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서로를 돕는 것을 가르치는 법
“엄마, 내가 만든 계란 프라이 맛있어?”
둘째 아이가 으쓱거리며 묻는다.
“응, 정말 맛있어. 이제 우리아들 다 컸네. 엄마 요리도 해주고!”
사실 정확한 상황을 말해보자면 아이가 식용유를 부었고 내가 계란을 깼다.
아이가 소금을 솔솔 뿌렸고 내가 뒤집개로 뒤집어 주었다.
계란 프라이가 완성되자 아이는 스스로 골라 꺼내 온 접시에 직접 계란 프라이를 담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생각난 듯 냉장고로 달려갔다.
꺼낸 케첩으로 스마일까지 만든 아이는 흐뭇하게 나를 바라본다.
자, 평소 아이에게 하루 몇 차례나 집안일을 시키는지 세어보자.
1가지? 아니면 2가지는 되는가?
설거지, 요리, 세탁, 분리수거, 정리정돈 등 알다시피 집안일은 무궁무진 끝이 없다.
혹시 집안일 세상 밖에서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학교와 학원까지 공부에 지친 아이를 위해 집안일은 부모 몫인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가?
너무 귀한 내 아이, 집안일을 시킬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여기나?
잠시 생각해보자.
아이가 정말로 공부만 잘하고 가족의 일에는 나 몰라라 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지.
에이 설마 그까짓 집안일 좀 안 시킨다고 그러겠어?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집안일’을 단순히 ‘집안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집안일은 가정 내에서 매일 반복되는 자질구레한 허드렛일이다.
가족구성원 중 엄마나 아빠가 의무적으로 그 일을 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가족이 서로를 돕는 법을 가르치는 것.
나는 이것이 아이에게 설거지/집안일을 시키는 ‘진짜’ 이유라고 생각한다.
주말 친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고 아이가 돌아온 아이는 몹시 피곤해 했다.
알고 보니 새벽 늦은 시간까지 안자고 수다를 떨었다는 것이다.
“너는 놀면서 늦게 자는데도 많이 피곤했지.”
“그런데 말이야. 엄마는 야간 근무할 때 무거운 38권총과 수갑, 무전기, 삼단봉을 차고 일한단다.”
“춥고 더운 밤에 운전하고 뛰어다닌다는 걸 항상 잊지 말아줘.”
밤을 지새우며 일하는 엄마의 힘듦을 아이는 알까 싶었다.
아이가 비슷한 상황이 경험했을 때를 놓치지 않고 일부러 아이에게 나의 이야기해 준 것이다.
자식이 부모의 수고를 알게 하고 감사히 여기게 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혹시 아이가 돈 걱정할까봐. 속상해 할까봐. 쉬쉬하고 알려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절대 부모의 수고를 파악할 수 없다.
부모의 헌신에 대한 대가를 강요하거나 생색내라는 것이 아니다.
요즘 부모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과도하게 퍼붓고 아이는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할뿐 정작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이상한 관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강조하겠지만 대가없이 받기만 하는 아이의 삶을 경계해야 한다.
사건현장에서 한 없이 퍼주기만 한 부모의 결말은 같은 부모로써 너무나 안타까운 비극 그 자체였다.
비단 부모의 힘듦을 공유하기 위해서만 집안일을 시키는 것은 아니다.
집안일을 하는 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들을 아이가 익히게 만든다.
빨래를 개며 끝없는 지루함을 끈기 있게 견뎌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의 역한 냄새를 참아내고 버려야 한다.
설거지를 할 때는 그릇들의 크기와 종류에 맞게 우선순위를 나눠야 한다. 미끄러운 거품 속에서 깨지지 않게 살살 닦아야 한다. 식기 건조대에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 떨어뜨리지 않게도 해야 한다.
아이에게 집안일을 시키면 불안하다는 부모들이 많다.
아이 입장에서는 이러한 집안일들이 처음에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그렇지만 집안일을 반복하며 해낼수록 다양한 위기대처 기술을 쌓고 센스를 키운다.
센스는 흔히들 말하는 눈치가 빠르다는 뜻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이에 알맞은 행동을 할 수 있다.
센스지수가 높아질수록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도 생긴다.
이렇게 가정에서 쌓아 놓은 ‘집안일 센스’ 는 훗날 직장 등 다양한 사회집단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수월하게 얻게 해 주는 능력이 된다.
이솝우화 중 <어미 원숭이의 사랑> 이야기를 들여 다 보자.
숲속에 어미 원숭이와 두 마리의 새끼 원숭이가 살고 있었다.
어미 원숭이는 유독 한 마리의 새끼 원숭이만 품에 안고 다니며 예뻐했고 다른 한 마리는 내 팽겨뒀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원숭이는 홀로 오르내리며 먹이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원숭이 무리가 쳐들어왔다.
어미 원숭이는 예뻐하는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품에 껴안고 정신없이 싸웠다.
다행히 쳐들어온 원숭이 무리들은 되돌아갔다.
한숨 돌린 어미 원숭이가 품속을 보니 새끼 원숭이는 이미 질식해 죽어 있었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새끼 원숭이는 혼자 이리저리 나무 사이로 도망치다 살아남아 있었다.
귀엽고 예쁘다는 이유로 아이를 사랑 ‘만’ 하는 것은 아이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아이가 할 일을 시키지 않고 대신 처리해 주는 부모. 걸으면 힘들까 안아주고, 늦으면 곤란할까 태워주는 일. 아이를 위해 자처했던 소소한 것들이 오히려 아이의 숨통을 조이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자립은 아이의 삶에 중요한 요소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선택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상황 대응력도 만들어 진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얻게 되는 자신감도 추가된다.
아이에게 주도권을 쥐어주고 얻어낸 자립은 세상을 살며 크고 작은 힘듦 앞에 꺼내드는 비장의 무기가 된다.
야생초와 온실 속 화초는 비닐하우스만 걷어내면 다를 바 없다.
비닐을 걷어내면 여린 화초라도 결국에는 질겨지고 비와 바람에도 끄떡없이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