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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대로 Jun 05. 2022

번개 맞고 죽어도 좋은 날

박새, 곤줄박이, 까치

오늘 집에 가다 번개 맞고 죽어도 최소한 하고 싶은 거 못해보고 죽었다는 후회는 안 하겠다.


첫 출근 날 들었던 감상이다. 


영국에 가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될 때까지 약 반년 간, 나는 서울대의 행동생태 진화랩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P 교수님이 이끄는 랩으로 곤충과 새를 연구하는 곳이었다.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인턴 상시 모집이라는 글이 절대 좋은 징조로 보이지 않았다. 말해봐야 입만 아플 정도로 마이너한 분야인데 제대로 돌아가는 랩이 맞긴 할까 싶었다. 이와 비슷한 연구를 하는 랩이 비슷한 수준의 대학에는 없었다. 그냥 서울대가 구색 맞추려고 어디서 데려온 정신 못 차리는 외국인 교수 혼자서 산속 쏘다니는 랩은 아닐까 싶었다. 다른 대학들이 바보가 아닌데 이유가 있어서 안 하는 게 아닐까?


낼모레 서른에 다 같이 관악산에서 까치나 들여다보고 있으니 우리 모두 밥벌이하기는 글렀다 (웃음).


바보는 나였다. 사람은 충분하다 못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비슷한 일을 하는 곳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전국에서 동물 좋아하는 사람은 다 모인 것 같았다. 그토록 오래도록 바라고 바랐던,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생물학이었다. 정말 내가 보기에도 우리를 얻다 갖다 쓰냐 싶었지만, 그딴 건 이제 아무 상관없었다. 정말로 그날, 나는 번개에 맞아 죽어도 좋을 정도로 기뻤다.

곤줄박이일까 박새일까


박새, 곤줄박이, 까치. 랩에서는 세 가지 새를 연구했다. 특히 번식과 새끼의 생육이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다. 나의 주 임무는 관악산 곳곳에 흩어져 있는 백 단위의 인공 둥지 상자들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박새나 곤줄박이가 둥지를 틀었는지, 틀었다면 알이나 새끼의 상태는 어떤가, 둥지 주변에 떨어져 있는 변의 상태는 어떤가. 일주일에 못해도 두 번씩 꼬박꼬박 산을 탔다. 정말 땀나고, 신나고, 힘들고, 많은 것을 배운 여름이었다. 


가끔씩 까치 팀을 도울 때는 조금 덜 힘들었다. 까치들은 앞선 두 종과 달리 캠퍼스 내의 나무나 건물에도 둥지를 지었다. 커다란 크레인을 타고 둥지까지 올라가 둥지를 확인하고, 알이나 새끼를 데리고 내려와 이곳저곳을 측정하고 돌려보내는 일을 도왔다. 까치들은 영리하고, 거침없었다. 박새나 곤줄박이는 우리가 한 번에 알이나 새끼를 전부 둥지에서 꺼내 측정을 할 경우 새끼들이 모두 잡아 먹혔다고 생각하고 둥지를 버릴 수가 있었다. 반면에 까치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우리나 새끼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끈질김도 겸비하고 있었다. 그 자식에 그 부모 아니랄까 봐 새끼들은 쉴 새 없이 우리의 손과 옷에 응가 빔을 발사하고는 했다. 

새끼 까치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기록한 종만 다음과 같다. 박새, 곤줄박이, 까치, 동고비, 청딱따구리,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물까치, 직박구리, 맷비둘기, 꿩, 흰눈썹황금새, 딱새, 노랑할미새, 까마귀, 붉은머리오목눈이, 각종 오리, 물총새, 노랑턱맷새, 어치, 왜가리. 전부 참새라고 생각했던 작은 녀석들이 알고 보면 제각기 다른 종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반면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소리나 깃털만으로 종을 알아맞출 수 있었다). 관악산은 사실상 도시의 일부인데도 참으로 다양한 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렇게 새가 많은데 왜 연구하는 종은 한정되어 있을까. 사람 손이 닿는 곳에 둥지를 짓는 종이 저 세 종뿐이기 때문이다. 까마귀나 딱따구리 같이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 버젓이 숲을 날아다니는데 접근을 할 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고 아쉬웠다. 외국 연구를 보면 적은 수라도 잡아서 기르며 행동을 관찰하기도 하는데 우리도 그렇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떠날 때 즈음 이 녀석들도 둥지를 떠났다

새에 대해서 참 많은 것을 배웠고 탐조의 기쁨에 눈을 뜨게 되었지만, 이곳에 있으며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따로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결국 빙빙 돌고 돌아 그 일을 하게 되어있으며 그것을 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다. 왜 지레 겁을 먹고 이곳을 이제야 찾아왔을까. 나를 말린 주변 사람들이나 겁을 준 교수가 아니라 가장 원망스러웠던 것은 그에 수긍하고 포기했던 나였다. 한심한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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