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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연 May 29. 2022

'마을'을 변화시키는 사람들과의 산책에 함께하다.

성미산 마을, 연남동 세모길, 연희동 커피거리를 둘러싼 이야기

다시 한번 성미산에 오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에 대한 기록을 목적으로 한 방문이었다면, 이번에는 성미산마을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방문에 가까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방을 통해서만 접하던 성미산마을과 전체적인 역사, 역할과 함께 알게 된 성미산마을의 모습에는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었다.

지금부터는 성미산마을을 둘러보며 떠올랐던 짧은 단상을 나열하면서 성미산마을이라는 공간과 그 안의 장소를 엮어보려 한다.


답사의 시작점이자 길눈이를 만날 수 있었던 '성미산 마을회관'

 이날의 답사는 성미산 마을회관에서 길눈이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마을의 형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3번의 성미산 지키기 운동에 대한 설명과 성미산마을에서  추구하고 있는 다양한 돌봄의 유형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

 사실 개똥이네책놀이터에 대해서만 조사할 때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돌봄과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적, 복지적 차원에서의 돌봄 활동이 개똥이네책놀이터를 기점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의 자료를 통해 이러한 '돌봄'이 비단 개똥이네책놀이터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전반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가치에 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미산학교로 내려가는 길에 붙어있던 스승의날 문구

 성미산 마을에 위치한 비인가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를 둘러보았다. 주말인 관계로 내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벽만 보더라도 아이들이 마을의 어른들과 맺고 있는 관계성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저희가 든든한 동료로 함께하겠습니다.'

 [동료] 같은 직장이나 같은 부문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


 동료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에 해당하지만 사실 사회에서 '동료'라 칭하는 대상은 같이 일하는 집단 안에서도 연차가 나와 비슷하거나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이야기할 때가 많은 듯 싶다. 적어도 직급이 낮은 사람이 직급이 높은 사람을 '동료'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선생님의 동료가 되어드리겠다는 아이들의 표현은 성미산마을이 지향하고 있는 수평적인 소통의 가치가 잘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에 해당한다. 또 벽면에 아이들과 선생님의 별명을 적은 포스트잇도 붙어있었는데 이때 이 '별명'의 사용은 수평적 관계 지향을 위한 주춧돌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별명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나이와 직급으로 인한 위계를 조금은 지울 수 있었으리라. 성미산마을에서 추구하는 '수평적' 관계는 제3의 장소의 특성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극장 출자자의 벽
성미산 마을극장 내부 전경


'이곳엔 세 가지가 많아요. 회의, 맥주, 출자.'


 마을 소개를 맡아주었던 길눈이 '사슴'의 이 기억에 남는데, 동네를 함께 둘러보는 과정에서 이 말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강한 먹거리를 구매할 수 있는 두레 생협(필요한 경우에 출자금을 지원해주기도 한다고),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문화 공간인 성미산 마을극장, 쓰지 않는 물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되살림가게, 지금은 철거되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활동이 운영되던 개똥이네 책놀이터  등등. 당사자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출자는 성미산마을 곳곳을 건강하고 생기 있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두레생협 / 한 켠에는 작은 모임 공간이 위치해 있다.


 성미산마을과 이전에 답사한 홍동마을의 차이가 있다면... 성미산마을은 물리적 경계가 또렷하지 않은 '관계망'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홍동마을은 이와 달리 뚜렷한 지리적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마을의 범위는 지리적 경계, 범위와 가까울 때가 많은데(물론 그 안에서의 커뮤니티가 있다는 전제 하에) 꼭 우리 동네에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성미산 마을에 와서 활동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주민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는 부동산 가치, 재개발과 같이 외부 요인으로 인한 변동과 갈등이 심한 지역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안에서 공동체, 마을을 유지하는 것은 시골의 경우보다 어렵다. 밀집도가 그렇게 높다는 서울, 그리고 그 안에서도 '핫플레이스'로 여겨지는 망원동 인근에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온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미래를 바라본다. 미래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회의하고 맥주를 마시며 출자한다. 그들이 공동체를 지켜온 힘의 비밀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벽을 허물어 공간의 가치를 높이다.


