 한다. 접수받았던 직원이 사위만 올리고 나머지 식구 올리는 걸 잊고 마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직원에게 나머지 식구도 주소지를 옮겨달라고 말 한 뒤에 남편의 얼굴을 보니 잘잘못을 가리고 실수한 사람을 찾아내 기어이 나무라고 싶은 얼굴이다. 나는 두 검지손가락을 엑스자로 만들어 참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등재 후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받아 들고 나는 딸을 선거인 명부에 올려달라고 했다. 직원은 이미 기간이 지나 여기에는 못 올린다며 해외에서 신고를 하셨으면 부재자 투표는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또 잔소리를 시작한다.
“지금 등본을 떼어 확인한 것처럼 모든 일은 마무리가 제대로 되었는지 꼭 확인을 해야 하는 거야” 한다.
나는 양 옆으로 늘어선 벚나무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아! 벚꽃이 너무너무 예쁘다.”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 벚꽃을 가리켰다.
“어제는 내가 무슨 서류를 잘못했나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죽을 지경인데, 소총 맞고 쓰러진 사람한테 당신이 또 기관총을 마구 쏘아대니까 완전히 죽을 맛이었어요.”라고 말하고는
“앵두나무 꽃이 무슨 색인지 알아요?” 하고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빨간색!”
“아니, 하얀색이야, 하하하, 앵두가 빨간색이니까 꽃도 그런 줄 알았지?”
“그것도 모르면서 남 잘못하는 건 참지를 못한다니까”
나는 남편에게 한 대 먹이고 기분이 좋아졌다. 답답하던 마음이 뻥 뚫리고 시원해져서 꽃그늘아래 선 남편의 손을 잡았다. 50년을 서로 길들이며 살았는데도 아직도 흔들리며 살다니. 이런 틈새가 바람을 시원하게 느끼게 하는 걸까? 순간 나는 이렇게 함께 걸을 수 있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벚나무 밑의 화단에는 봄까치꽃, 제비꽃, 꽃다지 작은 꽃들이 서로 어우러져 제 나름의 몸짓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아, 싱그러운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