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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밀 Feb 27. 2024

임신 7주 차의 일기

왜 아무도 입덧이 이렇게나 힘든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지?







없는 입덧의 연속. 먹을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아는 음식들을 하나씩 떠올려봐야 하는데, 음식의 이름만 생각해도 자연스레 그 음식의 이미지와 맛과 냄새와 재료들이 떠올라 바로 울렁 버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이 눌린다. 결국 음식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그나마 목구멍 뒤로 넘길 수 있었던 것만 소극적으로 취하다 보니 꾸준히 먹는 건 결국 또 과일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참크래커나 아이비 같은, 퍼석퍼석하고 짭짤한 비스킷 정도가 고작인 요즘.


딸기, 샤인 머스캣, 체리, 사과, 레드향, 그리고 오렌지 주스. 이 과일들에 영양소가 얼마나 들어 있을까. 다들 지금 시기에는 아기에게 가는 걸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산모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기를 생각하지 않고 먹고 자고 생활하기엔 이미 내가 충분히 엄마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한번 구토를 하고 나니 습관처럼 올라와서 매 순간마다 열심히 참아보려 하지만 참는 것 자체가 잘 안 된다. 먹은 게 없는 상태에서 토하게 되면 더 속이 비워지고, 빈속이 되면 더 쉽게 울렁거리는데 뭘 먹을 수가 없다. 완전히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악순환에 빠져있는 나.



지나치게 울렁거리는 게 영양제 때문인가 싶어서 엽산, 비타민D, 유산균, 오메가 3 중 비타민D와 오메가 3을 잠시 빼기로 했다. 비타민D의 경우 1000IU 정도를 섭취하면 된다는데 병원에서 준 건 2000IU였다. 그래서 더 울렁거렸나. 오메가 3은 기름이니까 뺐지만, 엽산은 필수 영양제고 남들은 임신 준비할 때 먹는다는 걸 나는 임신하고 난 뒤에야 먹기 시작한 거라 뺄 수 없어 그대로 가져가게 되었다. 유산균은 유자 맛 파우더라 먹을 때 큰 거부감이 없긴 한데, 계속 울렁거리면 이것도 빼야지. 아직까진 엽산과 유산균만 먹는 게 그나마 조금 괜찮은 것 같다. 그치만 영양제를 줄여도 울렁거림과 구토가 계속되는 걸 보면 역시 그냥 입덧인 것 같다.







잠도 통 잘 수가 없다. 울렁거림이 심해 눈을 뜨면 다시 잠들기까지 한참 또 시간이 걸리고, 얕은 잠에라도 들 참에 남편이 코라도 골면 바로 또 깨버리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 좀 제발 푹 자고 싶다고 울었더니 남편이 자기 때문이냐며 미안해하다가, 다른 방에 가서 자겠다고 하기에 그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귀마개를 끼고 자는 한이 있더라도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침대 사이즈도 큰 편이라 남편이 없으면 너무 휑해서 오히려 잠이 잘 안 온다. 이건 내가 낮잠을 오래 못 자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울렁거림과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번갈아 깨우는 바람에 역시나 잠을 설친 날. 출근길에 울컥해서 결혼 전에 여행 갔을 때는 코를 한 번도 안 골아서 깜빡 속았다고 억울해했더니 우물우물,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한다. 그때는 안 피곤했나, 뭐. 아아니, 회사가 피곤하니까 그렇지. 그니까 그때는 회사 안 다녔냐고요. 의미 없는 삐죽거림을 이어가다 보니 우리 둘의 대화의 양상이 점점 유치해지는 게 우스워서 그냥 웃어버렸다.









입덧이 가져온 또 하나의 악영향.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니 점점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미칠 것 같은 건 단축근무로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앓는 소리 내며 누워있으면 꼭 윗집 어린애가 미친 듯이 악을 쓰며 운다는 거였다. 내가 아기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육아가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안 가는 것도 아니라 예전엔 그저 아이고, 저 집 엄마도 고생이겠네, 했는데 몸과 마음이 약해진 지금은 진짜 울컥울컥 화가 날 지경이다. 쟤는 대체 왜 하루도 안 빼놓고 저렇게 울어대는 거야? 부모가 우는 애를 안 달래고 그냥 둬서 저렇게 계속 우는 거 아냐? 당장이라도 쫓아올라가 애 우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궂은 마음이 되어 못된 말만 쏟아낸다. 어느 부모든 자기 애가 우는데 손 놓고 구경만 할 리 없고, 또 나라고 해도 나중에 차차가 뒤집어지게 울 때 방법이 있겠냐만—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는 방패를 뒤집어쓴 비겁한 나에게는 일단 덮어놓고 비난하는 게 마냥 쉽기만 하다.


