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로댁 Apr 11. 2022

나의 스물여섯 살의 한 페이지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이제 세상 누구에 대해서도 그들이 이렇다든가 저렇다든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젊은. 그러면서도 말할 수 없이 나이가 든 기분이었다. 그녀는 칼처럼 모든 것을 저미고 지나가지만, 그러면서도 밖에서 구경을 하는 듯했다. 택시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항상 그렇게 멀리 바다밖에 나가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 하루라도 산다는 것은 아주,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느낌이 떠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영리하다거나 보통 사람들과 그리 다르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프로일라인 다니엘스가 가르쳐 준 몇 가지 되지 않는 지식으로 어떻게 인생을 헤쳐 올 수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하나도 아는 것이 없었다. 외국어도, 역사도. 이제는 책도 별로 읽지 않고, 잠자리에서 회고록을 읽는 정도이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이, 지나가는 택시들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피터에 대해, 또 그녀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이렇다. 나는 저렇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자신의 유일한 재능은 사람들을 거의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라고, 그녀는 계속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만일 누군가와 한방에 있게 되면 그녀는 고양이처럼 등을 치켜세우든지 아니면 다정하게 가르랑거린다. 데본셔 하우스, 바스 하우스, 도자기 앵무새가 있는 , 그녀는 한때  모든 집에 불이 켜진 것을 보았었다. 사람들이 떠올랐다. 실비아, 프레드, 샐리 시튼- 많은 사람들. 밤새도록 춤을 추던 , 시장을 향해 덜커덩거리며 지나가던 트럭들, 차를 타고 공원을 가로질러 집에 가던 ,  번은 서펀타인 호수에 1실링 동전을 던진 것도 생각났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억은 있는 법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지금 여기 이것, 그녀 앞에 있는 것이었다. 택시를  뚱뚱한  부인이라든가. 그렇다면 문제가 될까? 그녀는 본드 스트리트 쪽으로 걸어가며 계속 생각했다. 그녀 자신도 어쩔  없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  모든 것은 그녀 없이도 계속  것임에 틀림없다.  점이 한스러운가? 또는, 죽으면 모든 것이 완전히 끝이라고 믿는 편이 위로가 될까? 하지만 어떻든 런던의 길거리에, 사물들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흐름 속에,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고, 피터도 살아 있으며, 서로의 속에 살아 있었다. 그녀가 고향집 나무들의 일부이듯이. 저기 보기 싫게 잡동사니처럼 늘어서 있는 집들이 일부이고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들의 일부이듯이. 그녀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 엷은 안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나물들이 안개를 떠받치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가지 위에 그녀를 받쳐 주고 있었지만,  안개는, 그녀의 삶은, 그녀 자신은 끝없이 멀리 퍼져 나갔다. 그런데 해처드 서점의 진열창을 들여다보면서 대관절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거지?  기억해 내려고? 펼쳐진 책에 씌어 있는 말에서, 어떤 창백한 새벽의 영상을?


더는 두려워 말라. 태양의 열기를

사나운 겨울의 횡포를.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중 발췌         



 

 스물여섯이 되던 해 겨울, 유난했고 찬란했던 나의 사랑이 끝이 났다. 정확히는 끝났다는 통보를 받았다. 내가 맺은 끝맺음이 아니었기에,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콧대 높던 아가씨의 마음에 커다란 구덩이가 움푹 파였다. 코 끝이 매서운 찬 바람이 부는 겨울날에 예고 없이 나의 뺨을 갈긴 이별의 매서운 손맛에 나는 정신을 놓고 휘청거렸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던 잠 못 들 던 새벽, 편의점이라도 가야겠다고 바람을 쐬러 나가던 길에 저 멀리 학교 담벼락의 목련 꽃망울이 눈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탐스럽게 봉긋하던 고깔 모양의 꽃망울. 홀린 듯 바라보다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며칠 뒤 새 하얀 웨딩드레스처럼 화려하고 탐스러운 목련 꽃을 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한참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사랑하고 사랑받던 빛나던 그 시절의 나 같다고. 그리고 바랬다. 아니 소원했다. 이 아름다운 꽃들이 질 때쯤엔 나도 괜찮아질 수 있기를. 이 화려함이 가시면서 내 화려했던 과거의 미련도 가져가 주기를.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을까. 땅만 보고 걷던 내 눈에 짓이겨진 하얀 꽃잎들이 밟혔다. 화려했던 내 사랑이 저물 때 그러했던 것처럼, 세상 어떤 꽃보다 탐스러웠던 새하얀 순백의 그 꽃도 가버릴 때에는 어찌나 처참한지 서글픈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 아, 내 사랑도 끝이 났구나. 그 끝을 놓지 못하고 마냥 붙들어 들고 있는 나는 져버린 이 목련처럼 처참할 뿐이겠구나. 아직 그러기엔 내가 소중하다고. 내 발 밑의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밟혀 짓이겨진 꽃잎들을 바라보며 생각했었다. 그렇게 지는 목련과 함께 찬란하고 유난했던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덮었다.


 그리고 그 길로 들어 선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사진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었다. 그렇게 어느새 내 손에 들려진 책에 15년 전의 내가 남긴 잔인한 4월의 마음 한 구절이 남아있다. 2007년 4월 12일의 나. 나였지만 지금의 나와는 다른 그 시절의 나. 그립기도 하고,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그 시절 그 봄의 나에게, 2022년 4월 11일의 오늘의 내가.




 


내가 나에게 남긴 메세지가 담긴 책. 지금 다시 읽어도 같은 부분에 밑줄이 그어진다. 내가 나와 이어져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