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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머리 앤줌마 May 13. 2022

꿈을 따라 길을 나서다

시간이 느린듯 하지만

갱년기가 막 시작 될 무렵이었다.

평소에 이웃에서 가까이 지내는 언니에게 "나 요즘 갱년긴가 봐" 한마디 건넸더니  

언니가 눈을 흘기며 웃는다 "니가 갱년기면 사람들 다 갱년기겠다" 언니는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대답했다.

그런데 내마음 한구석에 비수가 되어 꽂히고 이유도 없는 서러움에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당황한 사람은 언니였다. "아니.... 난.... 니가 항상 웃고 살기에.... " 언니의 말이 더 서러워서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었다.


어제종일 약에 취하여 누웠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들리면서 깨어있는 남편에게 몸살이 온거 같다는 사실을 알리고 도로 누웠다.

남편과 나는 각방을 쓴다.

서로의 편리에 의한 또 서로의 삶의 질을 위한 합의다.

갱년기 불면증으로 나는 잠자는 시간이 늦어지고 깊은 잠이 들기 전까지는 화장실 출입도 잦다.

남편은 군대에서 익힌 잠이 오랜 습관이 되어 늘 조각조각 끊어진 잠으로 수면의 질이 엉망이다.

그기다 새벽기도까지 가는 남편은 잠에 대하여 예민할 수 밖에 없기에, 40년 가까이 살아온 부부가 서로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자연스레 일어난 반응이다.


남편의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가 내게 들렸다.

곧 남편은 누워있는 나를 보고 친구가 만나자고 한다는 한마디를 건네곤 방을 나간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인지 창밖이 어둡다.

밖으로 나와 남편의 방을 보니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약을 먹기 위하여 대충 챙겨서 먹고 서성거리며 소화를 시킨후에 식탁에 앉아서 블로그에 들어가 슬그머니 마실을 다녀본다.

현관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오며 검은봉지를 내민다 "고추다. 금방 딴거"

"응" 하며 봉지를 보고는 핸드폰으로 눈을 돌렸다.

 "이거 **가 줬다" 나는 또 "응"

남편은 부엌 싱크대 위에 가져다 놓고는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또 나를 보고 "고추~ 금방 딴거라서 싱싱하다" 이번엔 봉지속에서 고추를 꺼내어서 들고 말한다.

남편을 물끄럼히 바라보며 "여보~ 알아들었다" 입으로는 부드럽게 웅얼거리는데, 내 눈에는 언짢음이 가득하다.

그리고 훅 내뱉는다. "고추가 머그리 중요하노? 거기다두면 내가 알아서 할낀데.... 당신은 내 상태에는 관심이 없고 늘 당신 하고 싶은 말만한다"

'아픈 아내두고 나가서 지금 몇시고 8시가 다 됐다 점심때 나가서...' 입속에 머무는 말을 꿀꺽 참아보지만, 이미 나의 마음은 총알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또 총알을 받은 남편이 던진 수류탄도 내게로 날아와 철퍼덕 안긴다.

'고추가 머라고....  친구가 준 고추가 머 그리 대단하나? 아내보다 더.... 그럼.... 고추 맛있겠다 맛있겠네, 고추넣고 된장이나 끓여줄까 이래야 되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허공을 맴돈다.


마흔의 고개가 접히고 쉰을 넘어설 때에 남편과 남강길을 걸으며 "여보~ 나 엄청 여린 여자야 이제는 부드럽게 좀 대해주라"

남편이 놀란듯이 나를 바라보며 "당신이 여리다고? 얼마나 강한데...." 그때 또 한번 마음을 내려 놓았었다.


나이드니 남편에게 바라는게 더 많아진다.

예전 같으면 지나갈 일도 딴지를 건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내려놓았고 단념했던 내 몫을 찾고 싶은 욕망이 이글거린다.

모든것이 섭섭하고 서럽고 외롭다.

갱년기를 온몸으로 버텨내는 동안에도 남편에게만은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어느날 나는 남편이 받아 들이든, 받아 들이지 못하든 내 마음과 내 몸의 상태를 말하기로 작정했다.

내게 있어서 남편은 오직 내편이어야 했다.

내게 권리가 있었고 남편은 내게 의무가 있었다.

법적인 효력도 내게 있다.

말하지 않는것보다 말하는게 내게 훨씬 더 유익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이기적이고 싶었다.

나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마음의 문을 닫았다.

예전엔 늘 내가 다가가 남편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다독여 주었다.

미안하지 않은 일도 미안하다고 했다.

이제는 굳이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려 한다.

살아온 세월의 강이 여전히 흐르고 있고 앞으로의 시간의 강도 흘러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이 마음과 방문을 닫는 일이 생길때면 나도 나의 마음과 방문을 닫는다.

남편에게 내 마음도 닫혔음을 알려주고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뽀송뽀송 따뜻한 이불속에 누워서 나쁜 생각들을 내려놓고 마음을 만져주는 행복함을 누린다.


남편은 유난히 가족에게는 말이 짧다.

그 짧은 말속의 말들을 젊을 때는 알아 듣기도 하고 알아 듣는척 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는 내 몸과 마음의 반응을 남편도 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지만 삶의 태도의 변화에 대하여 함께 받아 들여야 함을 조금씩 이해하고 알아 가는 중이다.


오늘은 아침에 남편이 먼저 일어나서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며 소리를 낸다.

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약에 취한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또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잠으로 마지막 남은 마음의 찌꺼기까지 덜어 내고는 12시를 넘기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방안에서 내가 서성거리는 움직임을 보고 남편이 들어온다.

"내가 또 그럴끼지만.... 노력하께 내가 마이 모자란다" 


오늘은 티팟에 무와 홍화꽃 생강 연근 올리브를 넣고 끓인 물을 조금 식혔다가 가득히 붓는다.

내가 나를 귀하게 대하여 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때는 오래전 만들어둔 티매트를 하나 꺼내고  

마시고 싶은 차의 재료들을 조제하여 나를 위한 차를 만들어 마음의 사치를 부려본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나를 마음껏 사랑해주며 존중하고 싶다.

익어가는 시간이 느린듯하지만 햇살의 넉넉함을 나는 믿는다.

이제는 수직이 아닌 수평의 관계로 서로가 보듬어 주며 시간을 받아들이는 서로의 마음에 자비가 가득해야만 하는 길을 나와 남편은 가야만 한다.

그러기에 쉬어가는 지혜를 위하여 오늘도 기도한다.

남편도 가벼운 마음으로 외출을 하고 나도 차가 주는 소박한 행복에 취하여 늦은 하루를 만난다.




#나의에세이 #앤의에세이 #글쓰기

#익어가는시간도여전히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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