나보다 더 아이들을 좋아하고, 이 아파트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이웃 가족들을 많이 봐온 남편은 이런 내 비난에 절대 동참하지 않고 그저 난감한 듯 자리를 피해버린다. 그럼 허공에 둥둥 뜬 무분별한 비난과 덩그러니 남은 나는 이내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깨닫고, 그래도 내 딴에는 아직 억울함이 남았다고 꿍얼대다 밀려오는 자기혐오에 결국 입을 닫게 되는 것이다. 아니, 그니까 나는 애가 맨날 너무 울어서 미치겠다구우… 그만 좀 울면 좋겠다구우…….






결국 7주 차 태아 검진으로 아기 심장소리를 들으러 가는 날, 입덧 약을 처방받기로 했다. 먹어봤자 효과도 일시적인데 낮엔 내내 무기력 및 졸음과 싸워야 한다고 해서 굳이 먹고 싶지 않았지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고작 몇 주 만에 삶의 질과 인성이 거의 곤두박질쳤다고 해도 좋을 만큼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황이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걸 안 먹으면 죽겠는데 졸린 게 대수인가.





입덧 약은 비급여. 약 값도 비싼데 태아 보험으로 처리해 주면 안 되는 걸까.


아무래도 아기가 생기면서부터 낳게 된 이후까지도 전보다 병원 갈 일이 많아질 것 같아, 보험 설계사이신 친구 어머님께 연락드려 현대해상의 태아보험도 일찍이 가입해 두었다. 신기한 건 이후 남자 아기와 여자 아기의 보험료가 다르게 책정되어 있다는 점으로, 남자 아기가 좀 더 높았다. 아무래도 더 다칠 일이 많아서 그런가.



운정와이즈병원에도 현대해상 태아보험 가입 관련해 안내해 주시는 분이 계시긴 했는데, 보장 범위를 꼼꼼히 비교해 따져 보니 친구 어머님이 설계해 주신 쪽이 좀 더 세부적인 항목으로 잘 나눠져 있어 좋았다. 병원에서 보험에 가입하면 이런저런 선물이 사은품으로 나온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그런 건 나중에 다 내가 하나하나 따져보고 취향대로 사면 될 일이라 딱히 혹하지도 않았고.






아무튼 회사에 태아 검진으로 기타 휴가를 쓰고 (한 달에 한 번, 진단서를 첨부해서 결재 올리면 내 연차가 안 까인다!)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접수한 후 혈압과 체중을 쟀더니 처음 임신을 확인했던 5주 차 때보다 3kg이나 빠져 있었다. 겨우 2주 지났을 뿐인데 이게 무슨 일이람. 하긴 먹은 것도 없이 토하기만 했으니 살이 어떻게 찌겠어.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입덧은 없냐고 하셔서 무척 심한 편이라고 말씀드리자, 살이 많이 빠졌다고 걱정하시며 입덧 약을 처방하겠다고 하셨다. 입덧 증상을 좀 완화시켜 주는 수액도 맞고 가라고 하셔서 어차피 반차인 김에 그러기로 했는데, 생각해 보니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거잖아? 으, 무서워라.



하의를 검진용 치마로 갈아입고 나와 의자에 눕듯이 앉았다. 잠시 뒤 화면에 비치는 차차. 의사 선생님이 아기집이 엄청 커졌다고 놀라시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올려다보는데 진짜 확실히 까만 원 부분이 늘어나긴 했다. 아기집이 작으면 문제지, 크면 좋은 거라고 하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2주 만에 나는 3kg가 빠지고, 차차는 올챙이가 되었다. 이 작은 올챙이의 심장이 누구보다 크고 빠르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규칙적으로 잘 뛰고 있어서 다리를 활짝 벌리고 의자에 누워있는 우스운 모양새에도 금방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고여왔다.



아기 심장 소리가 잘 들리는 걸 확인한 뒤 산모수첩이라는 것도 새로 받았다. 핸드폰에 '마미톡'이라는 앱을 설치하면 초음파 영상을 따로 녹화해 저장하고 볼 수 있다고 하셔서 앱도 냉큼 설치 완료. 7주 2일 차, 차차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걸 보니 지난 2주간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그치만 오늘부터는 입덧 약의 도움을 받아봐야지. 집에 와서 얼른 한 알을 꺼내 먹었다. 밤에 두 알, 그리고 다음날 낮에 또 울렁거리면 한 알. 하루 최대 4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약을 나는 3알부터 시작하기로 했으니 입덧이 심한 편인 건 맞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보낸 2주도 정말 매일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안 지나간다고 생각하며 눈물과 토로 보냈는데, 이 생활을 한두 달 더 버텨야 한다니 눈앞이 좀 깜깜하긴 하다. 하지만 역시나 또 외쳐본다. 그래도 어쩌겠어!








임신 상태를 씨앗을 품은 땅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내 몸을 빵이 구워지는 오븐에 비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시피를 정확히 맞추기만 한다면 하얗고 폭신폭신한 빵이 완성될 텐데 내 경우의 레시피는 의사 선생님이 주는 처방과 임신 주수에 따른 지침 정도이려나. 반짝반짝한 새 오븐에 잘 준비된 반죽을 넣었으니 좋은 빵이 나올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그렇게 믿고 있고, 그 믿음은 나에게 적잖은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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