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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머리 앤줌마 Apr 09. 2022

꿈을 따라 길을 나서다

익어가는 시간들

나는 이제 익어가는 인생이다.

어떻게 살아내어야 마지막에 웃을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질문은 내가 갱년기라는 언덕을 다 오른 후에

내리막길을 향하여 발을 디딜때쯤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나는 유난히 지독한 갱년기를 겪었다.

온 몸의 면역력이 바닥이 나고 감정이 절제가 되지 않아

나를 혹사하고 자신을 원망했다.

몽골로 선교를 나간 딸에게도 전화를 걸어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태풍처럼 사납게 쏟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갱년기와 사투를 벌이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어느날 입안에서 피가 쏟아졌다.

치과를 찾았더니 잇몸이 다 녹아내려서

이를 다 뽑아내고 틀니를 해야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지금에서 돌아다보면, 아직은 오십셋 꽃(?)다운 나이였다.

치과를 여러곳을 돌아다녔으나

어느 병원에서도 내가 견딜수 있는 치료나 방법은

말해주지 않았다.

이를 다 뽑아야 한다는말과 틀니를 해야한다는말 외에는....

그렇게 지독한 갱년기가 언덕을 오르고 나서야

내가 보였다.

그날도 양치를 하다가 피를 토하듯 쏟아내고는

8월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울다가 지친 나를

햇살에 눈부신 창을 통하여 들여다 보았다.

볼품없이 말라 비틀어진 육체와

소망없이 허공을 맴도는 눈동자가 슬펐다.

순간 알 수 없는 오기가 뜨겁게 치밀어 오르고

땀에 흥건히 젖어 독이 오른 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대로 무너지기엔 너무 아까운 인생이야 그쟈'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는데....'

나는 나의 엉덩이를 툭툭치며 버텨내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나와의 싸움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꿈속에서도 나의 의지는 싸웠고 버티었다.

어느날엔가 잇몸에서 피가 멈췄고 흔들리던 이가 단단해졌다.  

매일 밤낮으로 항생제를 의지하며 살던

몇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면역력도 조금씩 회복되어졌다.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잇몸에 좋다는 식품들을 보내주었고

나도 뼈와 근육에 좋은 정보들을 열심히 찾아서 먹고

몸에 맞는 운동도 하였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더 열심히 걸었고

나를 위하여서 더 많이 더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나만을 위하여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이 사치일 수 있는  쉽지않은  환경이었지만 죽기를 각오로 성실히 살아내었다.

살고 싶었다. 그것도 아름답고 품위있는 삶을!


친정아버지께서 천국으로 가신 후에

엄마를 모시게 되었고

아들이 결혼하여 타지에ㅣ서 살다가

느닷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와

아들내외와 손자손녀랑 한지붕 두집살림을 하고 있던터였다.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갔고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감사하다.

아들가족이 인격적 독립을 하였고

엄마도 지난해 천국으로 가셨다.

지난 봄에 다시한번 몸의 반응이 민감해졌으나

수년을 노력해온 정신이 나를 일으켜주었다. 


인생100세 시대가 넘었고 120을 간다하니

무섭기도 두렵기도 하지만

남아있는 인생-익어가는 인생-에  대하여 더 관심이 많아졌다.

그렇게 멀리 내다보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멀리 갈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할수만 있다면 익어가는 시간들을 차근차근 준비하여 건강하고 품위있게 살아내고 싶다

호흡이 멎는 그 순간까지

나를 살필수 있는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또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은 거절하려한다.  

나는 요즘, 인생의 마지막 계절인 익어가는 시간들 앞에서

내가 살아내었던 처절한 삶의 흔적들을 비워내고

어쩌면 가장 나를 위한 삶일수도 있는 시간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기대하는 마음이 설렌다.

무엇인가 급히 이루어 내어야하는 현장의 긴장감은

이미 사라진 시간과의 만남이기에  

비움의 시간들과 익어가는 맛이 보장된 느린 시간들의 여유가

오히려 나를 자신있게 만들어 줄것을 믿는다.

더이상 잃을것도, 더 많이 가져야 할 시간의 욕심도 없기에

슬로우템포의 왈츠를 추며, 마지막 계절의 비움과

익어가는 인생을 즐기려 한다.

나의 이런 계획과 소망들이 나를 살아내게 하고

약해지는 육신을 마주할때도 버티기한판승으로

내손을 번쩍 들어주리라 확신하며

나는 오늘도 꿈을 따라 나선다.




#나의에세이 #앤의에세이 #글짓기

#익어가는시간 #꿈을따라길을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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