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기에 더 깊이 보고, 더 자유롭게 멈출 수 있었다.
첫 발걸음.
팬데믹 이후 처음 내딛는 여행길이었다.
두려움 반, 설렘 반. "더 늦기 전에 한 번쯤 시도해 보자"는 마음이 나를 떠밀었다.
선택한 곳은 이미 몇 번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일본의 다카마쓰와 나오시마.
낯설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예술섬.
10월 간절기였으므로 짐이 됐지만 전기매트와 긴 멀티탭과 돼지코 그리고 비상약을 장착하고,
설렘과 긴장 속에 발길을 뗐다.
공항은 많이 변해 있었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골냄새, 사람냄새가 좋았는데...'
아쉬움이 잠깐 스쳤다. 짐을 맡기고 서둘러 붓쇼잔 온천으로 향했다.
그곳의 기차와 좁은 길은 변화의 광풍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온천장의 입구는 현대식으로 바뀌어지고 타월 값을 받고 있었지만,
몸을 감싸주는 그들의 따뜻함은 예전 그대로였다.
노천탕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동안 멈춰 있던 시간이 한순간 흘러가는 듯했다.
다음날 나는 나오시마로 향했다.
태풍에 떠내려갔던 쿠사마 야요이의 노랑호박은 우뚝 자리 잡은 채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16년 전, 무리해서 찾아왔던 기억.
4년 전, 옆지기와 함께 걸었던 기억들이 뒤섞여,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가족들의 그리고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동행해 주고 있었다.
¥100 버스도 마다하고 상념에 젖어 걸었다.
최국강도 이우환도 보이지만 지나쳤다.
급히 보고 싶지 않아서...
베네세 미술관에 들어섰다.
작품들과 동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많이 아쉬웠다.
박서보 선생님의 단색화 앞에 멈추었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선생님은 며칠 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나 “묘법”의 선들은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세월을 꿰뚫는 꾸준함, 평생을 바쳐 한 길을 걸어온 노장의 힘이 화면에서 느껴졌다.
단색화가로 노익장을 발하시던 모습이 떠오르며 뜨거움이 울컥 올라온다.
말년에 빛을 발하셔서 유럽에선 언제나 초대작가 1순위를 구가하시는 영광 누리고 가셨으니 복인이시다.
다시 한번 선생님의 명복을 빌어드리고 발걸음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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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즘 측에서 이런 조문을 붙여놓았다.
"박서보 작가님은 지난 14일 사망하셨습니다.
향년 92세
진심으로 명복을 기원합니다."
거장의 죽음 앞에 예를 갖춘 뮤즘 관계자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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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쎄에는 투숙객에만 공개하는 존이 따로 있다.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나중에 다시 찾을 충분한 이유를 남겼다.
지중미술관은 여전히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건물 자체가 작품이므로 터치도 제약한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은 빛과 그림자를 조율하며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있었다.
예전에는 원형 의자가 중앙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사방으로 벤치가 놓여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게 바뀌어 있었다.
천창 너머로 비가 흩뿌려졌고, 그 빗줄기마저도 작품의 일부가 된 듯했다. 모네의 "수련" 앞에 섰을 때,
비와 그림과 내 마음이 겹쳐졌다.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서 펼쳐지는 광활한 바다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천재 안도 타다오의 계획적인 노림수 일게다.
운무 속에 숨바꼭질하는 삼각섬을 바라보며 한참을 머물렀다.
이 삼각섬의 이름은 "메기지마". 일명 도깨비섬으로 불리우는 일본 전래동화 "모모타로”의 도깨비 전설이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갑작스레 비가 거세게 쏟아져 잠시 당황했는데,
미술관 곳곳에 준비된 우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배려였지만, 그 친절은 깊이 남았다.
'이런 세심함을 우리도 배워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오는 길엔 모네의 정원을 벤치마킹한 수련 연못길이 있다.
모네는 유키요에를 좋아하고 일본의 도자기도 수집했지만, 모네 자신이 유키요예를 그리기도 했다.
그 인연이 이곳에 이어지고 있었다.
