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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h y Dec 22. 2023

그러니, 그대들 안녕하길

따로 또 같이 쓰레기를 줍는 '프로쓰줍러'들, 그리고 보통의 마음들에

2020년 여름의 초입이었다. 설악산 소공원 입구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인다. 전염병이 개개인의 일상 속으로 침투한 지 반년 정도 되었을 무렵이다. 마스크에 가린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은 가늠하기 어렵고, 널찍이 선 거리는 조심스럽다. 국립공원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이것저것 챙겨 든 무리는 천천히 길을 나선다. 습기를 머금은 산과 하늘의 경계가 희미하다.


소공원을 출발해 울산바위까지 걷고 돌아오는 반나절 남짓의 일정이다. 여담으로 울산바위가 그 이름을 갖게 된 데는 울산에 있던 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다가 착각했거나 늦어서 눌러앉았다는 이야기 외에도 바위가 늘어선 모습이 울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울산(鬱山), 혹은 바위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가 마치 우는 소리처럼 들려 ‘우는 산’이라 부르던 것이 울산이 되었다고도 한다. 흔들바위를 기점으로 가파르게 계단을 따라 고도를 올려 당도하는 울산바위에서는 1,708m 대청봉 절반의 높이지만 시야가 트인 날에는 대청봉이나 공룡능선을 비롯한 설악의 산세를 조망할 수 있다.


서먹한 무리는 습기를 머금은 산길을 앞서거나 뒤서거나 걷고 서기를 반복하며 이곳저곳의 쓰레기를 줍는다. 누군가의 눈에 든 쓰레기가 그 누군가의 쓰레기 주머니로 재빨리 모습을 감추고 나면, 무리는 다음 사냥감을 찾아 나서듯 더욱 주위를 기웃거린다. 어떤 이의 길고 튼튼한 집게는 돌과 흙 사이 깊숙하게 박힌 큰 쓰레기를 대어 낚아채듯 호쾌하게 끄집어낸다. 탐방로에서 닿는 곳까지 무리가 줍고 나면, 깊숙한 곳의 것들은 국립공원 직원들의 몫이다. 앞을 보고 나아가기 바쁜 산행객들 사이에서 홀로 멈춰 줍던 평소와는 달리, 무리와 함께하는 오늘의 이 길이 생경하다.


울산바위 정상에서 띄엄띄엄 앉아 시장기를 달랜다. 통성명 없이 몇몇 질문과 대답이 오간다. 어떤 이는 산이었고, 어떤 이는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는다고 했다. 성향과 특기에 맞게 장비도 제각각이다. 크고 무거운 쓰레기가 널린 바닷가에서는 길고 튼튼한 집게를 쓴다. 어깨 위 짐의 무게를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산에서 쓰는 나의 집게는 그에 비해 가볍고 작다. 나뭇가지에 비닐이 찢어지곤 해서 여러 소재의 겉주머니를 시도해 보고 있다는 그간의 시행착오들을 나눈다.


처음부터 쓰레기가 많지 않았던 데다 여럿이 샅샅이 훑고 지나가니, 오르는 길에 미처 보지 못한 쓰레기가 돌아가는 길에 발견되는 일이 드물다. 두루 험한 산이라 어렵겠지만 대청봉을 포함한 서북 능선이나, 대청봉에서 소공원으로 이르는 길에서 비슷한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오간다. 마스크 위로 두 눈만 내보인 이름 모를 얼굴들 사이의 서먹함이 조금은 누그러질 때쯤 반나절의 일정은 마무리됐다.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함께 주워모은 쓰레기들


산을, 자연을 좋아한다며 발걸음하는 사람들은 소음과 쓰레기를 남긴다. 한 무리의 소란을 피하면 또 다른 무리가 뒤이어 와글거리고, 줍고 돌아서면 또다른 쓰레기가 눈에 든다. 1g의 무게라도 더는 편이 나은 산행에 쓰레기 주머니와 집게를 챙기는 건,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을 몰라서, 대의나 명분이 아니라 제 눈에 못나 보여 그저 지나치지 못해서다. 그럼에도 효율이 미덕인 시대에 걸음을 멈췄다 다시 걷는 비효율을 자처하는 일은 외롭고 고단하다.


산정에 들며 사람에 대한 끝 모를 실망과 좌절이 쌓여가는 동안, 어디선가 홀로 묵묵히 제 걸음 앞의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길이 없는 그날의 사람들이 그랬다. 남 앞에 보이거나 말로 그럴싸한 것들의 만연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힘이 있었다.


