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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광효 Aug 29. 2024

80. 名品 해운대 신시가지(그린시티)가 무너진다.

해운대 주간일기 80. 名品 해운대 신시가지(그린시티)의 도시환경이 무너지고 있다.     


90년대 초, 정부가 대도시의 주택난을 해소한다는 목표로 주택 200만 호를 건립,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부산시에서도 해운대 신시가지를 비롯해 영도 동삼지구, 사상 모라지구, 북구 화명지구 등에 주택 40만 호 건립을 추진하였다. 그중에서도 해운대 신시가지는 당시에 도시설계를 수립한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들의 탁월한 생각과 의지가 잘 반영되어 대한민국의 대표적 명품 주거단지가 되었다.     


신시가지는 지역의 둥근 모양을 잘 살려 도시를 만들었다.

지역의 바깥에 주거지를 배치하면서 안쪽으로 상가, 병원 등 지원시설을 두었다. 주거지 중간중간에 쌈지공원을 배치, 주민들의 쉼터로 했고, 적정한 거리에 초, 중, 고 학교를 배치하면서 건널목을 최소화함으로써 학생들의 등하교 안전을 배려했다. 주민들의 산책과 인근 장산으로의 접근이 쉽게 내부 및 외부 산책로를 원형으로 두어 보행자를 편안하게 했다. 도로도 차량의 통행보다 보행자를 위한 보도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였고, 가로수도 잘 가꾸어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낙엽의 운치를 즐길 수 있다.      


신시가지는 건축물 높이에도 일관성을 두었다.

아파트의 높이와 근린 상업시설의 높이를 조화롭게 설정했다. 대체로 25층 규모 이하의 아파트와 주민의 편의 시설이 들어서는 근린상업지역은 48m 높이 제한을 두어 전체적으로 일관성 있는 스카이라인을 만들었다. 상가 건물이 아파트 건물을 방해하지 않고 이용자에게 편리함을 준다. 그래서 그린시티에 들어오면 건물의 거슬림이 없고 주거지의 편안함이 있다.     


또 신시가지를 통과하는 차량을 외곽순환도로로 분산시켜 지역 내 차량 통행을 최소화했다. 도시철도 2호선과 동해선 전철이 있어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좋고, 단지 내는 풍부한 보행 공간이 있어 주민들은 걸어 다니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최근에 이런 신시가지(그린시티)가 개발업자의 ‘갑툭튀’ 건물로 도시환경이 붕괴되고 있다.     


지금 그린시티 내 지역의 건설업체가 소유한 연립주택 부지(2만 5,874㎡)를 아파트 용지로의 용도변경에 주민 동의를 구하는 서명부가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다. 그 건설업체가 아파트 부지로 용도변경을 하여 29층 규모로 580세대의 아파트를 건설할 모양이다. 연립주택 용지에 불쑥 튀어 오르는 ‘갑툭튀’ 건물이 생긴다. 그러면 그린시티 내 인근의 단독주택 및 연립주택 용지도 덩달아 용도변경을 요구할 것이다. 도시의 모양이 무너진다. 지역 전체가 아파트, 오피스텔로 빼곡히 채워져 숨 쉴 공간이 없어진다. 그린시티 내에 단독주택 및 연립주택 용지를 둔 옛날 설계자의 꿈이 훼손된다.     


올해 상반기에는 좌동순환로 가로변에 72m가 넘는 높이의 오피스텔을 건립하겠다고 주민여론을 수렴했다. 이곳에는 가로변 48m의 높이 제한이 있는 곳이라 4층 규모의 골프연습장 등 상가가 들어서 있다. 그런데 주민에게 별 필요도 없는 공개공지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건축 인센티브를 받아 지상 25층 규모의 ‘나 홀로 솟아오르는’ 이상한 ‘갑툭튀’ 건축물을 지을 모양이다. 구청은 법대로 한다면서 그린시티의 도시설계 취지는 나 몰라라 한다. 아마 그린시티 내 도로변 상가건물 중에서 최초로 제일 높은 건물이 될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면 개발업자의 욕망이 발호하여 그린시티의 스카이라인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도시철도 장산역 인근에 있던 지상 12층 규모의 NC백화점이 영업난으로 폐업한다. 그 건물이 헐리고 40층 규모의 오피스텔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또 하나의 ‘갑툭튀’ 건물이 될 것이다.     


전임 해운대구청장이 해운대 신시가지의 이름을 ‘해운대그린시티’로 변경하고, 시대와 환경변화를 반영하는 ‘그린시티 재정비 구상 용역’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이 용역이 주민에게 공개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그 결과를 알 수가 없다. 아마 주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어려워 캐비닛 안에 처박아 두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아는 사람만 그 구상을 근거로 용도변경을 추진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국제신문 8.25자 보도에 의하면, 구청이 연립주택 용지의 용도변경의 근거로 이 용역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의 그린시티 도시설계 및 토지이용계획을 변경할 필요는 충분히 있다. 정부도 ‘노후 계획도시 정비특별법’을 만들어 새롭게 탈바꿈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개발업자들이 선점해 마구잡이로 개발해 버리면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지금 진행되는 ‘갑툭튀’ 건물의 사업진행을 멈춰야 한다. 우리는 90년대 초 도시설계자들보다 나은 그린시티를 만들 책임이 있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명품 해운대그린시티가 훼손되지 않도록 특별법에 의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기본계획 수립 후에 개발을 진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부산시, 해운대구, 지역주민이 머리를 맞대어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주거단지를 만드는 혁신을 기대한다. 부산시가 말하는 “혁신의 파동”이 이곳 그린시티에도 반영되기를 희망한다.     


이곳 그린시티에 이사 온 지도 5년이 다 되어간다. 정이 새록새록 싹트고 쌓인다.

한마디로 멋진, 다시 살고 싶은 주거지이다. (2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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