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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링 Mar 04. 2024

여행의 끝. 일상으로 돌아오는 꿈


"안녕하세요." 쭈뼛쭈뼛 어색한 인사를 하며 공기의 온도를 살핀다. 사회생활 미소를 지으며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쫑긋 세운다. 속으로는 한껏 들떴지만 신나는 마음을 억눌러본다. 표면적으로 나는 업무상 출장 가는 사람이니까. 술을 한 잔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앞서 캠핑이나 글쓰기 등 다른 모임에서 만났다는 이들은 서로서로 친해 보였다. 그 상황에서 나만 외딴곳에서 온 이방인 같다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 물론 사람들과는 금방 친해지게 됐지만 그때의 나는 조금 위축됐다. 키르기스스탄을 떠나기 전 OT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여행 준비 과정은 사실 막막했다. 키르기스스탄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없었고 물어볼 곳도 없었다. OT 이후 단톡방이 만들어져서 편하게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지만 왠지 모르게 편하게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키르기스스탄' 검색 후 설산의 그림을 눈에 담았다. 머릿속에 풍경을 떠올리며 그저 손이 이끄는 대로 캐리어가 터질 정도로 방한용품을 챙겼다. 편하고 따뜻한 옷가지들을 모아 짐을 싸고 배낭에도 짐을 가득 채웠다. 별거 안 챙긴 것 같은데도 7박 9일 겨울 여행 짐은 먼 곳으로 유학 가는 아이의 짐처럼 묵직했다.


한식파티를 한 날. 원형 테이블에 다 같이 둘러앉은 이 순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ASHU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침식사.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곳이다. 아늑하고 따스한 오두막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OT때 한번 본 게 전부인 우리 사이. OT 이후 급번개로 모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가지 못했다. 나는 서로의 이름과 얼굴이 흐릿해질 때 즈음 여행을 떠나게 됐다. 인천공항에서 만나서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 내려 키르기스스탄까지 가는 길.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면서 우리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한 명도 빠짐없이 여행을 있는 그대로 즐겼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으며, 누군가는 현지 간식을 맛보며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를 음미했다. 갈등상황이 생길 법한 순간에는 모두가 서로를 배려했다. 힘든 순간에도 서로가 함께하면서 이겨냈다. 또 7박 9일 동안 얼마나 많은 밥을 함께 먹었는지. '식구'라는 말처럼 같이 끼니를 함께하다 보니 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우리를 인솔해 주던 현지 가이드들도 성격과 매력이 제각각이었다. 아빠처럼 든든하고 어른스럽게 이끌어주던 주마벡과 나보다 어렸지만 전혀 어리게 보이지 않았던 가이드 셋. 다들 인상은 강해 보였지만 일정 내내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를 챙겨줬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여행 내내 우리를 살폈다. 익숙하지 않은 한국 문화와 음식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줬다. 여행지에서 현지 가이드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았다. 마지막 가는 아쉬움에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흘렀다. 그사이에 많은 정이 들었나 보다. 끝까지 우리의 무거운 캐리어와 배낭들을 챙겨서 꺼내주는 모습이 오래오래 마음속에 남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게 느껴졌던 겨울 키르기스스탄 여행. 8주 동안 브런치에 키르기스스탄 여행기를 끄적이면서 여행의 여운을 오래 가져갈 수 있었다. 아직도 사진만 보면 그날의 온도와 공기, 다 같이 떠들던 목소리들이 귓가에 맴돈다. 휘청거리며 눈길을 다그닥 다그닥 걷던 말들. 너무 추워서 손발이 서서히 얼어가고 있지만 서로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포즈를 취하던 사람들. 날아가는 드론을 향해 번쩍 손을 들어 인사하던 해맑은 모습들. 밥 먹을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그리고 빠르게 배를 채워가던 우리들. 돌려 입고 또 돌려 입고하다 보니 더 이상 입을 옷이 없어서 고민할 때 흔쾌히 자신의 옷을 내어주던 사람들. 멋진 장면이 펼쳐지면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어줘서 같은 장소에서 수십 장씩 남긴 사진들. 밥 먹기 전 에어드롭으로 사진을 전송해 주던 순간들까지 하나하나 기억에 선명히다.



어떻게 보면 대환장 파티 같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하나둘 채워서 핸드폰 용량이 가득 찰 때까지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첩에 있는 사진을 보면 그때 그 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한 기억이 새겨졌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키르기스스탄 여행은 어떤 게 꿈인지 어떤 게 현실인지 모를 만큼 깊이 몰입했다. 사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꿈이 아닐까? 꿈은 행복하고 현실은 불행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조금 힘든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그리고 꿈에서의 시간을 차곡차곡 채운 다음, 다시 천국 같은 현실 속으로 돌아가야겠다. 미리미리 현실로 돌아갈 채비를 해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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