설악산과 동해를 품은 도시를 매일 치우고 기록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김현아 님도 그중 하나다. 좋아하는 산과 바다를 아끼는 마음으로 쓰레기를 줍는 것이 인연이 되어 귀한 그림 선물도 받았다. 산책 겸 거닐며 주워 본 바닷가의 쓰레기는 그 규모나 수가 상상 이상이었는데, 그는 그걸 매일 마주하고도 어디든 버릴 쓰레기라면 자신이 주울 수 있어 다행이라 했다.


집을 나설 때마다 건물 앞에서 제멋대로 뒹구는 쓰레기를 마주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음식이 묻은 일회용품이나 분리수거는커녕 제대로 비닐에도 넣지 않은 채 버려진, 같은 건물 입주민들의 것이다. 다시금 그저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금 화가 안으로 쌓였다. 고무장갑과 비닐봉지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나선 이른 아침, 제 집 앞 골목을 쓸고 있는 이들의 초연한 표정에서 어딘가에 있을 그들과 그날을 겸연쩍이 떠올린다. 


보통의 사람들로 지탱되는 보통의 일상


치우고 치워도 그 옆에서 무심히 버려져 이내 곧 생길 쓰레기를 왜 줍느냐고 자문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산과 바다가 사람의 손으로 더러워지거나 망가지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특히 어린 조카들이 내가 좋아하는 그곳에서 인간의 비양심과 이기를 마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작은 일이라도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특별한 것 없는 보통의 마음이다.


너그럽지 못한 보통의 마음에 곧잘 화가 치민다. 쓰레기를 줄이고 주워본들, 텀블러를 써본들 결국은 더러워지고 망가질걸,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속으로, 대놓고 비웃는 이들로, 처음의 의미를 잃고 외롭고 고단한 일을 자처한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발 아래 쓰레기를 그저 지나지 못한 누군가에 의해 산길과 해변, 무심히 지나치는 여느 동네 골목의 길은 아마 오늘도 조금 더 깨끗해졌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 가진 것의 양과 크기를 떠나 주변을 살피는 마음에서 비롯된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의 일상 곳곳을 지탱하고 있다. 


그래서 비난의 화살을 벼리는 대신, 좋아하는 것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나와 결이 닮은 보통의 마음과 행동들을 응원해보려 한다. 지금의 결심이 무색하게 언제고 다시금 날을 세울, 그릇이 작은 나의 글이지만,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무기력이 무의미를 나열하기 시작할 때, 당신과 나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귀감과 영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나부끼는 깃발 아래 함께 모여 같은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따로 또 같이하는 느슨한 연결의 힘을 우리는 안다.  


아주 없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있었다. 언젠가 지리산 연하봉에서 큰 봉지와 집게를 든 산객과 마주한 적이 있다. 감사합니다, 지리산을 아껴주셔서. 마음으로 인사하며 각자의 길에 놓인 쓰레기를 주우며 스쳤다. 유난스러운 혼자가 아니라고 처음으로 기억한 날이라고, 그렇게 수년간 잊고 있던 노트에 적혀 있었다.  


그러니 그대들, 안녕하길. 느슨하게 서로를 지탱하며, 지칠 때는 어딘가의 서로를 생각하며, 오늘의 삶에서 따로 또 같이 함께하는 일상을 이어갈 수 있길. 다시 건강한 몸으로 산정에 드는 날엔 씩씩하게 나도 다시 줍겠다. 배당 한켠에 언제고 가져갈 집게와 주머니를 매만지며 안부를, 응원을 전한다.


산길에서 주운 쓰레기들. 늘어가는 쓰레기 무게에 예정한 일정을 줄여야 한 적도 있었다
바닷가 산책 겸 쓰레기 줍기. 산에서 쓰던 집게로는 어림없어 결국 손으로 집어올렸다
시행착오 끝에 정착한 집게와 주머니. 제로그램 플로깅 백에 컨퍼런스에서 받은 이름표 끈으로 작은 집게를 연결했다. 흠집과 구멍이 늘고 있지만 아직은 쓸만하다
김현아 님 그림 (인스타그램: @hyeona1022). 2021년 페이스북그룹 [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플없잘)]에서 현아님의 비치클린 활동과 그림선물 포스팅으로 인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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