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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근 Mar 24. 2022

강보단 바다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에

여러분은 바다와 강 중 어떤 것을 좋아하시나요? 각자의 매력이 특별하기에 쉽사리 하나를 고를 순 없지만 굳이 고르자면 저는 바다 쪽이 더 끌리네요. 사실 강이 흘러 흘러 바다가 되고, 각자가 가진 아름다움이 모두 특별하기에 우열을 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지만 같은 강과 바다라도 각자의 눈에는 조금씩 다르게 비치니 당신이 바라본 강과 바다도 궁금합니다. 생각하시는 것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전하는 글을 읽으며 한번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강의 매력부터 찬찬히 살펴볼까요. 제가 살고 있는 울산에는 태화강이 있는데, 마침 제 집 근처를 지나가는 덕에 산책을 자주 나갑니다. 해가 지고 난 강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건너편에 드문드문 조명이 비어 있는 건물들과 나무들이 보입니다. 평소에 길을 지나다니며 항상 보이는 것들이지만 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바라보면 그때와는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2층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던 상가 건물의 꼭대기가 보이고 잔잔한 강물에 거꾸로 비친 모습도 참 아름답습니다. 지나갈 땐 사람들의 말소리와 음악 소리들로 조용할 새 없던 곳이 강 너머에선 고요하니 아스라이 들리는 물소리만 들립니다. 저기 저곳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겠지만 멀리서 멍하니 보고 있면, 정신없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강물처럼 잔잔히 흘러가는 기분이 듭니다. 크고 작은 파도가 일던 마음도 풍경이 그대로 비치는 강물처럼 고요하고 선명해지니 지친 마음을 쉬어가기에도 좋습니다.



강 너머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강이 흘러가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도 좋습니다. 흘러가는 방향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강의 큰 매력입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이 다녀 트인 산길처럼, 이토록 넓은 강이 흘러가는 것은 까마득한 세월 동안 바다를 향해 흐르던 길일 것입니다. 잔잔하지만 한결같이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은 마치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걷다가 걷다가 보면 바다가 나올 것이라고 말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강가를 걷다 보면, 이 흐름에서 벗어나기 싫어서인지 산들산들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이 좋아서인지 항상 되돌아가기가 아쉽습니다.


그럴 때면 다리까지 걸어가 강을 건너 돌아오곤 하는데, 다리 위를 걷는 기분은 또 얼마나 설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른쪽에서 흘러와 내 발밑을 지나쳐 왼쪽으로 흘러가는 강물을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보는 것은 어쩌면 만남과 헤어짐이 제 양쪽에 존재하는 것처럼 신기합니다. 그렇게 돌아오면서 강 건너편을 다시 바라보면, 내가 걸어왔던 길과 그 길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멀리 보입니다. 걸어오면서 보았던 모습과는 또 다른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보며,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그렇게 보였던 길을 밟아 가며 항상 강은 참 한결같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강은 결국 바다를 향해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강의 목적지인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수많은 매력 중에서 저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평선입니다. 시선을 가로막던 상가와 아파트도, 도로를 바쁘게 지나다니는 차도 없으니 고개를 들지 않아도 탁 트인 하늘이 보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드넓은 하늘이 양옆으로 길게 뻗은 수평선에서 만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가슴이 설레게 합니다. 특히 바다 근처에 가면, 마치 산을 오를 때 산 정상이 가까워 오면 점점 하늘이 가까워지고 넓어지는 것처럼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하늘과 땅이 점점 가까워 오는 느낌은 괜히 가슴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그렇게 바닷가에 도착하고 나면 살짝 소금기 도는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우릴 반깁니다.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부터 일렁이며 와 육지에 도착해서 하얀 거품으로 부서지는 파도는 바다만이 가진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어떤 바닷가인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모래사장에선 조금 커진다 싶으면 넓게 퍼지며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모습이 따뜻하면서도 애틋하고, 자갈해변같이 돌이 많은 곳에선 하얗게 부서지는 거품이 떠내려가지 않고 남아 돌 밑으로 스며드는 게 잔잔하니 편안하며, 아슬아슬한 해안절벽 밑으로 파도가 용솟음치는 모습은 튀어나온 자그마한 돌섬 위 갈매기들과 더불어 시원한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이토록 아름답게 일렁이는 바다 위에 해와 달이 비칠 때면, 잔잔한 호수나 강 같은 선명한 모습은 보기 힘들지라도 누군가 반짝이는 구슬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반사된 빛이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 수평선 너머가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먼 옛날 누군가는 저 수평선이 세상의 끝이라 생각했고, 영화 "모아나"에서 주인공이 수평선 너머에 대한 호기심을 노래하는 걸 보면 바다는 그 자체로도 너무 신비롭습니다. 어쩌면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완벽한 수평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경외감이 듭니다. 그 앞에서 잡생각은 바닷바람에 날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니 마음도 차분해지곤 합니다. 신경 쓸 것이 참 많은 삶 속에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참 다행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며 강과 바다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보며 아름다운 점을 참 많이도 찾았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구석구석 바라보기엔 저의 시선이 많이 모자라기에,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 보았습니다. 누군가가 탁 트인 시야가 시원해서 좋다고, 물에 비친 풍경이 좋다고 할 때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해 줄 때면 못 보고 지나친 친구가 절 붙잡아 준 것 같이 설레고 기뻤습니다. 누군가는 강과 바다를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편안함을 떠올렸고, 저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잊고 있던 시절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계절이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새로웠고, 그날 나의 기분에 따라서도 다르게 느껴진다는 말도 그 친구의 섬세한 생각에 미소 짓게 되었습니다. 


저의 시선은 수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 비로소 지금과 같아졌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도 저와는 다르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시선도 다를 것이기에, 어떤 점이 특히 가슴에 와닿았을지 참 궁금합니다. 어쩌면 강과 바다같이 아름다운 것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는 행복함 덕분에 더 아름다워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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