서서히 비가 멎어감에 쯔쯔지소까지 셔틀로 이동했다
베네세 셔틀버스는
쯔쯔지소에서 베네쎄까지 무료로 운행된다.
폭우가 잦아든 구름 속.
서쪽 하늘이 열리며 강렬한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버스는 각양각색의 집들이 들어서 있는 굽이굽이 이어진 좁은 골목길을 달리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동시에 물들고, 집들과 조형물, 나무들이 차례차례 노을빛에 잠식당하는 그 모습이
실시간으로 창밖에서 연출되고 있었다.
그 장엄한 광경 앞에 우리 모두는 압도당했다. 버스 안에선 모두가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나 역시 숨이 막힐 듯한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두 손을 모았다.
그 순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하신 분의 선물 같았다.
부두에 부려진 사람들은
또다시 하늘과 바다에, 그리고 부둣가의 조형물과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파노라마 속으로 빠졌다
마지막 배를 기다리는 기인 시간에 그렇게 감사하며 환호했다.
손이 곱아오는 속에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만 연발하고 있었다.
이 모습은 후에 "The Opera" 시리즈로 남는다.
이튿날
매번 대기하고 있던 나오시마 쾌속정이 full 이였다. 오늘이 토요일인 것을 그제야 인지한 것.
어찌어찌하다 마지막 한표 구해 겨우 탑승했다.
혼무라라는 말이 들려 탔는데... 미야무라항이 아닌 낯선 항에 내려졌다.
덕분에 이에 프로젝트 참여하게 된다.
대대로 전승되고 있는 염색장인의 집
그림들은 미네랄 안료로 그려져 있다.
밑바탕 기초는 돌가루로 만들어진 지금도 쓰이고 있는 석청인 듯.
은이 산화되어 갈색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검은색은 먹이 아니고 파란 물감을 한번 구워 검은색으로 썼다고 한다.
안료가 귀했던 시절의 귀한 그림들을 보게 됨에 감사했다.
Kagawa Shitsugei Gallery "irodori"
이곳 꼭 가보고 싶었는데 철저한 예약제로만 운영된다니
'다시 한번 더 찾을 핑곗거리가 하나 더.' 하며, 발길을 돌렸다
이곳은 명상체험이 많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의 명상!
그러나 두려움이 엄습. 제대로 빠져들기 어려웠다.
¥100 버스가 안 보여 구글맵 안내로 숲 속 길을 걸었다.
아름답고 호젓한.
버스 탔으면 볼 수 없었을... 호사를 누렸다.
어제 남겨두었던 우리의 최국경의 오묘한 돌 작업을 들여다 보고 이우환을 만났다.
이우환의 작업은 불과 4년 새에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돌과 미디어를 연결한... 작품 앞에선 오랫동안 머물며 되새겼다.
베네쎄 바다 숙소 데크에서 스케치를 마치고
바짝 얼은 몸으로 내려오는데, 긴급 투여됐다는 버스를 만났다.
이번에도 미야노우라항 소리만 듣고 마지막으로 올라탔다. 늘 콩나물시루였는데,
덕분에 여유롭게 앉을 수 있었다.
미야노우라항에 도착하니 다카마쓰행 페리가 바로 연결되어, 꺼진 폰 충전도 하지 못한 채 올라탔다.
작은 해프닝, 또 다른 행운이 점철된 하루였다.
늦은 밤 배편과 택시를 구하는 과정에서 헤매기도 했지만,
결국은 초짜 기사님 덕분에 따뜻한 웃음을 나누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불편은 오히려 여행의 기억을 더 진하게 만들었다.
혼자라서 누린 자유
3일 동안 하루 평균 1만 2천 보를 걸으며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충만했다.
리쓰린 공원의 오래된 소나무 숲길을 거닐며 혼자라는 자유를 만끽했다.
혼자이기에 더 깊이 보고 더 자유롭게 멈출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무 늦었던 걸까?"
"지금이 가장 적당한 때다."
혼자이기에 더 깊이 보고 더 자유롭게 멈출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