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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Oct 31. 2023

비비디 바비디 부!

<킴스 비디오> (Kim’s Video, 2023)


좋아하는 대상-좋아하는 상대가 같은 건 문제가 되겠지만-이 같은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묶여들기 쉬운 게 없다. 처음 만난 사람 둘이서 순전히 대화를 메꿔야 한다면… 그것만큼이나 지옥같은 건 없을 거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둘이 만나면 대화에 백 명의 사람이 끼어드는 셈이 된다. 함께 (일방향적으로) 아는 배우니 감독이니 영화이니 얘기를 이어가다보면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에서 시작한 얘기가 어느 영화제에서 일어난 지극히 사적인 해프닝으로까지 뻗어가 있기도 한다. 사람을 묶는 아주아주 원초적이고 단순한 것. 함께 좋아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이 함께인 사람들이 죄다 모이는 공간이 있었다고 하면 어떨까. 세월 위로 발자국이 쌓이는 할머니댁의 현관처럼 프레임 위로 비디오가 쌓이는 곳이 뉴욕에 있었다. 타란티노와 드니로가 테이프를 구하러 들어가고 코엔 형제는 수북히 연체료를 쌓아두던 곳, 킴스 비디오! 영화는 현실의 압축이라면, 비디오는 그 영화를 또 압축하고 있기 때문에 압축의 압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걸 수만 점 보유하고 있던 킴스 비디오는 터지기 직전의 별처럼 응축되고 응축된 시간의 집합소인 셈이다. 



올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킴스 비디오>가 상영된 후 열광적인 호응이 따랐다. 영화제를 위한 영화… 인가 싶었으나 아카이빙 다큐에서 시작해 느와르, 갱스터로 끝난다는 평가는 어떤 장르인지부터를 가늠하기 어렵게 했다. 이후 컬트적 인기에 힘입어 국내 개봉까지 맞이하게 됐다.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갔던 김용만 씨는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비디오 대여점 하나를 차렸다. 어렸을 때 프레임과 필름의 세계에 빠져들어 여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이렇게 가게까지 차리게 된 것이다. 모두가 비디오를 빌려 영화를 보던 시대. 대학 졸업영화부터 작은 영화제 출품작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영화를 모아두는 킴스 비디오는 영화광들의 금광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쇠퇴하고 사라지기 마련. 더 이상 사람들이 비디오를 찾지 않자 가게의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DVD를 내놓지 않는 대형 영화사의 작품을 복사해 내놓다가 FBI의 침입을 받기도 했다. 산전수전 다 겪던 김용만 씨는 세상 어느 곳보다도 많은 영화들을 이탈리아 소도시 살레미에 맡기기로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갑자기 연루되기 시작한 마피아와 이탈라아 정치계의 거물들과의 한바탕. 현실은 영화보다 한 발짝 앞선다고, 즐겨 찾던 비디오 가게의 흔적을 찾아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어느새 갱스터와 연루돼 느와르물로 바뀌어 있다.



생각하면 이루어진다. 바라면 펼쳐진다. 허구와 실재를 오가는 영화는 가장 진실같은 거짓이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영화답게, 다큐멘터리의 끝은 허구를 가장한 소동극으로 끝맺는다. 바르다, 고다르, 히치콕 같은 영화의 고전 망령들을 불러들여 펼치는 비디오 환수 대작전은 황당하면서도 -김용만 씨가 말했듯- 옳은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관리 부실로 방치되다 시피 놓여 있는 비디오를 보던 김용만 씨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아마 우리 모두 함께 가슴 아파했을 법한 장면. 비디오는 그 한 편이 아니라 시간을 훌쩍 넘어 담아낸 그 허구의 세계 전체이기 때문에, 틀기만 하면 살아숨쉴 5만 5천여개의 비디오를 보면서 우리는 마음이 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과정을 모두 담아낸 킴스 비디오를 보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세계가 넓어졌음을 느끼고 또 웃음을 짓게 된다.



이미지 출처 I IMDB, 다음영화

원글 주소 I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9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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