 사슴과의 성미산 산책을 마치고 연남동 세모길로 발걸음을 옮겼고, 지금의 세모길을 만들기까지의 노력과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담벼락을 허물고 골목 곳곳에 작은 정원을 조성했다

 사실 연남동에 간다는 소식에 떠올렸던 장면은 골목마다 식당과 카페가 가득 들어서 있고, 토요일을 맞아 놀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에 가까웠다. 그러나 세모길은 평소 필자가 방문했던 연남동(홍대입구역 3번 출구 인근의 거리)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조금은 더 한적하고 색다른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사유지를 공동을 위한 공간으로 양보함으로써 더 좋은 골목 풍경을 만들고,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하기까지 건물의 소유주를 설득하려 다녔다는 사실도.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세모길 안에는 흔히 말하는 '힙'한 이들이 여럿 거리에 앉아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담장을 없애자 좁은 골목길이 생겨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를 누비며 인근에 자리한 건물의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담으로 막혀 있었다면 큰길을 찾아서 돌아가야 했을 곳을 건물 사이에 생긴 좁은 길을 따라 찾아가니 마치 비밀의 장소를 찾아가는 듯한 재미도 있었다. 


외국 거리를 연상시키는 연남동 세모길의 풍경 / 골목에 놓인 벤치에 앉아 마시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


 연달아 방문한 연희동의 카페거리 역시 세모길과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었다.


건축 연면적을 줄이더라도 마당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건축물 내부의 가치를 더 끌어올린다. 

공간을 최대한 쪼개서 개별 공간의 임대료를 낮추고 예술가와 공방을 유입시킨다.

 

 텍스트로만 보면 당연하고 쉬운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연희동의 부동산 가치를 생각했을 때, 그리고 내가 건물의 소유주라고 가정해 볼 때에는 이런 결정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임을 깨달을 수 있다. 건축에서 연면적은 건물주가 얻을 수 있는 수익과 직결된다. 더 높이, 더 넓은 공간을 실내공간으로 조성할수록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희동 카페거리 중 많은 수의 건축물 설계를 담당한 김종석 건축가는 다르게 이야기한다. 수익률이 낮다는 것이 적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공동으로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 방문하고 싶은 마음 역시 커지기 때문에 공간의 가치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공방 및 예술가의 입주가 가능하도록 쪼개진 공간 구성 / 벽이지만 벽이 아닌, 열린 담

 

연희동 카페거리를 산책하며 돌아본 그의 건축물은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듯싶었다. 여러 예술가의 공방과 카페가 자리했고, 많은 외부인이 공방을 찾아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OO거리'라는 말이 붙은 곳들을 볼 때면, 젠트리피케이션이 빚어낸 거리, 혹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예정된 거리 정도로만 여겨왔다. 하지만 연희동 카페거리로의 변화를 이끈 실제 지역민이자 건축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의 예방책을 찾고자 했던 고민과 노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공방 앞쪽 공간에서 플리마켓이 진행되고 있었다 / 반지하에 조성된 작은 마당, 나무의 경우 다른 부지에 있던 것을 옮겨서 심었다고 한다.


소유주의 배려와 철학이 도시를 바꾼다.


 위는 2020년에 건축 및 조경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브릭웰(BRICK WELL)'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브릭웰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건축물 가장 아래층에 위치한 중정 정원인데, 이는 인근에 있던 백송터와 건물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를 바랐던 건축주의 요청에 의해서 탄생한 공간이라고 한다.


브릭웰에 간다면, 목이 아플 각오를 해야 한다. 1층부터 4층까지, 시원하게 뚫린 보이드 구조로 건물 내부에서도 서울 하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름 11m의 원형 아트리움 아래에는 중정이 꾸며져 있고, 각 층에는 이를 중심으로 베란다가 구성되어 있다. 덕분에 좁은 골목길에 위치해 있어도 전혀 답답하지 않고, 건물 내부까지 빛이 환하게 들어온다.

네이버 디자인프레스 [도심 속 작은 비밀 정원을 가진 벽돌 건축, 브릭웰 (1) 中 


 개인적으로는 브릭웰이 조성 초부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하부의 중정이 열린 공간으로 조성되어 누구나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원하게 뚫린 보이드 구조도 훌륭하지만 건물 내부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경관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관심은 없었을 것이다. 


브릭웰 1층에 위치한 중정 (열린 공간)


 아무리 건축가의 훌륭한 설계가 있더라도 발주자, 즉 건물의 (예비) 소유주가 납득하지 못한다면 그 설계는 실존하는 장소가 될 수 없다. 연남동 세모길과 연희동 카페거리에서도 그랬듯이, 소유주가 가진 배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납득할 수 있는 철학이 건축가, 조경가의 훌륭한 설계와 만날 때, 그 공간은 최대의 빛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모여 아름답고 다채로운 도시 공간을 만든다. 


 이번 글의 마지막에서 다룬 연남동 세모길과 연희동 카페거리 역시 소유주의 배려와 철학,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납득시키기 위한 설계자의 노력이 만나 탄생한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답사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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