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강머리 앤줌마 Apr 02. 2022

삶을 위한 노래

우물에 빠진 날

창으로 들어오는 보드라운 햇살을 감사하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꿀잠을 선물해준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일상의 옷으로 갈아입는 의식(장갑과 방한조끼, 목에 두르는 찜질팩까지)을 치른후 중문과 베란다를 통하여 마당으로 나간다.

한뼘되는 마당이다.

하늘과 먼저 인사를 건네며 안부를 묻는다.

'어제는 하루종일 심드렁 하더니 오늘은 기분이 좀 나아졌네, 그래도 비가 오면 좋겠다 올 겨울엔 비가 귀하네'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바람이 반가운 봄기운과 함께와서 볼을 부빈다. 아침이다.

나는 아침이 좋다.

젊은 날과 비교하면 많이 늦어진 아침이지만 하루가 시작되는 이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

조그마한 화단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밤새 날아든 쓰레기와 떨어진 마른 잎들을 비로 쓸어주고는 두팔을 벌려 심호흡을 하며 오늘도 내게 허락한 하루가 안전하고 평온하기를 기도한다.       

머리속 한켠에서 문득문득 나를 사로잡는 두려움에 묻어 있는 공포가 젊은날 일상의 평안을 깨기도 하고  삶의 균형을 흔들기도 하였다.

정확한 기억은 없으나 안개처럼 흐릿한 기억을 붙잡고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공포를 따라가 본다.

도시로 이사오기전의 어린날이었으니 8~9세쯤 되었던 여름날이었나 보다.

마실을 가는 엄마를 따라 뒷집으로 놀러갔다.

내 또래의 친구가 몇 모였으니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우리는 숨박꼭질 놀이를 하기로 하고 가위 바위 보로 술래를 정했다.

술래는 기둥에 몸을 기대어 눈을 감고 서서 숫자를 100까지 큰소리로 헤아린 후에 "간다"를 외쳐야 했다.

100이란 숫자가 끝나기 전에 숨어야 했기에 우리는 저마다 숨을 곳을 찾아 여기저기로 뛰었다.

나도 열심히 달려서 안전한 곳을 발견하고는 숨으려는데 갑자기 목이 말랐다.

마당을 지나 텃밭으로 달렸기에 감나무뒤에 숨기만 하면 되었다.

친구들은 안전지대를 찾아 숨었고 술래가 세고 있는 숫자는 100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우물가로 가서 물 한모금 마시고 숨어도 충분할거 같았다.


내가 살던 집에서도 조금만 걸어가면 우물이 있었다.

여름이면 엄마들의 수다와 동네 아재들의 등물의 즐거움이 우물가에서 시작되었기에 우물은 내게도 신나는 놀이터였다.

친구네 마당 끝에 자리잡은 우물도 눈에 익은 곳이었다.

나는 숨을 토하여 내며 두레박을 들었다.

집 앞에 있는 두레박보다 무겁고 컸다.

두손으로 두레박을 들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던졌다.

그순간 나의 몸도 두레박을 따라 우물안으로 떨어졌고 곧 다시 몸은 위로 솟구쳐 올랐다.

크고 작은 돌멩이로 만들어진 우물이었기에 솟구쳐 오르면서 나는 고드름처럼 튀어나온 돌멩이를 붙잡았다.

우물이 그리 넓지 않았기에 본능적으로 붙잡은 돌멩이에 의지하여 우물안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무서움에 울었고 지나가던 소나기를 공포에 떨면서 만났고 친구와 엄마를 목놓아 불렀다.

내게는 억겁(?)의 시간이 흐르고 친구의 엄마가 찬거리를 들고 우물가에 나와 두레박을 찾다가 우물속을 들여다 보았다.

내 이름을 부르며 다급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두꺼운 새끼줄이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그후로 우물에 빠진 사건은 내게서 잊혀졌다.

아마도 혼날까봐서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았을테다.

살면서 엄마에게서 우물얘기를 들은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내게서 이상한 행동을 발견한다.

혼자서 자는 날이면 방문을 닫지 못하고 볼일을 보는 동안에도 화장실 문을 두어뼘 열어두어야 하며

신혼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호흡곤란으로 남편을 당황하게 만들었섰다.

아이들의 방학때 기념으로 동해안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며 해수욕장과 석회암 동굴인 울진 성류굴을 비롯한 좋은 곳들을 두루 보고자 길을 나섰었다. .

계획을 짜고 여행을 준비하여 목적지를 향하여 바다를 보고 달릴때는 아무생각이 없었다.

차안에서도 신나게 즐기며 성류굴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동굴앞에 선 몸이 얼어 붙어서 움직여지질 않았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아 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남편과 아이들만 들여보내고 나는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지금도 가끔 남편과 차를 타고 외출을 하다가 짧은 볼 일을 본다고 차안에서 나를 잠깐만 기다리라고 할때가 있다.

아무런 생각없이 기다리겠다고 말했음에도 남편이 차문을 닫는 동시에 갑갑함이 훅 치밀어 올라와 차에서 내리기도 한다.

어린날에 당한 참사라 몸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뇌는 저장되어 있는 공포와 닮은 상황이 되면 몸서리치며 거부하는것이라 여겨진다.

이제는 신앙과 나이의 여유로 많은 부분이 치유가 되어져 피하는 방법을 알기에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날엔 미리 약도 챙기고 2~3주전부터 마음근육을 키워서 집을 나선다.       

아직도 방문을 완전히 닫지 못한다.

방문을 열어두고 자는데도 어둠속의 몸은 나의 공포를 기억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마당으로 나가야 한다.

하늘을 보고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시린 바람과 볼을 부벼야한다.

그래서 나는 계절중에 굳이 여름도 좋아한다.

여름엔 온 몸을 맡기며 뜨거운 볕바라기를 즐기는 것이 좋다.

우물 속에 빠진 공포가 살아서 숨쉬는 여름을 굳이 좋아할 이유가 없음에도 한여름 뙤약볕에 전신을 드러내고 쏟아지는 땀방울의 시원함을 즐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도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삶을 위한 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