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소리 Jun 06. 2024

이광수의 사랑 그 후

가사노동의 분담

    

 ㅇㅇ문인협회에서 시낭송 버스킹 행사가 있었다. 화성행궁 인근에 있는 교회와 협업하여 시민들에게 문학적 체험 기회를 만들어주는 행사이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을 먹고 가자는 것을 마다하고 황급히 돌아왔다.  아무 말 없이 나와서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기다릴 사람 때문이다. 들어가니  얼어붙은 눈길을 보낸다.

 “저녁 안 먹었지요? ”

 “저녁이고 뭐고 이리 와 봐요, 나에게 잠깐 다녀올 것처럼 말했잖아요.”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면 허술한 나의 대답은 치밀한 그의 논리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저녁 준비를 하여 8시가 넘어 식사를 마쳤다. 하루 3끼 식사는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돌아오는 바람개비 같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이광수의 ‘사랑’을 읽으며  지순한 사랑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순옥의 마음이 감정 이입이 되어 안빈이라는 의사를 같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너질 줄 모르는 사랑의 힘으로 자기 삶을 개척 해가는 순옥을 닮고 싶었다.

 남녀공학인 대학에 입학을 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남자들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같은 반 남학생들 하고도 말을 섞지 않고 봄, 여름이 지나갔다. 가을 무렵 남학생들은 운동장에서 교련 훈련을 받고 여학생들은 스탠드에 앉아서 구경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선배 중의 한 사람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누가 볼까 봐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려도 어느 틈에 또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혼자 얼굴을 붉혔다. 왠지 그 사람이 이광수의 사랑에 나오는 안빈 같다는 생각이 스치고 내가 순옥이 된 것 같았다. 그의 이름에도 ‘빈’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서일까?


 며칠 후 그 선배가 산악회 친구들이 우이동에서 산행을 하는데 가지 않겠느냐고 말을 걸었다.  그 이후부터 산악회장인 그를 따라 록클라이밍까지 하면서 우이동과 백운대를 드나들었다.  단 한순간의 이끌림으로 인연이 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몇 억겁의 인연이 쌓여 이 사람을 만났던 것일까? 이광수의 사랑을 읽은 때문이었을까?

 그의 군대 생활 28개월 수발을 했다. 제대 후 임용 고시 준비를 시키고, 양복 사서 입히고 출근시키고, 나와 결혼시키고, 끝없는 과정을 넘었다. 마치 순옥이 된 것처럼 어려움의 고비를 넘겼다.     

 그는 술을 좋아했다. 술에 스며든 그의 매일을 붙잡고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이것이 나의 업보라고 생각했던 날들이었다. 30여 년 그가 술과 함께 탱고를 추고, 나는 밤잠을 설치며 두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 생활을 했다. 어느 날 나는 고열과 함께 쓰러졌다. 이후 두 달 여를 병원에 입원하여 생사를 오갔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달려와 병간호를 하던 그도 과로로 쓰러지는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함께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어려움을 겪으며 우리의 관계는 단단해졌다.  그러나 퇴직 후 서로 만을 바라보게 되니 이번에는 답답해지는 관계가 되었다.

 아침이 되어도 냉랭하던 차에 그가 말을 꺼낸다.

 “요리 학원에 좀 다니지”

 요리 학원을 다녀서 빠른 시간에 요리도 하고 맛도 챙기라는 이야기다.

 “요즘엔 남자가 요리학원 다닌다던데요”

 맛있는 밥에서 사랑이 싹튼다는 그의 논리에 동감을 해주면서 내 논리를 관철시킬 기회를  찾는다.

 “나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구속받지 않고 내 삶을 살아갈 나이가 되었잖아요. 이제까지 이만큼 노력했으면 대우받을 자격도 있다고요.” 나는 항변하였다. 

 우리는 팔순이 다되도록 솥뚜껑 운전을 가지고 아직도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