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진짜일까
학부 졸업을 앞두고 있을 무렵, 분자유전학을 공부하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전자, 단백질, 세포, 장기 순으로 올라갈수록 구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하고 정교해지는데 아무리 억겁의 시간이 걸렸다지만 이게 알아서 만들어졌다는 게 말이 되나?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내 믿음은 확고해져 갔다. 한창 이 정도 공부했으면 당당히 한 명의 전공자라고 어디 가서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건방진 착각을 하던 때였다. 나는 당황했다. 나는 마찬가지로 졸업반이던 형들을 붙잡고 의견을 물었다.
"원래 4학년쯤 되면 다들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해. 나도 그랬어."
형들은 웃으며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점은 안도감과 동질감을 주었지만 납득을 시켜주지는 못 했다. 나는 오래도록 불가지론자였다. 신이 나 사후세계 같은 초자연적인 무엇인가를 완전히 부정할 생각은 없었지만 무려 생물학도라는 놈이 이런 식으로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진화론과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을 읽으며 나의 고민이 생각보다 오래되었음을 깨달았다. '눈먼 시계공'은 '시계와 같이 복잡하고 정교한 물건 (생물에 해당)을 눈이 먼 시계공은 만들 수 없다. 걸맞은 능력과 의지를 가진 자 (신에 해당)이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창조한 것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비꼬기 위해 리처드 도킨스가 동일 제목을 달고 (글과 책 모두 제목이 눈먼 시계공이다) 출간한 명저이다.
그가 하는 말의 요지는 결국 매우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진화가 일어난다면 시계가 아니라 점보제트기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이야기꾼이었고 과학자였다. 그의 책들에는 왜 성별이 존재하는가, 쥐에서 박쥐로 진화했다면 왜 반쪽짜리 날개가 달린 생물은 발견되지 않는가 등등 흥미로운 진화론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의 책들을 읽고 난 뒤에도 나는 납득을 할 수 없었다. 그의 글은 너무나 그럴듯했고 너무나 설득력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가짜처럼 느껴졌다. 결국 근거가 없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글은 어디까지나 뇌피셜이었다.
결국 나는 진화론에 대해 굉장히 흥미롭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분야지만 리처드 도킨스 수준으로 세계 최고가 되지 않는 이상 이 일을 업으로 삼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눈앞에서 포켓몬처럼 동물들을 진화시키지 않는 이상 누가 내 말을 믿어주겠는가. 나부터 긴가민가한데.
석사 논문을 고를 때 우리는 6, 70개의 프로젝트 목록 중에서 3 지망까지 선택할 수 있었다. 1, 2 지망은 보전생물학 프로젝트를, 3 지망은 빈칸으로 제출할 수는 없어서 적당히 아무거나 적어 제출했다. 나는 3 지망을 배정받았다. 인종차별이다.
내 프로젝트의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육지에 사는 새의 경우 철새에 비해 텃새의 뇌가 더 커지도록 진화했다. 텃새들은 한 곳에 머물며 계절 변화에 다 대응해야 하지만 철새들은 상황이 불리해지면 도망치면 그만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큰 뇌를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다새도 이러할까?' 즉, 진화생물학 관련 논문이었다.
그리고 이 논문은 진화생물학에 대한 나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다. 책에서 찾지 못했던 진화의 증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